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설득력의 비결
40년 전, 밥 치알디니는 설득력에 관한 획기적인 저서를 발표했다. 어쩌면 그 책의 내용들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어느 날이었다. 대학교 기숙사에 있던 로버트 치알디니에게 기숙사 내 다른 방에 거주하는 한 학생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라는 잡지 구독을 권했다.
치알디니는 “당시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여윳돈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잡지를 구독하지 않으려 했죠.”
하지만 그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치알디니에게 지금 구독해야만 그 주 주말까지만 진행되는 특별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고의 전문가들이 그 잡지를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가 하면, 기숙사에 있는 많은 다른 학생들이 이미 구독을 결정했다는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결국 치알디니는 굴복했다.
그를 나간 후, 치알디니는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치알디니는 “당시 내가 이 잡지에 돈을 쓴 것은 잡지의 장점이 아니라 그가 그 장점을 제시한 방식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것 참 흥미로운데? 연구해 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알디니의 그러한 호기심은 1984년에 출간된 ‘설득의 심리학’(영문명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으로 결실을 맺었다.
행동 과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관련 사례 연구, 개인적 경험을 결합한 이 책은 찰스 두히그와 애담 그랜트, 제임스 클리어 같은 “똑똑한 사고”(smart thinking)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초석이 됐다.
이 책을 낸 출판사에 따르면, 설득의 심리학은 여러 개정판을 거쳐 지금까지 7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나는 이 책 출간 40주년을 맞아 런던의 한 호텔에서 치알디니를 만났다. 그리고 책의 주요 개념과 첫 출간 이후 달라진 것, 오늘날 분열된 우리 사회를 위한 시사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설득의 6가지 원칙
호기심을 풀기 위해 치알디니는 영업, 마케팅, 채용, 모금 등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꿔야 먹고사는 사람들, 즉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득 전문가”(compliance professionals)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
는 연구 대부분은 공식 인터뷰였다. 때에 따라서는 해당 조직에 취업해 동료들의 요령을 배우는 “잠입” 연구를 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나는 치알디니에게 기억에 남아 있는 당시의 경험에 대해 물었다.
그는 화재 경보기를 판매하기 위해 뛰어난 영업사원과 여러 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꼽았다. 당시 치알디니의 멘토는 항상 다양한 제품을 자세히 설명해놓은 커다란 책을 가지고 다녔는데, 막상 영업을 위해 집을 방문할 때는 그 책을 차에 두고 내리곤 했다.
그리고는 방문한 집에서 집주인이 안전 점검을 체험할 때, 집주인에게 집 열쇠를 빌려 차에 가서 책을 가져오곤 했다.
“그가 남들과 달랐던 점은 바로 그것뿐이었습니다.”
치알디니는 멘토에게 그러한 행동의 이유를 물었다.
오랜 질문 끝에 멘토는 “어떤 사람이 당신이 신뢰하는 사람이겠느냐””며 “당신이 집에 자유롭게 드나들게 허락해준 사람이 바로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저는 그런 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와, 이 사람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과 기존 연구들을 3년에 걸쳐 비교했다. 그리고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캠페인의 근간이 될 만한 주요 원칙 6가지를 찾아 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희소성
- 권위
- 사회적 증거
- 호감
- 상호성
- 일관성
치알디니에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를 판매했던 학생은 이 중 세 가지 원칙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그의 말은 희소성의 원칙을 나타낸다. 듣는 이에게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느낌과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준 것이다.
그는 잡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제시했는데, 이는 권위에 호소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치알디니의 기숙사 동료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설명해, 다른 이들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증거까지 제시했다.
치알디니는 “이는 특정한 행동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실행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증거가 큰 힘을 발휘하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노래가 다른 청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그 노래를 다운로드할 가능성이 올라간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다른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그 사람의 제안이나 요구에 동의할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호감의 원칙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욕설로 얼룩진 정치적 논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설득할 때 이 원칙을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초판에서 치알디니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모임을 주최하고 주방 용기를 판매해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인 ‘타파웨어 파티’에 대한 연구를 언급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타파웨어 파티를 주최한 사람과 사회적 관계가 깊을수록 제품의 품질이나 기능에 관계없이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상호성은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는 속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책에도 소개된 심리학자 데니스 리의 “코카콜라” 실험 사례를 보자. 치알디니는 이 사례를 들어, 아주 작은 호의가 큰 보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주어인 임무는 그림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험 초반에 한 참가자가 갑자기 실험실을 나가며 실험에 훼방을 놓았다.
