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플레잉 게임 보스전에서 당황스러웠던 순간. 갑자기 웅장한 라틴어 비슷한 가사 음악이 깔리면서 나타나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무지막지한 보스몹들인데 웅장한 합창을 배경으로 마치 내가 보스와 운명의 대결을 펼치는 듯한 묘한 몰입감에 빠져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웅장한 선율 때문에 움츠러들게 만드는 노래들 속에 이 라틴어 가사는 실체가 있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게임 보스전에서 나오는 라틴어 노래 가사에 의미가 있는건지, 이런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 게임에 등장하는 라틴어 합창곡은 사실 사람이 부르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가사를 짓는 것도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즉 AI인 경우가 많다. 열심히 가사를 해석하는 게이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처음부터 별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일단 국내 게임 개발사나 게임음악 업체들을 컨택해봤는데 어찌된 이유인지 대부분 인터뷰에 그리 호의적이진 않았다.
A 게임개발사 관계자
"담당자님한테 그래서 두 번 정도 얘기를 했었거든요. 지금 확인이 늦어지고 계시는 건지 아니면 내부 협의를 하고 계시는 건지 저도 확인이 어려워서”

다행히 국내에서 20년째 게임음악을 만들어온 굴지의 회사 대표님과 연락이 닿아 물어봤다.
함석길 스팟웍스 대표
"보통 음성을 만들어내는 악기(프로그램)가 있거든요? 합창 악기라고 할 수 있죠. 거기에 발음 기호들을 써넣어주면 해당되는 소리를 해줘요. 해주는데 저희도 라틴어를 모르잖아요. 그래서 랜덤기능이라는 게 있어요. 그럼 멜로디는 저희가 만드는 거지만 거기 맞게 랜덤 기능을 쓰면 맞는 발음 기호들을 해서 자동으로 해주는 거죠. 아니면 직접 그냥 저희가 나름대로 그냥 써넣기도 하고, 뜻 상관없이 그냥 막 조합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게임 장르 중에서도 RPG 게임은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다. 중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심각하고 진중한 분위기의 음악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라틴어 느낌의 가사를 쓰곤 한다. 결국 ‘분위기’의 문제라는 건데 한국어 가사를 쓸 경우, 적합한 분위기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함석길 스팟웍스 대표
"어느 정도는 어떤 게임인지는 알고서 해야 돼죠. 배경 색상이 어떤 색상인지, 무게감 정도에 따라 브라스(금관) 악기를 많이 쓸지, 스트링(현) 악기를 많이 쓸지를 구분하게 돼요. 아무래도 한국어 가사를 넣으면 가사가 너무 직접적으로 들리니까. 그냥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라틴어 가사를) 쓰는 거죠”

게임음악에 어떤 라틴어 가사가 들어가는지는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난해 출시됐음에도 이미 ‘역대급’ 명작으로 평가받는 ‘엘든 링(Elden Ring)’이 대표적이다.
이미 유튜브 상에는 라틴어 가사에 대한 온갖 해석본이 돌아다니는데, 사실 아무 의미없는 가사라는 주장이 많다.

실제 이 게임음악을 제작한 프로듀서들과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라틴어 전공자 유튜버가 밝힌 내용인데, 이 게임에 쓰인 라틴어 가사는 AI로 랜덤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대작게임의 경우는 실제 합창단을 쓴다. 엘든 링 역시 노래 자체는 헝가리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녹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어떤 특정한 의미가 담긴 가사를 부른 게 아니라 실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동원해 웅장한 이미지를 강조한 거라고 봐야한다. 일반적인 RPG 게임에 등장하는 라틴어 합창곡은 노래나 가사를 만들 때 대부분 프로그램을 동원한다. 일부 사람이 써넣는 것도 있긴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함석길 대표에게 업계 종사자로서 팬들이 가사 해석에 열 올리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인지도 물어봤는데,
함석길 스팟웍스 대표
“(가사에 별) 의미를 두지는 않죠. 그냥 음악적인 색깔만 보는 거지 어차피 저희가 BGM을 만들 때 개발사에서 어떤 라틴어를 써달라라든지 아니면은 합창을 넣어달라든지 그런 요구가 있는 게 특별히 있는 건 아니거든요."

라틴어가 이렇게 쓰이는 데 대해 실제 라틴어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스·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학술단체 ‘정암학당’ 소속으로 현재 성균관대에서 라틴어를 강의하는 정준영 초빙교수에게 물어봤다.
정준영 정암학당 이사
"음악이라든지 가끔 책에서 보면 호모(라틴어 Homo) 자 붙여가지고 라틴어 하고 상관없는 내용에 라틴어 제목을 붙이는 것은 그냥 현학적인 겉멋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든 게임이든, 사용하기 위해 만든 라틴어 노래 가사가 제대로 된 건지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아무래도 비용의 문제가 큰데, 아무렇게나 쓰더라도 대중들이 알아듣지 못하는데 굳이 돈까지 들이며 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해석.

함석길 스팟웍스 대표
“몇 년 사이에 그렇게 됐죠. 왜냐하면 기술이 소프트웨어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까 악기도 말하자면 오케스트라 악기도 가상으로 그걸 제작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점점 리얼한 소리들이 나게 기술이 발달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