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Universe] 인하대학교 임준서
천국의 계단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달라지는 건 하나 없이 그저 끝이 없는 평지를 걷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면, 처음 꿈꿨던 형태의 성공이 아닌 높디높은 장벽이 내 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인하대학교 투수 임준서의 야구 인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야구선수의 꿈을 갖고 수년간 묵묵하게 공을 던졌지만, ‘프로 입단’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던 탓에 결국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으니. 성공을 향한 길은 오르막길이 아닌 계단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아갈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당연한 법. 그리고 나를 멈추게 한 장벽은 장애물이 아닌, 나를 한 단계 위로 올려줄 성장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젠 완벽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는 임준서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김연수 Location 더그아웃매거진 스튜디오
임준서
출생 2002년 2월 20일
신체조건 183cm 87kg
출신교 경기 모가중-유신고-인하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4년 성적 6경기 10.2이닝 평균자책점 2.45 0승 0패 14탈삼진 8사사구 5피안타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첫 만남인데, 직접 인사 부탁해요! (7월 1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하대학교 4학년 투수 임준서입니다. 워낙 유명한 잡지라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고, 최근에는 (문)교원이가 인터뷰한 것도 봤거든요. 근데 이렇게 직접 인터뷰하게 되니 신기하네요.
‘대학리그 최강 투수’로 불리는 만큼 ‘왜 나한테 섭외 연락이 아직 안 오지?’ 하는 마음은 안 들었어요?
직접 불러주신 건가요? 갑자기 감독님께 전화가 와서 ‘한번 해볼래?’ 하시길래 감독님이 저를 추천해 주신 줄 알았어요. 대학리그 최강 투수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쑥스)
#올스타
‘제2회 한화 이글스 배 고교 대학 올스타전’ 대학리그 부문 우수투수상까지 받았잖아요! 해당 대회는 어떻게 참가하게 됐어요?
대회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한 것뿐이지, 잘 던진 건 아니라서 그저 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감독님은 코치로 가고, 교원이도 같이 가게 됐다고 알려주셨어요. (작년에도 정원배 감독이 코치로 함께 했는데, 대회를 앞두고 따로 건네준 조언은 없었나요?) 지금 공이 나쁘지 않으니까 제 공만 던지면 결과가 잘 나올 것 같다고 감독님께서 말해주셨거든요. 더 잘하려고 욕심부리기보다, 제 공만 던지기로 마음먹고 갔습니다.
첫 등판 당시 2아웃 주자 3루로 팀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어요. 헛스윙 삼진으로 이닝을 막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겠어요.
그때는 ‘무조건 막아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등판했는데,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었죠. 사실 볼이었던 공이었는데, 당시 상대 타자였던 유신고 후배가 배트를 내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날 공이 별로였는데 운이 따라줬어요.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한 날인가 봐요?) 경기 전 캐치볼 할 때부터 컨디션이 나쁘다고 느껴졌는데, 역시나 제 기량을 제대로 못 보여줬거든요. 구속, 제구, 변화구 낙차까지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당시 모두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멀티 이닝을 소화했던 선수였어요. 2회 말에 등판해 4회 말까지, 이렇게 많은 이닝을 맡겨주겠다는 걸 예상했을까요?
전혀요. 그때 투수만 10명인 터라, 무조건 1이닝만 던지고 내려올 줄 알았어요. 2회에 던지고 내려왔는데 감독님께서 ‘하나 더 가자’라고 계속 말해주시더라고요. (내심 뿌듯했겠는데요?) 제 딴에는 그날 컨디션도 별로고, 뒤에 애들도 많은데 ‘왜 또 올라가지’ 싶었어요. 그래도 감독님이랑 제 공을 믿고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아쉽게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대학교 마지막 학년인 올해 함께 하게 됐어요. 스스로 보기에는 올해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작년 3학년 말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올라오기 시작했거든요. 구속이나 회전수, 변화구 각도, 제구력, 단단해진 멘탈까지 모든 부분이 확 달라졌어요.
