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비밀 사채업자에 통째로…검찰 '암구호 담보대출' 3명 기소(종합)
법정이율의 1천500배 고금리 적용…비밀 누설 볼모로 협박도
군·검·경 합동수사로 신종 범죄 밝혀…공범·여죄 수사 중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군사 3급 비밀인 암구호(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정해 놓은 말)를 담보로 군 간부들에게 급전을 빌려준 사채업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법정 최고금리를 넘어선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 제때 채무를 상환하지 않은 군인들에게는 비밀 누설을 볼모 삼아 협박까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지검 형사3부(한연규 부장검사)는 군사기밀 보호법·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무등록 불법대부업자 A(37)씨와 대부업체 직원인 B(27)씨, C(32)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2일 밝혔다.
A씨 등은 충청지역 모 군부대 등에서 근무하는 군 간부 3명에게 암구호를 담보로 수십만∼수백만원씩을 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이들이 이런 방식으로 대출을 꼬드긴 군 간부는 10명이었으나 이 중 7명은 이 위험한 제안을 뿌리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은 대출을 상환할 무렵이 되면 암구호를 누설한 군 간부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부대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고, 채무자의 가족 등을 상대로도 채권을 추심했다.
이들은 대구에서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군 간부들을 포함해 채무자 41명에게 1억8천560만원을 빌려주고 법정이율(연 20%)의 1천500배에 달하는 최대 연 3만%의 금리를 적용해 1억여원을 이자로 받아 챙겼다.
암구호만 유출된 게 아니다.
A씨 등은 암구호 이외에도 피아 식별 띠(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군모나 군복에 두르는 띠)나 부대 조직 배치표, 산악 기동훈련 계획서 등 외부 유출이 엄격하게 제한된 군 내부 자료 사진을 담보로도 돈을 빌려줬다.
이 사건은 군 정보수사기관인 국군 방첩사령부가 암구호를 누설한 육군 대위급 간부를 적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해당 간부는 올해 1월 상황실의 암구호 판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사진 파일을 사채업자에게 보내주고는 2회에 걸쳐 모두 100만 원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조사 결과 A씨 등은 인터넷 도박이나 코인 투자 실패 등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군 간부들에게 접근해 군사비밀을 담보로 한 대출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첩사는 수사 과정에서 민간인인 사채업자들이 사건에 대거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북경찰청과 전주지검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검경은 이후 여러 차례 압수수색과 탐문 수사로 사건 관련 증거물을 확보해 군 내부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암구호 담보대출의 실체를 밝혀냈다.
군 간부들은 동산·부동산 등 까다로운 담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되고, 사채업자들은 군 간부들의 약점을 잡을 수 있어 대출 절차는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됐다.
A씨 등 사채업자들은 군 간부와 사병 등으로 만기 전역해 암구호와 피아식별띠 등의 높은 보안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3급 비밀로 규정된 암구호는 단어 형식으로 매일 변경되고,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다.
초병이 '문어'(問語)를 말하면 출입자는 '답어'(答語)를 외치는 방식으로 피아 식별을 한다. 유출되면 즉시 폐기되고 암구호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보안성이 강조된다.
검경과 방첩사는 암구호가 채권추심 협박용 외에 반국가단체 등으로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했으나 현재까지 대공 용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불법 대부를 위해 군사기밀을 불법 거래한 신종 유형의 범죄"라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유출·수집한 암구호 등 민감한 군사정보가 반국가단체나 외국에 전파될 경우 국가안보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사범들이 죄에 상응하는 형을 받고 불법 수익 또한 환수할 수 있도록 사후 처리 과정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검경은 이번에 기소한 대부업자 이외에 해당 대부업체가 일반인에게 빌려준 대출 규모가 6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공범과 불법 추심행위 등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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