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 돌보는 장례지도사 이야기

보건복지부의 ‘2022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한 사망자는 3378명으로, 하루 평균 9.3명이 홀로 사망했습니다. 고독사 한 사람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죽음 이후에도 외로운데요. 이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 강봉희 대표인데요. 강봉희 대표는 지난 19년 동안 900여 명의 독거노인과 무연고자의 고독한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는 장례지도사 강봉희 대표의 이야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고독사 매년 늘어 자비 들여 마지막 길 배웅
19년 봉사 900여 명 수습”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 돌보는 장례지도사 강봉희
코로나19 당시 대구에서 가장 먼저 사망자 시신을 수습했던 건 강봉희 대표와 봉사단이었다. 사진 조선DB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 고독사가 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2022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고독사한 사망자는 3378명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9.3명이 홀로 사망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죽음의 숫자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입니다. 2017년 2412명에서 불과 4년 만에 40%가 늘어났습니다.

고독사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외롭습니다. 이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 강봉희 대표는 지난 19년 동안 900여 명의 독거노인과 무연고자의 고독한 시신을 수습했습니다.

강 대표는 27년 전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1996년의 어느 날 근무 중 소변을 보는데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날로 병원에 가보니 방광암이 3기에서 4기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남은 날이 3개월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나이 40대였습니다. 당황할 겨를도 없이 수술과 치료가 이어졌습니다. 치료가 4년 넘게 이어지던 그때 3층 입원실 창가에서 밖을 보니 장례식장이 보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신이 오갔습니다. ‘만약 살아서 저 장례식장 앞을 걸어 나간다면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남과 다투지 말고 살자고 다짐했죠. 장례식장에 시신이 운구되는 걸 보면서 죽은 사람의 몸에는 누구도 손을 대고 싶어 하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한다면 내 인생도 조금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치료는 잘됐습니다. 잠시 스쳐간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건 신문에서 ‘장례지도사 교육과정’ 광고를 본 뒤였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해 장례지도사 과정 교육을 받았습니다. 평생 건축일을 하던 강 대표는 장례지도사로 인생 2막을 시작했습니다. 2004년에는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을 만들었습니다. 180㎝가 넘는 키에도 56㎏밖에 안나가던 몸무게가 장례지도사를 시작한 뒤 늘어났습니다. “얼굴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의 일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주는 일이지만 시신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빨리 발견했다면 혹시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올해 만 70세인 강봉희 대표는 “힘이 닿는한 장례봉사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장례지도사를 시작한 후로 900번이 넘는 장례를 치렀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처음 시신을 본 게 장례지도사 과정 동기가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수습할 사람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땐 어떻게 했나요?

하다 보면 순응이 됩니다. 봉사를 시작하고 몇 년은 힘이 들었어요. 더군다나 저희가 만나는 시신은 편안하게 사시다 돌아가신 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 생이 느껴지니 더 힘들더군요. 장례봉사단은 제가 만들었지만 이후 동료와 후배들이 생기니 책임감이 생겼고 그렇게 몇 년을 계속하다 보니 두려움에도 익숙해졌습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 그 시신을 수습한 게 봉사단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첫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는 의료진도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사망선고만 내리고 그 후 대책이 없었습니다. 저와 동료들이 방호복을 입고 들어갔습니다. 수의 대신 비닐로 겹겹이 싸서 옮겼습니다. 보통은 삼일장을 치르는데 코로나19 사망자는 매뉴얼에 따라 3시간 만에 화장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죽음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셈인데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할 사람이 없다고 하니 그 일을 내가 하자고 마음먹었고 그게 다입니다. 어쩌다 보니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을 돌보게 됐지만 깊은 뜻이나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도 몰랐어요. 무턱대고 시작했고 무턱대고 걸어왔습니다. 많은 분이 어떻게 그 힘든 일을 이처럼 오래 할 수 있었는지 묻지만 다른 이유는 없어요. 내 또래의 다른 분들이 이웃들과 맛있는 것 먹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행복을 느끼듯 나도 누군가의 죽음 곁을 지키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겠지요.
자주 가는 노점상 주인의 남편 장례도 치러줬다고요?

