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위해 설치했던 詩畵…관리 안하나, 못하나

아예 탈색이 돼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시화.

도심 호수공원 둘레길을 따라 설치돼 시민들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무뎌진 감성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설치된 시화(詩畵)들이 관리부재로 방치돼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15일 광주문단에 따르면 서구 풍암동에 소재한 풍암호수공원을 따라 펼쳐진 황토빛 흙길과 덕석 모양의 깔판이 있어 걷기 좋은 길 등 산책로 2.1㎞ 곳곳에 설치된 시화들이 글자가 탈색이 돼 지워지면서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아예 시화로서 기능을 상실하는 등 어느 누구 하나 신경써서 관리에 나서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1956년 축조돼 70여년를 맞았으며 1990년대 풍암저수지 근처의 풍암택지개발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된 이후 풍암호수공원은 산책로가 2㎞가 넘는 도심공원으로 풍암지구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이미 입소문를 타고 방문하는 시민까지 넘쳐날 정도로 인기를 끄는 명소다. 이곳 풍암지구는 수변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어 건강을 도모하며 힐링을 하기에 적격인 곳으로 간주된다.

이곳에는 호수를 둘러쳐 문득 문득 시화들이 설치돼 있고 도서관인 풍암호수작은도서관까지 자리하고 있다. 체육 시설이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공간과는 완연하게 다른 곳이다. 규모가 제법 큰 호수여서 산책로나 시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조형 작품까지 갖춰져 있다. 2010년에 설치된 미디어아티스트 진시영씨의 작품 ‘하모니’(Harmony·화합)가 그것으로, 빛고을 광주의 ‘光’을 형상화해 역동적인 모습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서로 화합해 빛을 받드는 모습을 조형화했다. 구축돼 운영중이던 장미원 역시 자리해 꽃피는 철을 맞으면 방문객들이 몰릴 정도였다. 버드나무 쉼터와 아담한 공연장 등도 있다. 그만큼 구색이 갖춰진, 몇 안되는 곳으로 꼽힌다.

이중 시화들이 글자가 탈색돼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됐는데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시화는 임우진 구청장이 재임하던 시절인 2017년 광주 서구가 ‘자연 친화형 명품 문화 도시’로의 발돋움을 선포한 가운데 자연경관이 뛰어난 풍암호수공원 산책로 주변에 시화를 설치, 현재에 이르고 있다.

<@1><@2>당시 서구는 지역 대표적 문학단체인 광주문인협회와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추천을 받아 ‘참깨를 털며’(김준태) ‘노랑붓꽃’(나종영)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첫사랑’(고재종) ‘호수’(강만), ‘무등산’(김종), ‘장미가 길에 나와’(임원식), ‘낮밥’(조성국) ‘몽유선유도’(신남영) ‘새벽 산길’(박판석) ‘투계’(고성만) ‘보리 숭어’(김경윤) ‘헛꽃’(박두규) ‘사랑’(안도현) ‘딱따구리 소리’(김선태) ‘우체국 편지’(노창수) 등 35기(점)를 설치한 바 있다.

풍암호수공원을 이용하는 주민 500여명의 의견을 직접 묻는 설문 조사를 실시한 뒤 시화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비롯해 이송희 시인의 시화 ‘이름의 고고학’, 이옥근 동시작가의 시화 ‘꽃잎만 쓸었겠는가’, 백수인 시인(전 조선대 교수)의 시화 ‘손’ 등은 아예 탈색이 돼 가까이서도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이와함께 일부 시화는 여름을 맞아 잡풀까지 우거져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어려웠다.

<@3><@4>여기다 염창권 교수(광주교대 국어교육과)의 시화 ‘강물이 숨을 쉰다’와 박관서 시인의 시화 ‘집’ 등은 시 제목이, 김완 시인(혈심내과 원장)의 ‘봄, 소주’ 등은 일부 글씨가 각각 탈색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다 선안영의 시인의 시화 ‘적막을 사온 저녁’은 광주시 서구에서 내건 반려동물 동반 에티켓 플래카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굳이 홍보 플래카드를 설치하려면 시화가 없는 곳에 설치했어야 한다는 반응이다. 지난 5월에는 풍암주민총회 포스터가 한 시인의 시화에 버젓이 부착돼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단 한 관계자는 “모든 문화예술품이 지속적 관리가 뒤따르는 게 사후 관리라는 측면에 부합하고 중요하지 않겠는가. 설치하고 관리하지 않으려면 뭐하러 설치했나. 시화들이 저 정도로 탈색이 되도록 실무 책임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적어도 설치만 하고 나 몰라라 손을 털면 다인가. 그렇게 시화들이 망가지는데도 담당자는 현장에 와 보기는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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