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다. 바로 서승재–김원호다. 이미 시즌 9승을 쓸어 담은 이 황금 콤비가 일본 구마모토 마스터스에서 결승까지 올라서며 마침내 시즌 10번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말 그대로 “한 시즌 10관왕”에 단 한 경기만을 남겨둔 셈이다. 안세영 한 명이 아니라, 이제 한국 배드민턴은 단식과 복식 모두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일본 구마모토 마스터스 준결승 상대는 대만의 왕치린–추샹제 조였다. 왕치린은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복식에서 이미 검증된 강자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스코어는 2-0, 두 게임 모두 21-19라는 접전 속 완승이었다. 내용은 팽팽했지만, 마지막에 웃은 건 언제나 그랬듯 세계랭킹 1위 조였다. 1게임에서 16-13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16-17로 역전을 허용했을 때도, 서승재–김원호는 조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3연속 득점으로 다시 흐름을 가져왔고, 19-19 동점에서 침착하게 두 포인트를 연속으로 따내며 첫 게임을 가져갔다. 결국 승부를 쥔 건 화려한 기술보다 마지막 두 포인트에서 드러난 집중력이었다.
2게임 흐름도 비슷했다. 초반에는 대만 조가 리드를 잡고 쫓기는 입장이 된 서승재–김원호는 10-10을 만들기까지 꽤 버거운 랠리를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이 조합의 장점은 ‘버틴 뒤 한번 잡으면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4-14에서 다시 포인트를 쌓으며 18-14까지 달아난 뒤, 잠시 주춤해 19-19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여기서 또 한 번 집중력이 빛났다. 흔들리는 쪽은 오히려 상대였고, 서–김 조는 다시 2점을 연속으로 가져오며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스코어는 21-19, 21-19. 숫자만 보면 아슬아슬한 승부지만, 경기 후반부의 흐름을 보면 “언젠가 결국 이길 것 같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이 결승 진출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또 하나의 파이널이 아니라, 시즌 ‘10승째’가 걸린 무대이기 때문이다. 서승재–김원호는 이미 올 한 해 말레이시아오픈, 전영오픈, 인도네시아오픈이라는 세 개의 슈퍼 1000 대회와 일본오픈·중국 마스터스·프랑스오픈(슈퍼 750), 코리아오픈(슈퍼 500), 독일오픈(슈퍼 300), 그리고 세계선수권까지 싹쓸이하며 남자 복식 판도를 뒤흔들었다. 단일 시즌에 이 정도 레벨의 대회에서 9번을 우승했다는 건, ‘강팀’이 아니라 ‘절대강자’의 영역이다. 과거 이용대–유연성 조가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이후, 한국 남자 복식이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시즌은 오랫동안 없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아직 ‘새로 결성된 조’라는 점이다. 서승재는 원래 강민혁과, 김원호는 정나은과 혼합복식에서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두 선수는 서로 다른 파트너와 맞붙어 희비가 엇갈렸다. 그랬던 두 사람이 남자 복식에서 다시 손을 잡은 건 불과 올해 초.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세계선수권과 슈퍼 1000·750 시리즈를 연달아 들어 올리며 세계 1위로 직행했다. 한마디로 ‘궁합이 너무 잘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승재의 왼손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후위 공격과 김원호 특유의 안정적인 네트 장악 능력이 서로를 완벽하게 보완해 준 덕분이다.

이번 일본 구마모토 마스터스에서 보여주는 경기 운영도 그런 시너지를 그대로 증명한다. 서승재는 강력한 스매시로 상대의 수비 라인을 계속 뒤로 밀어붙이고, 김원호는 네트 앞에서 각을 만들며 상대를 옆으로 흔든다. 이 조합이 완성되면 상대는 ‘앞도 막아야 하고, 뒤도 버텨야 하는’ 지독한 선택지 사이에 끼이게 된다. 그래서 왕치린–추샹제처럼 국제무대 경험이 풍부한 조합도 마지막 승부처에서 연속 실수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플레이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체력과 멘탈을 서서히 갈아 넣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결승 상대는 일본의 미도리카와 히로키–야마시타 교헤이 조다. 세계랭킹 29위로, 객관적인 전력 차만 두고 보면 서승재–김원호가 확실한 우위다. 하지만 배드민턴에서 ‘홈 이점’과 ‘무명 조의 반란’은 늘 변수가 되어 왔다. 게다가 서–김 조 입장에서는 시즌 10번째 우승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수 있는 경기다. 그래서 오히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평소처럼 “하던 대로”를 얼마나 유지하느냐다. 준결승에서 16-17, 19-19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긴 경험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예열이다. ‘우리가 흔들릴 수 있지만, 결국 마무리는 우리가 한다’는 자신감을 다시 확인한 셈이니까.

이번 시즌 흐름을 보면 이들의 성적은 단순한 반짝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구조적인 성장의 결과라는 것도 분명하다. 랠리당 체력 소모가 큰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시즌 막바지까지 경기력의 기복이 크지 않다. 슈퍼 1000·750처럼 최상위 레벨 대회를 집중 공략하면서도, 코리아오픈·독일오픈 등 중간급 대회에서 ‘올라올 수 있을 때 반드시 우승까지 간다’는 패턴도 뚜렷하다. 한 경기, 한 대회에 올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시즌 전체를 보고 컨디션과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 1위를 단순히 ‘추격’하는 입장이 아니라, 이미 지키는 입장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의미다.
이제 남은 건 상징적인 숫자 “10”이다. 시즌 10승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앞으로 한국 남자 복식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기준점이 된다. 이용대–유연성 이후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한국 남복은 ‘유망주’와 ‘다크호스’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서승재–김원호가 만들어 가는 2025년은 다르다. 이 조합이 건강한 전성기를 몇 년만 더 이어간다면, 세계 배드민턴 남자 복식의 주도권은 당분간 한국의 손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승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구마모토 마스터스는 이미 하나의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 남자 복식에서 가장 믿음직한 조합은 서승재–김원호다.” 시즌 9승을 향해 달려오던 흐름에, ‘10’이라는 숫자가 더해지는 순간이 될지, 아니면 다음 대회로 미뤄질지는 한 경기로 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조합은 이미 한 시즌, 한 대회를 넘어서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서 별도의 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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