사실 그는 참가자를 가장한 연구 조교였다. 이 조교는 어떤 실험에서는 코카콜라를 자신과 (실제) 참가자를 위해 가져 왔고, 어떤 실험에서는 빈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실험이 끝난 후 조교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판매하는 추첨 티켓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의 앞선 행동이 참가자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교가 다른 참가자를 위해 코카콜라를 사왔을 때는, 훨씬 더 많은 참가자들이 티켓을 구매했다고 한다. 실험을 시작할 때 조교가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서도,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면, 호감보다 상호성이 설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듯 보인다.
마지막 설득의 원칙은 일관성이다. 치알디니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단 어떤 선택을 하거나 특정한 입장을 취하면, 우리는 그 약속에 따라 일관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개인적, 대인 관계적 압박을 받게 됩니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투표를 할 것인지를 묻는 것만으로도 그가 투표를 할 가능성이 올라갈 수 있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일관성이 없어 보이고 ‘인지 부조화’라는 불편한 감정에 시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대감의 힘
치알디니는 설득의 심리학 개정판에서 일곱 번째 원칙을 추가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소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더한 것이다.
그는 이같은 변화가 일부는 사회에서 부족중심주의의 커지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저는 그 전에는 연대감이 다른 요인을 증폭시키는 역할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대감이 있으면 희소성이나 사회적 증거가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데 연대감 그 자체로 독립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치알디니는 대학 캠퍼스에서 자선단체 기부금을 모금하는 젊은 여성에 대한 연구를 예로 들었다.
“이 여성이 ‘저는 학생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모금 홍보를 시작했을 때, 기부금이 45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는 개인적인 삶에서도 연대감이 가진 저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저마다 좋아하는 NFL 팀을 가진 유명인들을 소개한 신문 기사를 읽었는데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릴 웨인이 모두 그린베이 패커스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저는 그들의 음악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치알디니에게 설득에 대한 그의 연구가 세일즈맨의 약삭빠른 조종에 대항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혹시 그도 여전히 자신을 “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상대의 매력 공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상대방이 주는 정보의 충실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 정보가 속임수라면 거절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정직하고 출처가 확실하다면, “그 내용이 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신 말이 맞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는 어떤 제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그 제품이 자신에게도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가 만약 이 진통제나 이 자동차, 이 구독 서비스에 대한 믿을 만하고 사회적으로도 합의된 평가를 모른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겠죠.”
이것이 바로 중요한 차이점인 듯 보인다. 우리가 정직하게 사용한다면, 그가 설명한 설득의 원칙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설득이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정보나 교육을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방에 말에 동의하는 것 뿐입니다.”
그는 이런 원칙을 정직하지 않게 활용하려는 사람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사기꾼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런 사람과 다시 거래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남을 설득하는 정치
설득의 심리학이 출간된 이후 수십 년간 치알디니의 조언은 비즈니스 리더와 정치인 모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대선 캠페인에 자문을 제공하는 심리학자 ‘드림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드림팀이 제안했던 것 중 하나는 선거 캠페인의 기부금 모금 성과를 알리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선거 캠페인은 과거에는 총 모금액을 반올림한 숫자를 공개했다. 그런데 이후에는 기부한 총 인원 수를 제시했다.
“이는 사회적 증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른 많은 이들이 이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당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치알디니는 그들의 서비스가 후보자의 측근들에게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기존 선거 자문가들은 학계에서 연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런 활동에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조언의 일부를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치알디니에게 오늘날의 양극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연대를 증진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빠른 해결책은 없지만, 우리 모두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다리를 놓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전통적으로 친족이나 친구들과 맺어온 그런 종류의 관계를 구축 노력을 하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동료의 세계관이 자신의 세계관과 충돌하더라도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보라는 것이다.
“그들을 손님처럼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처럼 대하고, 식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신뢰 쌓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뢰를 통해 정체성의 차이를 좁힐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에서 다툼으로 끝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심리학 연구는 우리는 생각보다 정치적 ‘적군’과 유대감을 훨씬 잘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치알디니는 이러한 심리학적 원리를 일상에 적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며, 나는 커뮤니케이션 개선 방법과 남들이 내 생각을 좌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 보다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치알디니에게 내가 설득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설득의 심리학에 담긴 내용들이 1984년보다 오늘날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롭슨은 ‘연결의 법칙: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학적 비밀’(The Laws of Connection: The Scientific Secrets of Building a Strong Social Network)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