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이 또한 지나갈 것…비극적 낙관주의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10.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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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나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인 지병과 벌써 10여년을 함께 지내고 있다.

삶에 도움이 되는 긍정이란 나는 절대 생로병사의 고통 따위를 겪지 않을 거라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 거다.

  크게 힘들지 않을 때에는 대충 다 잘 될 거라는 안일함만 가지고도 마음이 크게 추락하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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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존재해도 살아가야겠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비극적 낙관주의라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살면서 누구나 하나씩은 생기기 마련인 지병과 벌써 10여년을 함께 지내고 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또 어차피 생로병사의 고통은 인간의 숙명이니까 크게 동요되는 일 없이 마음만큼은 무던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약도 잘 챙겨먹고 있고 쓸데없이 "나는 약 같은 거  없이도 혼자 병을 이겨낼 수 있다!" 같은 객기는 잘 부리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그런 믿음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불필요한 고통은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에 밥 먹고 매일 병 고치는 일만 생각하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런분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다. 없을 수도 있을텐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딱 한 번 약을 끊어본 적이 있는데 왜 약에만 의존하고 다른 민간요법 등은 시도해 보지 않냐는 엄마의 끈질긴 설득에 반쯤 체념해서 그래 그냥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실패해서 고통과 약 용량만 더 늘리는 엔딩이었다. 

이 때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엄마가 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계속 나무랐던 점이다. 내가 나의 병을 인지하고 최대한 행복하게 유병장수하기 위해 첨단과학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부정적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에서 볼 때는 병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정적이라고 느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있는 병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외면하고 또 나를 돌볼 책임으로부터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는 꽤나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의 해석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삶에 도움이 되는 긍정이란 나는 절대 생로병사의 고통 따위를 겪지 않을 거라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가 나를 보살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 거다. 

그러다 얼마 전 이러한 태도를 일컬어 '비극적 낙관주의(Tragic Optimism)'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의 유한함과 인간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고통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가 나를 스스로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일 만큼이나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지만 그럼에도 쉽게 죽지는 않으리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다. 아마 나름의 풍파를 이겨내고서 얻은 마음의 훈장 같은 무엇일 것 같다.

한 연구에서도 지난 팬데믹과 같이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려움을 심하게 느낀 사람들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비극적 낙관주의가 행복과 더 큰 상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울 때일수록 그 어려움을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크게 힘들지 않을 때에는 대충 다 잘 될 거라는 안일함만 가지고도 마음이 크게 추락하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큰 어려움이 닥쳐와서 그런 안일함만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결국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에서)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덤덤한 믿음이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깨달음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삶의 의미감과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Leung, M. M., Arslan, G., & Wong, P. T. (2021). Tragic optimism as a buffer against COVID-19 suffering and the psychometric properties of a brief version of the Life Attitudes Scale. Frontiers in Psychology, 12, 64684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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