은퇴 후, 암 투병 중인 의사가 4050에게 전하는 인생 조언
은퇴 후,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교과서에는 불치병 진단을 받아들이는 데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나온다.
- 불신의 단계
- 공포와 부정을 반복하는 단계
-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단계
- 협상, 분노, 절망의 단계
위 단계를 거쳐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인다.
아마도 실제 사람들의 반응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겠지만 나는 전립선암 진단 당시 너무 늦게 병원을 찾은 나 자신을 탓하는 혹독한 시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의사로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단순한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없다.’
한밤중에 침대에 누워 어서 죽어서 모든 게 끝나버리길 바랐다. 동시에 이 현실이 정말 터무니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기억난다. 나는 죽음이 두려워서 죽길 바랐다.
삶의 마지막에서
삶을 돌아보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몇 가지 긍정적인 깨달음도 얻었다. 70세의 나이에 내 삶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완전했다.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성공적인 삶이라고 느낀다. 더 이상 이루어야 할 일이 없었다.
세 아이들은 모두 중년에 가까워지고 있고, 건강하며 각자 잘 살고 있다. 사랑하는 손녀도 세 명 있다. 유감스럽게도 손녀들이 어른이 되는 모습은 못 보겠지만 말이다.
나는 좋은 시기, 좋은 장소에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나는 내 일에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큼 성공도 거두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산과 사막, 정글, 많은 도시들을 방문했으며 여러 국가에 친구들이 있다.
손녀들을 포함한 후손들도 내가 누렸던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내 열정과 야망으로 다른 사람들을 짓밟기도 했다. 모든 일을 직접 하겠다는 고집으로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정말 좋은 친구들이 있다. 내가 더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내와 가족, 친구들을 위해서다.
미래의 행복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내가 죽은 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안다. 이미 나는 햇볕의 따스함을 충분히 누렸다. 이제 다음 세대가 그 따스함을 누릴 차례다.
그럼에도 죽음은
두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겠지만 나는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곧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하게 지낸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현재 내 삶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이은 절망과 불안의 파도가 덮쳐도 나는 다시 일어섰지만, 항상 또 다른 파도가 다가왔다. 내가 너무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질 때면, 같은 상황에 있는 누군가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들지 자문해본다. 대답은 언제나 같다.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외부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노력하여 이 방법을 썼고 그럴 때마다 도움이 되었다.
두렵지만 죽음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자
만약 전립선암으로 몇 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면 그것도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죽을만큼 두려운 치매를 겪지 않아도 되니까. 치매에 걸려 빈껍데기로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아버지를 떠올렸다. 누군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한창때의 모습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으로 그들을 기억한다.
런던의 집에서 작업하는 동안 주로 클래식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었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의 작곡가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죽음은 언젠가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할 일이고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더 이상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노년이 되었는데도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노년에 이런 두려움을 갖는 것은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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