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자격 낮아졌는데, 권한은 비대... "정당이 민원 창구로 전락"
2017·2021년 당원 수 100만 명 폭증
"개인의 자율적 결정 아닌 집단적 현상"
당비 납부 기간 연장 등 자격 심사 강화

"정당 멤버십이라는 게 일종의 민원 창구 개설 비용으로 봐도 무방하다." (정치권 관계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내세워 경쟁적으로 당원 모집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실상 나오는 평가는 이처럼 냉소적이다. 민주당은 월 1,000원씩 6개월, 국민의힘은 3개월만 당비를 납부하면 당내 경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책임당원 자격이 생기는데 허들이 너무 낮다 보니, 당원을 얼마나 모아오느냐가 민원 해결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리당원 모집 등 전주시장 선거를 도와주는 대가로 건설·토목 관련 국·과장 자리 인사권을 요구한 선거 브로커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 지역 정치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 경우는 예비후보자가 폭로하면서 불거졌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당원 장사를 매개로 비리가 판을 칠 수 있는 데는, 선거 때마다 무더기로 유입되는 당원이 관리되고 있지 않아서다. 실제 우리나라 당원 가입 비율은 큰 선거를 앞두고 폭증하는 행태를 반복해 보여왔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당원은 1,120만1,374명으로 전체 인구의 21.8%에 이른다. 2004년 195만 명(인구수 대비 4.0%)에서 20년 사이 5배 폭증한 것이다. 증가폭을 보면 양당 대선 경선이 치러진 2017년(140만5,965명)과 2021년(165만8,314명) 크게 늘었다. 총선을 앞둔 2015년(59만1,450명)과 2019년(83만1,630명)에도 당원이 급증했다.
정치권에선 경쟁적으로 도입된 온라인 입당 시스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당원 가입서를 대면으로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다 보니 편의성이 높아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간소화 절차로 인해, 집단적 당원 매집 역시 용이해졌다는 점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만들어진 당원' 보고서에서 "입당 원서는 경선과 선거 주기에 따른 특정 시점에 쇄도하듯 한꺼번에 들어온다"며 "개인들의 자율적 결정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권리·책임당원 당비는 십수 년째 1,000원에 머무르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합민주신당이던 2007년 8월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당비를 낮췄고, 국민의힘도 자유한국당 때였던 2017년 2,000원씩 6개월 납부에서 1,000원씩 3개월 납부로 사실상 4분의 1로 '디스카운트'했다. 2007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50%를 넘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가입 기준은 지속적으로 완화된 셈이다. 양당 모두 당비 인상을 여러 차례 고심했지만, 기존 당원 이탈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가입 자격은 완화되는 반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강해지는 것도 문제다. 민주당은 당대표를 선출할 때 권리당원 55%, 대의원 15%, 여론조사를 30% 반영한다. 국민의힘은 책임당원 80%, 여론조사 20%다. 양당 공히 역선택 방지 조항을 채택하고 있어, 다른 당 지지층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정청래 민주당·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모두 최근 전당대회에서 '강성' 지지층 구미에 맞춘 강경 노선을 선보이며 승리를 거뒀는데 목소리 큰 당원들의 득세가 이 같은 극단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성 당원들의 입김이 워낙 세다 보니, 민주당은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경선에 권리당원 표심을 20%를 보장하도록 당헌에 못 박기까지 했다.
정치학자 박상훈 전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당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투표하게 되면 좋을 거 같지만, 오히려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극단적 목소리가 더욱 크게 도드라진다"며 "포퓰리즘 정당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정당 차원에서 권리·책임당원 자격을 현실화해 보다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귀동 민컨설팅 전략실장은 "1년에 6,000원, 1만2,000원을 내고 그 지역 기초·광역의원들에게 적당히 대접받는 게 현실"이라며 "전통적 의미의 권리·책임당원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강성필 필립커뮤니케이션 소장은 "일차적으로 보면 당비 납부 기간을 보다 강화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지역 당원들의 당원 행사 참여 등을 정량화해 권리·책임당원 자격 부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경우 '경선' 승리 등을 목적으로 한 유령당원을 걸러낼 수 있을뿐더러, 풀뿌리 정치의 기초가 될 수 있단 설명이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용 회장에게 5만 원 받은 APEC 카페 직원… "가보로 물려줄 것" | 한국일보
- '윤석열이 쏴 죽이라고 했다' 증언에… 한동훈 "참담" | 한국일보
- '케데헌 8경' 구경 가던 일본인 모녀··· 소주 3병 만취 차량에 어머니 참변 | 한국일보
- "김대중은 공산주의자" 흑색선전 뚫고 첫 당선...그러나 이틀 뒤 쿠데타가 일어났다 | 한국일보
- 게으른 투자로 3억→15억 불린 비결...퇴직 후 '월 400 수입' 보장해준 미국 ETF 투자 | 한국일보
- APEC 행사는 南에서 했는데... 누구보다 바빴던 北 김정은 | 한국일보
- "탄환으로 탄환을 맞히는 게 가능한가" 천궁은 달 착륙보다 어려운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 한국
- “내가 추천한 영화 재미없다고 발길 뚝” 비디오점 운영 실패에 유학 고민 ‘박찬욱의 시련’ |
- 김정관 "2000억 달러, 미국에 그냥 주는 돈 아냐… 우리 기업 우선" | 한국일보
- '평양 산다' 연락 끊더니… "코피노 친부들, 얼굴 공개되니 속속 반응"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