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계의 신흥 강자, 재패니즈 위스키

최근 세계 주류 시장에서 일본 위스키가 떠오르는 추세다. 2020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위스키 수출액이 사케를 넘어섰다. 100년이 넘는 역사와 독자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일본은 세계 5대 위스키 강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위스키의 기원부터 특징과 즐기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
재패니즈 위스키의 탄생

일본 위스키 역사의 시작

야마자키 증류소에서 오크통 속 위스키를 추출하는 모습. ⓒalamy

일본 위스키 역사는 관세 장벽에서 비롯되었다. 1901년, 일본 정부는 서양에서 수입하던 위스키와 와인 등의 세금을 대폭 올렸다. 이 기회를 틈타 일본 주류업체들은 앞다퉈 증류기를 들여와 주정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생산한 주정에 설탕과 향신료, 와인 등을 섞어 ‘가짜 양주’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은 고토부키야 양주점(현 ‘산토리’)이 만든 ‘아카다마 포트와인’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와인이라 부르기 어려운 품질이었지만, 달콤한 맛과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카다마 포트와인의 성공에 힘입어 고토부키야 사장 도리이 신지로는 위스키 제조에 나선다. 1923년 도리이는 오사카 근교 야마자키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기술을 익힌 다케쓰루 마사타카를 고용한다. 그러고는 1924년 11월 11일, 마침내 일본 최초의 위스키가 생산되었다.

산토리와 닛카, 일본 위스키 양대 산맥의 기원

닛카의 '요이치 싱글 몰트'(좌)와 산토리의 '가쿠빈'(우). ⓒNIKKA WHISKY, HOUSE OF SUNTORY

그러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1929년 야마자키 증류소는 첫 제품 ‘산토리 위스키 시로후다’를 출시했지만, 스모키한 향이 강해 일본인 사이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 결국 1931년 자금난으로 위스키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고, 1934년에는 10년 계약이 종료된 다케쓰루가 야마자키 증류소를 떠났다.
그럼에도 도리이는 위스키 제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회사를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면서 사업을 이어갔고, 1937년 ‘가쿠빈(角瓶)’을 세상에 내놓았다. 스모키한 향은 없애고 아카다마 포트와인 등을 블렌딩한 위스키였다. 가쿠빈의 성공 요인은 낯선 향을 고집하지 않고 대중적인 향을 만들어낸 데 있었다. 한편, 다케쓰루도 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설립하고 1940년부터 위스키 생산에 돌입했다. 오늘날 일본 위스키를 대표하는 두 브랜드, ‘산토리’와 ‘닛카’는 이렇게 탄생했다.

침체기 이후 맞이한 부흥기

전쟁이 일으킨 위스키 붐

다케쓰루가 설립한 요이치 증류소의 위스키 숙성 창고. ⓒalamy

전쟁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편 위스키 산업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증류 공장을 접수해 전쟁용 알코올을 만들었다. 공장을 빼앗긴 도리이와 다케쓰루는 하릴없이 전쟁이 끝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들 공장은 전쟁의 참화를 피했고, 군이 생산한 막대한 알코올은 그대로 남았다. 전쟁이 끝난 뒤 공장을 되찾은 두 사람은 위스키를 생산했고, 사케나 소주를 주조하던 지방 양조장들도 앞다퉈 위스키 생산에 뛰어들었다. 술을 빚을 곡물은 부족했지만, 고도수 알코올은 넘쳐났기 때문이다.
당시 주요 위스키 소비층은 역설적이게도 연합군과 일본군 출신 인사들이었다. 전후 이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하며 위스키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세금에 웃던 일본 위스키, 세금에 울다