2004년으로 기억해요. 대구 중앙파출소 앞에 제가 자주 가는 떡볶이랑 어묵을 파는 노점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 노점 주인의 남편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형편이라 경황이 없어 보였어요. 손을 보태줄 친척도 없어 어쩔 줄 몰라 했고요. 제가 도맡아 시신의 염을 하고 장례 절차를 도와드렸습니다.
비용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비용을 받으면 봉사가 아니지요. 2004년 11월에 장례봉사단을 꾸려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아무런 금전적 보상 없이 장례를 맡아준다는 걸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저를 포함해 이사 6명과 감사 2명이 장례의 전 과정을 진행하고 필요경비는 8명의 운영진이 매월 100만 원씩 내서 충당합니다.
장례 의뢰가 자주 들어오나요?

처음에는 연평균 10건, 20건 남짓의 장례를 맡았는데 점점 많아져서 연 70~80건이 되더니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망자를 제외하고도 100건이 넘는 장례를 치렀습니다. 저희가 맡는 장례가 늘어난다는 건 우리 사회의 고독사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뜻이겠지요.
고독사가 늘어나는 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군요.

고독사 시신이 시간이 흘러 부패가 되면 일반인은 보기 힘듭니다.
그런 시신을 만나면 마음이 더 안 좋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들여다보고 살펴줘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가셔도 빨리 찾을 수 있어요.
고인의 이름을 기록하거나 사진을 남기는 일은 없다고요.

저희가 하는 장례는 유족에게 둘러싸이거나 슬픔 속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대부분 무연고이거나 가정이 깨진 상태였죠. 그래서 고인의 가족 관계나 신상은 묻지 않아요. 유족이 있어도 어려운 환경이 대부분이니까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절 묻지 않게 합니다.
고독한 죽음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는 죽음 뒤에 그들을 만납니다. 죽음 전에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해요. 자율방범대원이 있는 마을이라면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문이라도 두드려줘야 합니다. “할배, 저녁 드셨어요?”, “잘 주무셨어요?” 한 마디만 물어도 충분합니다. 그랬는데 반응이 없으면 문을 열어봐야죠.
살아 있을 때 돌봐야 된다는 거네요.

노인들만 남은 동네도 많아요. 시골로 갈수록 더 그렇고요. 집마다 깃발을 걸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깃발을 올리게 하면 어떨까요? 어떤 집에 깃발이 안올라오나만 체크해도 안부를 알 수 있잖아요. 죽음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까워 여러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든 막고 싶은 간절함이 있어요.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길 바랍니까?

“잘살다 갑니다. 고맙습니다”하면서 웃으며 가고 싶어요. 제 사무실에 이미 영정사진을 걸어 뒀어요. 가장 즐거울 때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에요. 옷도 제가 평소에 입던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가고 싶어요. 시한부 이후로는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좋은 세상 살다 가니 얼마나 좋습니까?

인터뷰가 있던 날 새벽에도 전화가 왔다고 했다. 대구의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입소자가 숨을 거뒀는데 유족이 없었다. 바로 일어나 옷을 입고 희망원에 가 시신을 수습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면 더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 일주일에 2~3건, 한 달에 7~8건이던 장례는 봄이 되거나 가을이 오면 하루에 3건 정도로 늘어난다. 정성껏 염을 해 고인을 화장장에 옮기면서도 그는 생각한다. ‘살아 있을 때 돌봐야 하는데’, ‘죽으면 소용없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건 제가 할 테니 이제는 산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죽으면 늦어요. 죽은 후엔 늦습니다.”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
2027년까지 고독사 20% 줄인다

정부가 2027년까지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 수 20% 감소를 목표로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지원하기 위한 인적·물적 안전망을 최대한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5월 1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임종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고독사 예방 최초의 기본계획인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고독사 실태조사 주기를 기존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위험군의 사회적 연결을 지원하는 ‘고독사 예방·관리 시범사업’을 확대해 지역별 실정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취업 등 위기 요인 해소에 필요한 생애주기별 서비스를 집중 연계·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 통합사례관리사를 확충하고 고독사 정보시스템을 만드는 한편 중앙 및 지역 단위로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지정해 고독사 예방·관리를 위한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합니다. 중앙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내 고독사 예방·관리 사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지역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지정합니다. 또 지자체의 고독사 위험군 사례관리 기능 강화를 위해 통합사례관리사를 단계적으로 증원하고 고독사 관련기관 정보 연계를 통한 통합 데이터베이스와 지자체 사례관리 업무지원을 위한 고독사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