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리는 2024 ‘홈리스월드컵’, 노숙자들의 축구대회?

[이동연의 풋볼 인사이드]
'홈리스 월드컵'이 20년째 열리는 이유
노숙자들만의 축제 아닌 약자들의 축제
21일부터 서울에서 일주일간 개최예정'
이 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을 응원해주길

축구의 마술, 축구의 힘

2022년 필자가 안식년을 보내던 기간에 손흥민 선수가 뛰는 런던의 토트넘 경기장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EPL 북런던 더비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라일리라는 5살 아이가 시축을 했다. 3개월 전 조산으로 인한 뇌성마비로 평생 누워지낼 수밖에 없을 뻔했던 아이였지만, 오랜 재활을 통해 의족을 달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토트넘 팬이었던 이 아이는 골대 앞에서 팀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팻 제닝스를 뚫고 골을 넣었다. 골을 넣은 라일리는 손흥민의 찰칵 세레머니를 펼쳤고, 이 골은 팬들이 뽑은 '5월의 골'로 선정되었다. 한 어린아이가 고통의 재활을 이겨내고 두 다리에 의족을 단 채 최선을 다해 찬 공이 데구루~ 굴러가다 골대 안으로 들어갔을 때, 6만여 관중이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보낸 것은 축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라일리 키스가 토트넘과 아스널의 경기 하프타임 이벤트 때 페널티킥으로 득점하고 있다. 토트넘 누리집 갈무리

‘홈리스 월드컵’, 노숙자들 축구대회?

9월 21일부터 28일까지 2024년 ‘홈리스 월드컵’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다. 20일 조 추첨을 마쳤고, 이번 토요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한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42개국 56개 팀 총 500여 명이 모여 우정과 화합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언론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홈리스(Homeless) 월드컵’은 지난 2003년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파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노르웨이 오슬로, 미국 새크라멘토를 거쳐 올해 한국에서 열린다. 이번은 19번째다.

영화 '드림'의 홍보 포스터.

이번 추석에 JTBC방송에서 방영된 박서준, 아이유 주연의 영화 <드림>이 2010년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리고 올해 3월 넷플릭스에서 테아 샤록 감독의 <홈리스 월드컵>이 방영되면서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기도 했다.

흔히 ‘홈리스 월드컵’하면 거리에서 자면서 씻지도 않고 냄새나는 노숙자들이 모여 하는 축구대회로 연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노숙자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출전하는 선수들 중에는 물론 과거 노숙자 출신들도 있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다.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각종 보호소에서 생활하거나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 주거 불안정은 겪는 난민과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 차별과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이다.

'홈리스 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축구하고 있는 모습.

모두가 보장받는 '주거권'을 위하여

그래서 ‘홈리스 월드컵’이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가 보장받는 주거권을 위하여”이다.

스코틀랜드에 본부를 둔 ‘홈리스 월드컵 재단(HWCF)’은 주거 빈곤 상태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삶을 겪은 전세계 모든 사람이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이 대회를 만들었다. ‘홈리스’하면 우리는 노숙자를 떠올리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는 데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노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거리에서 자는 것을 원했는가를 추적해보면, 그 원인이 “삶의 불안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보장받은 주거권”이 홈리스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이 대회에 마땅히 출전해야 하는 선수들은 노숙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에서 소외된 자들 모두인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도 그렇게 모였다. 치열한 선발전을 거쳐 11명 예비선수단 안에는 가정 밖 위기 청소년, 자립준비 청소년, 난민신청자, 지적장애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29일에 발대식을 했고, 최종 8명이 선발되었다.

한국 대표팀을 맡은 이한별 감독은 2010년 브라질 대회 이후 ‘홈리스 월드컵’ 4번째 감독을 맡았고, 장영훈, 김장군, 송정섭, 정다운 코치가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한국대회 조직위원회는 이근호 전국가대표 선수가 위원장을, 한준희 축구해설위원이 부위원장을, 그리고 필자와 성공회대 정윤수 교수,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신민정 이사장, 변호사인 건국대 이재경 교수 등이 조직위원을 맡았다.