ⓒunsplash

영원할 것 같던 일본 위스키의 전성기는 세금에 발목을 잡혔다. 1980년대 들어 유럽 등지에서 일본의 주세법이 무역 장벽이라며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1981년 당시 조니 워커레드 라벨 같은 스카치위스키에는 막대한 세금이 부과되는 반면, 위스키 이외 재료를 섞어 만든 일본 위스키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됐다.
무역자유화의 흐름 속에서 일본 정부는 1989년 마지못해 주세법 개정에 나섰고, 하루아침에 스카치위스키와 일본 위스키의 세금이 같아졌다.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자 저가 위스키로 승부하던 지방 증류소들은 위스키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스카치위스키와 버번위스키의 활약에 산토리와 닛카 등 대기업 증류소만 살아남았고, 그렇게 일본 위스키는 약 20년 동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위기를 기회 삼아 다시 일어서다

야마자키 증류소 박물관에 진열된 위스키 병들. 야마자키를 비롯한 일본 위스키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alamy

위스키 산업은 침체기를 버티기만 하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숙성고 속 위스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게 익으며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위스키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장기 숙성 위스키의 재고가 늘자, 아이러니하게도 이로 인해 일본 위스키가 세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결정적 계기는 2014년 산토리의 미국 버번위스키 브랜드 짐 빔(Jim Beam) 인수다. 산토리는 짐 빔 인수로 글로벌 주류 유통망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이후 ‘빔 산토리’라는 이름으로 일본 위스키를 세계 시장에 적극 홍보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4년, 산토리는 ‘산토리 글로벌 스피리츠’로 사명을 바꾸고는 전 세계 위스키 시장에서 확고한 위상을 지닌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재패니즈 위스키의 함정

ⓒunsplash

일본 위스키가 세계적 인기를 끌면서 수출량과 수출액 모두 급증했다. 2020년부터는 사케를 제치고 일본 수출 주류 1위에 오르며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일본 주세법상 위스키에 대한 기준이 매우 느슨해 과거에 생산되던 ‘유사 위스키’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일본의 위스키 기준에 따르면, 몰트 위스키든, 그레인위스키든 10%만 함유하면 향료나 주정을 섞어도 위스키로 분류한다. 심지어 숙성 기간에 대한 규정도 없어 증류 후 바로 판매해도 위스키로 인정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주조조합중앙회는 2021년 3월 1일 ‘재패니즈 위스키 표시에 관한 기준’을 제정했다. 2024년 3월 1일부터 협회에 소속된 기업은 이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기업까지 이를 강제할 수는 없어 제도의 실효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재패니즈 위스키의 특징

시간이 빚은 섬세한 풍미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곡물을 발효하는 과정. ⓒalamy

최근 일본 내 위스키 증류소가 100곳을 넘어서면서 다양한 위스키가 쏟아지는 추세다. 일본의 모든 위스키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른 위스키 강국과 명백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긴 발효 시간이다.
일본의 많은 크래프트 증류소가 100시간 안팎으로 발효를 길게 한다. 최근 스코틀랜드에서도 100시간 이상 발효하는 증류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50~60시간 발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정도면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산토리와 닛카는 약 70시간 발효한다. 이렇게 긴 발효 과정을 거치면 오크통에 오래 숙성하지 않아도 유산균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며 위스키의 과일 풍미가 풍성해진다.

동양의 향을 품은 미즈나라 오크통

ⓒalamy

일본 위스키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미즈나라’다. 미즈나라는 일본에서 자생하는 오크 품종으로, 산토리는 이를 활용해 위스키 숙성용 오크통을 만들었다. 미즈나라는 수분 함량이 높아 땔감으로 쓰기는 어렵지만, 그 덕에 거대하게 자라 오크통을 만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미즈나라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시키자, 어떤 스카치위스키에서도 느낄 수 없던 독특한 향이 피어났다. 마치 고급 묵주에서 풍기는 향 혹은 깊은 산사의 대웅전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향 같았다. 동양적인 향과 풍미는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를 매혹시켰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6월호
글 김대영([일본 위스키, 100년의 여행] 저자)
에디터 조윤주(yunjj@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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