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예찬, 그리고 잠실돔에 기대하는 것.

잠실야구장은 지금으로 봐도 정말 잘 지은 건축물입니다.
대중에게 첫선을 뵈던 순간부터 그랬습니다.
일단 외형 자체가 그 전까지 알고 있던 야구장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가장 다른 점은 내야석 상단부의 처마죠. '처마'는 야구장보다 미리 착공에 들어갔던 잠실 주경기장과 공통의 주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멀리서 나란히 놓여있는 두 경기장을 바라보면 이 처마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형제 경기장임을 알 수 있거든요.
- 사실 두 경기장의 설계자는 다른 분이기는 합니다. 야구장은 고 김인호 건축가가, 주경기장은 고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였습니다. 저는 건축학 쪽에는 문외한이지만 두 분이 대한민국 현대건축사의 거장인 것은 어렴풋하게나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잠실 야구장 중앙출입문 본 외경 <사진 필자>

그 중 잠실야구장은 전체가 처마로 둘려 있는 주경기장과는 다르게 외야에는 처마를 덮지 않고 열어두면서 시원한 시야를 제공합니다.
김인호 건축가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은 대구,경북지역인데요. 지역언론인 영남일보의 2020년 기사에 따르면 이 잠실 야구장 설계의 탄생 비화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비상하는 우주선을 보게 된다. 하나의 선몽이었다. 그는 야구공의 스피드를 우주선의 비상으로 연결시켰다. 전체 이미지는 장구의 측면인 북편과 강강술래를 차용했다.’

잠실야구장이 ‘꿈의 구장’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말 김인호 건축가의 꿈에 나온 우주선을 형상화했다는 거니까요. 그 꿈으로 인해 지금 보더라도 미래의 건축물 같은 디자인의 작품이 탄생한 겁니다.

우주선과 북편, 강강술래 이미지의 집합체 잠실야구장 <사진 OSEN>

저는 이 기사를 통해서 대구체육관도 김인호 건축가의 작품임을 알게 됐는데요. 예전 오리온스의 대구시절 농구 중계방송을 갈 때마다 이 체육관이 정말 예술적인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장의 작품이니 걸작일 수 밖에요. 일에 쫓겨서 엄청난 건축가의 걸작이었던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 참 아쉽네요.

외야에서 본 잠실야구장 <사진 필자>

잠실야구장에는 갈 때마다 참 설레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그라운드와 마주하게 되는 첫 순간인데요. 아마 잠실야구장을 자주 찾는 분이라면 알 수 있는 풍경일 겁니다.

언덕 통로를 올라서 출입구를 지나면 보이는 작은 빛의 터널.
그 터널을 지나갈 때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녹색의 그라운드.
그리고 통로를 모두 통과하면 마침내 시야 가득 들어오는 녹색의 그라운드와 내야의 다이아몬드를요.


분명히 향기는 맡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닌데도 눈과 머리에 가득하게 잔디의 향이 쏟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죠. 실상 그 정도로 야구장에 풀 냄새가 강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라운드로 가는 마지막 관문, 빛의 터널. 아주 살짝 기울어져 있는데 오르막이라는 착시를 불러일으킵니다. <사진 필자>
발걸음을 옮길수록 조금씩 다가오는 그라운드 <사진 필자>
눈에 가득 들어오는 그라운드와 눈에 가득차는 다이아몬드 <사진 필자>

직업 때문에 이 나라, 저 나라의 야구장을 많이 돌아다녀 봤는데,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야구장은 제 기억에는 없었습니다.
모르겠어요. 최근 지어진 해외의 야구장은 입장하면 통로에서부터 어디서든 야구장이 보이도록 설계가 되어있는 곳이 많아서 그런지도요. 그렇지 않은 옛날 야구장들도 잠실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제가 중계 때문에 가봤던 일본의 돔구장들(도쿄돔, 교세라돔, 삿포로돔)도 대부분 통로에서는 야구장이 보이지 않는 구조인데 통로에서 야구장으로 들어서면서 저렇게 극적으로 그라운드가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잠실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출입문부터 출입구까지의 오르막을 계단이 아닌 언덕으로 만든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사진 필자>