모두가 다 무보수 재능기부이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노숙자 자활에 앞장선 ‘빅이슈’가 대회 주관사로, 거리에서 아트마켓을 전문적으로 여는 ‘일상예술창작센터’가 운영기관으로 참여했다.

'홈리스 월드컵' 출전을 준비하던 팀 코리아 맴버들. 이중 8명이 최종선발됐다.

FIFA도 후원하는 ‘홈리스 월드컵’

지난 8월 2일에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리스 월드컵’을 지원하기 위한 홈리스월드컵재단(HWCF)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FIFA는 자체 미디어인 FIFA+를 통해 홈리스월드컵을 전 세계에 중계하기로 합의했고, 메달과 트로피 등을 포함하여 물품과 장비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판티노 FIFA회장은 축하 영상을 통해 "축구라는 마술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고, 축구라는 힘을 이용하여 노숙자와 관련된 글로벌 이슈들이 해결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홈리스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대략 25%가 사회적 재활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얻고 보호시설에서 벗어나 당당한 사회적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 2010년 브라질 홈리스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MBC 취재 영상을 보았다.

한국 선수를 대표해서 선발된 선수들은 정말 다리 밑에서 자다가 서울역에서 어슬렁거리며 무료한 노숙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다. 축구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혼자서 축구화도 제대로 신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고작 한 달 연습으로 브라질 현지에 도착해 상대 팀(코스타리카, 독일)에 대패한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심판이 선수들을 안아주고, 관중들과 기쁨의 하이파이 하는 시간을 통해 노숙 생활을 하던 그들은 스스로 내버린 삶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홈리스 월드컵’ 경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감동의 장면은 축구가 할 수 있는 “우애와 환대”의 정신 그 자체였다.

응원하러 와요

축구가 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권력의 사교장이 되어버린 시대. ‘축구의 마술’과 ‘축구의 힘’은 과연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축구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전쟁을 잠시 멈추게도 한다. 축구는 권력이 되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고통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기쁨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축구는 돈이 없으면 시청할 수 없는 자본의 노예가 되기도 하지만, 극빈층 빈민가에 절망하는 전 세계 아이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퍼거슨 감독이 영입한 포르투갈 출신 베베는 실제 노숙자 출신이었고, 자국의 홈리스 축구대회에서 출전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라이베리아의 축구 영웅 조지 웨아도 빈민가 출신이었다. 펠레, 네이마르, 호나우딩요, 히샬리송 등 수많은 브라질 축구 스타들도 빈민가 출신들이다.

‘홈리스 월드컵’은 풋살경기장 규모에서 4대4로 경기가 진행된다. 한 경기당 전후반 각 7분씩 14분 동안 경기가 열린다. 대회가 거듭되면서 출전 선수들의 실력도 늘어나고, 골도 많이 난다. 한 팀이 총 8명을 확보할 수 있는데, 숫자가 부족하면 현장에 와서 다른 국가 선수들을 바로 영입할 수도 있다. 매 경기 시상하며, ‘홈리스 월드컵’ 우승컵 트로피도 9개나 된다. 참가한 모두를 위한 대회가 바로 ‘홈리스월드컵’이고, “우정과 환대”의 축제이다.

아직 온전히 확보되지 않은 재정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홈리스 월드컵’은 예정대로 열린다. 이제 많은 분이 와서 대회를 즐기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일만 남았다. 마음이 움직이면 정성이 담긴 작은 후원을 해주셔도 좋다. 이번 ‘홈리스 월드컵’이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는 대한축구협회와는 다르게, 대회를 준비하고 선수로 참여하고 관중으로 응원하는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하길 기대한다.


이동연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에서 문화이론, 예술정책, 공연기획을 가르치고 있다. 음악과 축구를 좋아해서 관련된 저술 및 현장 활동을 많이 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음악감독, 글로벌음악도시서울플랜 MP, K-리그 발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고, 리버풀FC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현재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는 계촌클래식축제 총감독, 대표적인 문화NGO 단체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