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강정보를 왜 물어?”…건보공단에 키·몸무게·수술기록 요청한 보험사들

혈액 검사 [사진 = 연합뉴스]

보험사들이 건보공단에 개인의 진료 내역과 건강검진 기록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에 따라 민간 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명 처리한 의료정보 제공을 신청할 수 있게 된 직후 벌어진 일이다.

건보공단은 개인 건강정보가 피보험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거절하고 있지만, 최근 정부가 민간 보험사에 건강보험 데이터 제공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보험사에 유리한 상품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민간 보험사 5곳은 2021년 7∼8월 신규상품 개발 등을 목적으로 6건의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당시 한 보험사는 ‘질병 발생과 의료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겠다며, 진단명과 수술 여부, 입·내원 일수, 비용 등과 더불어 성별, 나이, 키, 몸무게, 체질량 지수, 혈압, 공복 혈당, 총콜레스테롤, 흉부 방사선 검사 결과, 본인 및 가족 과거력, 흡연·음주 여부, 현재 복용 약 등을 요청했다.

다른 5개 연구도 비슷한 주제로 광범위한 데이터를 요구했다. 개인별 진료 내역을 14년간 추적 관찰하겠다며 전국민 모집단의 2%에 이르는 100만명의 데이터를 요구하거나, 60살 이상이 겪는 주요 질병 등을 분석하겠다며 환자의 주소지와 보험료 분위, 진료 명세서 및 건강검진 데이터를 요구했다.

보험사들은 연구 목적으로 ‘보험의 보장 범위 확대’, ‘보험료 할인 적용’, ‘유병자 대상 보험상품 개발’ 등을 들었다.

건보공단은 같은 해 9월 보험사들의 요청 6건을 국민들의 이익 침해와 과학적 연구 기준 부합 여부, 자료 제공 최소화 원칙 등을 고려해 미승인했다.

다만, 정부는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 보험사에 더 개방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발표를 통해 “공익적·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영리 목적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건보 데이터는 가명정보라 해도 보험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보와 결합하면 어떤 사람의 데이터인지 식별 가능한 수준의 자세한 개인 건강정보가 될 수 있고, 보험사가 이를 보험료 인상이나 보험 가입을 선별적으로 받는 등의 방식으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선우 의원은 “건보공단에 정보개방심의위원회를 두고 공익에 반하거나 제3자 이익 침해, 개인 식별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건보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이번주 중 발의할 예정”이라며 “이는 국민이 자신의 건강정보 유출에 대해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