그래서 참 이게 생각할수록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겁니다.
잠실야구장이 지어지기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도 없던 시절인데 김인호 건축가는 어떻게 팬들의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중계석은 계단으로 올라야 하는데 이게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사진 필자>

제 첫 야구장 경험은 1981년 동대문 야구장이었습니다.
일곱 살 때였는데 어른들 손을 잡고 신나게 놀다 왔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그 첫 야구장 나들이가 너무 좋았어서 또 가자고 졸라서 고교야구 경기를 보러 몇 번을 더 갔습니다.
그러다가 82년에 잠실이 지어지고 나서 야구장 출입이 오히려 뜸해졌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제가 그 당시에 동대문 근처에 살았어서 잠실이 멀었거든요.

제가 잠실야구장에 자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입니다.
고교시절 저와 매일 야구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가 1994년 여름에 유학을 갔는데,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을 잠실야구장에서 가졌습니다. 저는 그 때가 재수를 할 때였는데요. 야구장 같이 가자가자 하면서 못가다가 드디어 그때 처음 갔던 거였어요. 2층 내야석 – 현재 네이비석 - 에서 둘이 열심히 응원하면서 야구를 봤습니다.

중계석에서 바라본 그라운드 <사진 필자>

그때 야구장이라는 장소가 혼자 놀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부터는 주말에 시간이 날 때 혼자 야구장에 갔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혼동해서 야구 다 끝나고 야구장 도착했던 적도 몇 번이 있었어서 이후에는 스포츠 신문에서 주말 야구 경기 시간 철저하게 체크해서 잠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주로 외야석에 앉았어요. 잡생각 많은 재수생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에 야구장만큼 좋았던 장소가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 올 때 이 부근에서 주로 야구를 봤습니다. <사진 필자>

대학생이 되고, 1,2학년 때는 잠실야구장과 좀 멀어졌다가 3학년이 돼서 다시 야구장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외야에서 내야로 들어오게 됐는데 ‘어? 들어올 때 뭔가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게 됐습니다.
4학년 때는 잠실 말고 다른 야구장에도 몇 군데 가봤는데 잠실이 정말 많이 다르더라고요. 특히 2000년대에 준공됐던 당시 ‘국내 최초의 메이저리그식 야구장’으로 홍보하던 문학과 비교해서도 입장 후 야구장 첫 시야의 느낌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 물론 문학도 첫 방문 때 충격이었습니다. 분명히 1층으로 들어갔는데 그라운드가 그보다 아래 있는 야구장은 문학이 처음이었으니까요.

중계석 가는 길에 보이는 그라운드 첫 뷰 <사진 필자>

2007년부터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 입장 동선은 관중의 동선과는 달라졌습니다.
그라운드가 보이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 해도 언덕과는 느낌이 달라요. 그리고 눈에 가득 들어오는 그라운드의 첫 뷰도 관중석보다는 조금 멀어졌고요. 그래서 올해는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해를 맞아서 가끔씩 혼자 관중석 쪽으로 올라가고는 했습니다. 그 설렘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요.

홈 VIP석 뷰 <사진 필자>

10월 22일.
잠실야구장의 마지막 임무였던 준PO가 끝나고 난 이틀 뒤, 저는 다시 잠실을 찾았습니다.
철거 전에 또 올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이 풍경을 더 눈에 담고 싶었습니다.

슬프지는 않습니다.
더 좋은 야구장이 되기 위해서 잠시 우리 곁을 떠나는 거니까요.
그래도 작은 바람 하나는 새로 지어지는 잠실돔에서도 김인호 건축가가 의도한 그라운드가 처음 보일 때의 그 극적인 효과는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잠실야구장을 말하면서 ‘잔디 향이 눈에 보이는 게 믿어지시나요?’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데요. 이런 공감각적인 심상이 새로 지어지는 야구장에도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계속 보고 싶습니다. 잔디의 향기.

나오는 길에 잠실 맹수가 작별 인사를 왔습니다. 너도 잘 지내라. 곧 보자. <사진 필자>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