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초유의 막판 혼전…‘트럼프 투자자들’ vs ‘샤이 해리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2024. 10. 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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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베팅한 가상자산 큰손들…정치 베팅 사이트에서도 ‘트럼프 우세’ 흐름 나타나
전 세대 걸쳐 증가한 ‘진보 여성층’…이웃·가족 설득하면 해리스 막판 역전 가능성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평범한 미국 중산층 마을에 이웃으로 평소 가깝게 지내는 네 명의 주부가 있다. 이들은 각자 숨겨진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말 못 할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며 절망적인(desperate)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여기에 필사적(desperate)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네 주부의 우정도 깊어진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이야기다. 드라마 방영 초기 미국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가 "대통령이 밤 9시에 잠에 들면 나는 《위기의 주부들》을 본다. 9시만 되면 잠에 곯아떨어지는 남자와 결혼한 내가 위기의 주부다"라고 말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적도 있다. 시즌8까지 제작된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배경 메시지는 하나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이웃의 비밀을 하나둘씩 알아가고 숨기고 하는 과정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번 미국 대선도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초박빙 구도인 해리스와 트럼프의 경쟁은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이 무엇인지,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 평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리고 여러 뉴스와 접촉을 통해 꽤나 잘 알고 있고 익숙한 미국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이들의 비밀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현재 아무도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 더욱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0월18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0월19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레이크우드 원형극장에서 대선 캠페인 중 군중에게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EPA 연합

빌 게이츠는 해리스, 머스크는 트럼프 지지

영향력이 큰 유명인들의 지지만 놓고 보면 해리스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지시간 10월22일 뉴욕타임스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이 공개 석상에서는 미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고 보도했다. 또 뉴욕타임스는 이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해리스를 지지하는 민주당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 중 하나인 '퓨처 포워드(Future Forward)'에 약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정치와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던 빌 게이츠가 변화를 보인 데는 민주당 열혈 지지자이자 고액 기부자인 두 자녀 로리와 피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게이츠의 전 부인인 멀린다 게이츠도 해리스와 각별한 인연을 내세우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렌 파월 잡스도 해리스의 오래된 친구로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다. 명성과 인기가 여전한 오바마 부부와 클린턴 부부도 연일 유세장을 직접 다니며 해리스를 위한 선거운동에 한창이다.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지지도 잇따르고 있다. 10월20일에는 전설적인 흑인 가수 스티비 원더가 해리스 유세장에 나와 60세 생일을 맞은 해리스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테일러 스위프트, 비욘세, 어셔, 오프라 윈프리 같은 대스타들의 해리스 공개 지지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 거물급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유명인 중에도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외에는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힌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론조사에서는 늘 초박빙 양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나온다. 최근에는 심지어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월21일(현지시간) 자체 분석한 미 대선 결과 예측 모델을 통해 트럼프가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276명을 확보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 예측 모델은 해리스가 26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당선 확률에서도 트럼프 54%, 해리스 45%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 예측 모델에서 트럼프 당선 확률이 해리스를 앞지른 것은 지난 8월초 이후 2개월 만이다. 트럼프의 승리 확률이 해리스보다 높다는 전망은 현지시간 10월20일 미 정치 전문매체 더힐과 선거 전문 사이트인 디시전데스크HQ(DDHQ) 예측 결과에서도 동일했다. 더힐은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을 52%로, 해리스의 승리 가능성을 42%로 점쳤다. 더힐과 DDHQ 조사에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해리스를 앞선 것도 8월말 이후 처음이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앞서 나가는 트럼프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는 주요 경합주 가운데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미시간, 위스콘신에서 상대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해리스가 앞선 곳은 펜실베이니아 하나였다. 앞서 언급한 이코노미스트 예측 모델에서는 트럼프가 경합주 중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위스콘신과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애리조나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애리조나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확률은 66%에 이르렀고,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각각 63%의 높은 승리 확률을 보였다. 펜실베이니아(58%)와 위스콘신(55%)에서도 55% 이상의 확률을 나타냈다. 

