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는 韓의사, 신뢰받는 加의사···무엇이 차이 갈랐나”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4. 10. 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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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경 캐나다 토론토의대 교수 인터뷰
한국 의사, 초저수가에 의료사고 위험에 내몰려
박리다매식 3분진료 현실이 국민과 멀어지게 해
왜곡된 의료체계 개선 없이 필수의료 위기 해소 못해
김태경 캐나다 토론토 의대 교수가 3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신문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규빈 기자
[서울경제]

“(사직 전공의들이) 언제, 얼마나 복귀할지는 알 수 없어요. 분명한 건 정부가 왜곡된 필수의료 보상체계와 의료사고 책임 부담 등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돌아올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생명을 살리는 자부심, 희열을 느꼈던 의사들은 현장을 떠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

김태경 캐나다 토론토의대 교수(영상의학과 전문의)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공의들이 돌아온 뒤 의료정상화와 진정한 의미의 개혁을 준비해야 할 때”라며 이 같이 말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인 김 교수는 한국과 캐나다의 최고 병원을 모두 겪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1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에서 수련을 받았고 2003년 서울아산병원 조교수로 임명돼 캐나다의 토론토 제너럴 병원으로 해외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전임의(펠로)로 근무하던 중 정식 교수직을 제안 받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였던 아내와 함께 남아 근무한 지 21년이 넘어간다. 토론토의대에서 37세의 최연소 부교수로 승진하고 전문의 면허를 자동으로 받았으니 외국 국적의 의사로서는 전례 없이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김 교수는 “해외에서 일하다보니 임상의학에서 만큼은 압도적인 의료 선진국임을 체감한다. 지금도 토론토에서 어려운 (환자) 케이스가 생기면 아산병원에서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며 “의료대란으로 진료는 물론 임상연구마저 크게 줄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현 사태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이지 않나. 의사 편을 들자는 게 아니라 한국 의료가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의사로 보낸 10여 년을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비록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해 의료 수준은 많이 뒤쳐졌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무엇보다 선진 의료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당직이 아닌 데도 새벽까지 일하다 병원에서 잠드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밤새워 쓴 국제학회 초록이 채택되면 내로라하는 대가들 앞에서 서툰 영어로 발표하면서도 설렜다. 그 때 느꼈던 성취감은 캐나다 현지 병원에 적응하게 한 원동력이 되어줬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발표된 지 2개월쯤 지난 시점이었을까. 오랜만에 한국에 온 김 교수는 의사들을 향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원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초저수가에 사고 위험을 감수하며 한국 의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동료들은 ‘밥그릇을 지키려고 환자 생명을 내팽겨치는 집단’으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의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받는 직종으로 선정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의사들이 온갖 불편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일하느라 고생한다며 전 국민의 응원을 받았다. 물론 철저하게 사회주의에 기반한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차이가 크다. 캐나다에서는 별도 의료보험에 가입하거나 의료 보험비를 납입할 필요 없이 세금만 내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무상으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처럼 언제든지 대형병원 전문의의 진찰을 받는 건 상상도 못한다. 그렇다고 박봉에 쉴 틈 없이 일하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 의사들은 한국의 3배 수준의 봉급을 받고 환자는 훨씬 적게 본다. 환자 한 명을 진료할 때 한 시간씩 대화하고 일일이 기록을 남긴다. 김 교수는 “두 나라의 의료시스템을 모두 겪어본 의사로서 가장 부러운 건 의료사고 배상제도”라고 했다. 캐나다의 모든 의사는 CMPA(Canadian Medical Protective Association)라는 비영리 의료사고 보험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과실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돼 있다. 연단위로 보험료를 내고 이용한 일이 없으면 상당 부분을 돌려받는 구조다. 진료과별 사고 위험이 다르다 보니 보험료나 환급률은 조금씩 다른데, 혹여 과실 신고를 받아도 CMPA에 전화해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면 이후 모든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 준다. 한국처럼 의사 본인의 과실이 아님었음을 입증하느라 생업을 접고 몇년씩 매달릴 필요가 전혀 없다. 김 교수는 “의료사고 위험이 큰 산과는 의사가 6000만 원 상당의 보험료를 내면 주정부가 약 80%를 돌려준다”며 “의사가 부작용이 두려워서 방어진료를 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도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왜곡된 의료 시스템을 바로잡지 않은 채 의대 정원만 크게 늘린다고 해서 소위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될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캐나다 의료가 한국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기형적인 의료수가로 인해 병원들이 값싼 인력을 쓰며 박리다매식 진료를 봐야 하는 현 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의사들이 초저수가의 기형적인 틀 안에서 ‘3분 진료’로 연명한 게 국민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며 “의사들이 국민과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린 점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몇몇 의사들의 말실수가 의사와 국민을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그는 “인터뷰를 준비하며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꼼꼼히 살펴봤다. 바람직한 방향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 무엇보다 재원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보였다”며 “전공의, 의대생들이 돌아오고 필수·지역의료 분야에 지원하게 하려면 정부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구체적인 계획과 타임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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