정치 베팅 사이트에서도 트럼프의 우세를 확인할 수 있다. 5개 주요 선거 베팅 사이트의 평균을 보여주는 사이트에서 10월23일 기준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57.6%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폴리마켓은 현지시간으로 10월23일 현재 트럼프의 당선 확률을 61.6%, 해리스의 당선 확률을 38.1%로 전망 중이다. 트럼프의 당선 확률은 조 바이든이 대선후보를 사퇴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6월27일 토론 직후와 같은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의 '트럼프 우세론'이 정치 베팅 사이트에 거액을 쏟아부은 일부 투자자가 만들어낸 신기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최근 주요 정치 베팅 사이트에서 3000만 달러 규모의 가상자산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것이라는 베팅에 투자됐는데, 그 투자 패턴을 보면 사실상 동일 사용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 보도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 대선 베팅 사이트에 걸린 돈의 규모는 2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대부분은 가상자산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는 통상 트럼프와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구글에서도 트럼프 연관 검색어로 가상자산이 따라 나오고 있다. 왜 트럼프가 우세한가를 묻기 위해 '왜 트럼프인가(Why Trump)'를 치면 '비트코인(bitcoin)' 혹은 '왜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지지하는가(Why Trump supports bitcoin)' 같은 문장이 자동 검색된다. '왜 해리스인가(Why Harris)'를 치면 '왜 해리스가 인기인가(Why Harris popular)' '왜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서는가(Why Harris lead Trump)' 같은 문장이 자동 검색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가상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백인 중산층 이상을 중심으로 트럼프의 견고한 지지세가 형성되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터넷에서 '왜 해리스가 인기인가(Why Harris popular)' '왜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서는가(Why Harris lead Trump)' 같은 질문이 다수 검색되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 질문은 '해리스가 싫은데 왜 인기 있고, '트럼프를 앞서 나가는지'라는 질문과 같다. 9월18일 갤럽 조사 결과 미국 중도층에서 해리스 비호감도가 60%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아직도 많은 미국 유권자가 유색인종인 데다 여성인 해리스가 왜 인기가 있고, 트럼프를 앞서기도 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美 20대 여성 10명 중 4명 "나는 진보"

그 답은 미국 여성들의 이념 성향에서 1990년대 이후 진보(liberal)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시대가 변해도 이념 성향에 큰 변화가 없는 남성들이나 다수의 미국 유권자 입장에서는 늘어난 여성 진보 성향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갤럽이 올해 2월 미국인 1만2000명 이상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성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비율은 높아진 반면 남성들의 이념 성향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부터 2013년 사이에 18~29세 여성 중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비율은 27~30%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44%, 2023년에는 40%에 이르고 있다. 1999년 65세 이상 여성 중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비율은 14%였으나 2021년 21%, 2023년 25%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 중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1999년부터 2023년까지 모든 세대를 통틀어 30%를 넘은 적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올해 8월 이후 나타난 해리스 상승세에 젊은 여성층의 지지가 한몫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거기에 더해 65세 이상 노인 여성층에서 그동안 늘어난 진보 성향만큼 해리스를 지지하고 있다면 남은 대선 기간 '숨은 표 찾기'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노인 여성층의 진보 성향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30% 이하로 소수인 상황에서 이들이 이웃과 가족들에게 해리스 지지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샤이 해리스'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들이 스스로를 '위기의 주부들'처럼 여기고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절망적(desperate)인 상황을 필사적(desperate)으로 피하기 위해 얼마나 행동할지, 이들의 숨은 표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 베팅 사이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찻잔 속 태풍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트럼프가 막판 우세를 유지할 것인가, 지금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지만 '샤이 해리스' 표가 모여 막판 판세를 뒤집을 것인가. 미 대선은 여전히 혼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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