그 시기에 성장하게 된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그냥 꾸준하게 하다 보니까, 제 것이 딱 생겼어요. 저만의 투구폼이 확실해 지니까 다른 부분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편하게 던질 수 있게 됐달까요. 그동안 모든 투수 코치님들이 힘을 빼라고 말해주셨는데, 힘을 빼고 공에 힘을 싣는 방법도 알게 되면서 더 향상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 정체기에 머물면 ‘변화를 줄지, 그대로 유지할지’ 고민에 빠지는데, 그대로 밀고 나가는 편인가 봐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거든요. 그래서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꾸준하게 했어요.
#올승리
대학리그 얘기를 더 자세히 해볼게요. 올해 인하대가 8경기에서 전승을 하며, 압도적인 A조 1위를 차지했어요. 선수단 분위기는 어떤가요?
올해 교생 실습이랑 부상이 겹치면서 시즌 초반을 동료들과 함께 소화하지 못했거든요. 근데 그 시기에 1학년으로 들어온 투수들이 너무 잘해주더라고요. 나중에 합류하고 보니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처음으로 시합장에 갔는데 ‘질 것 같지 않다’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마 올해 일 하나 낼 거 같습니다. (웃음)
8경기 중 3경기 7이닝 8K 1피안타 3볼넷 호투를 보여준 본인의 역할도 컸어요. 스스로 느끼기에 만족스러운 전반기였을까요?
소화한 이닝이 적고 볼넷이 많아서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필요 없는 볼넷을 몇 개 준 부분은 아쉬운데, 그래도 이닝보다 삼진 개수가 많은 건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팀이 전승한 데 내 공은 몇 퍼센트인가요?) 솔직히 이 리그전에 제 공은 크지 않았어요. 위기 때 올라가긴 했지만, 소화한 이닝도 적은 저보다는 다른 어린 투수들이랑 타자들이 너무 잘 쳐준 덕분이죠. 제 공은 후하게 쳐줘야 30% 정도?
이제 왕중왕전을 남겨두고 있는데,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어떤 점을 보완할 예정이에요?
하루아침에 나아지는 건 없으니까요. 하던 걸 계속 꾸준히 하면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남은 경기는 지난 5월 9일 용인예술과학대전처럼 긴 이닝을 소화하게 될 예정이라 체력 관리에 더 신경 쓰려고 하고요. 제일 조심할 건 부상이니, 보강 운동을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요즘은 전국대회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겠네요. 운동에 정말 진심인 선수로 보이는데, 평소에 어떻게 지내요?
요즘 일상에 진짜 운동밖에 없어요. 물론 저도 친구들이랑 노는 걸 즐기고 총 쏘는 게임도 종종 했는데, 이제는 전부 끊었어요. 저한테 남은 시간은 두 달뿐이잖아요. 올해는 야구에만 몰두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올타임
예전에 야구 말고 잘했던 거나 즐겨했던 거 있어요?
야구 말고 다른 운동은 배드민턴을 잘했어요. 중학교 때 대회도 나갔거든요! (원래 운동 신경이 상당한 편인가 봐요?) 아버지가 힘도 워낙 세시고 운동 신경이 좋으세요. 예전에 군인이셔서 저랑 남동생도 몸을 잘 쓰는 편이에요. (그럼, 동생도 운동선수예요?) 아뇨! 원래 동생이 저보다 운동을 잘해서 선수를 하고 싶어 했는데, 이미 선수 생활을 하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그러다가 동생이 고등학교쯤에 공부는 도저히 아니라면서… (웃음) 지금은 특전사에 있어요.
엄청 빠른 구속도, 큰 체구도 아닌데 타자를 압도하는 힘이 있어요. 야구선수로서 본인의 강점은 뭐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구력이 안정적이고 불필요한 공 없이 빠르게 승부를 보니까 타자들이 예측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 공을 안 받아봐서 모르겠지만, 구속에 비해 공 끝이 날카롭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체구는 원래 평균 이상이었는데… 요즘 애들이 큰 겁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에 다양한 구종이 한몫해요. 어떤 구종이 가장 자신 있어요?
던지는 건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가 있고요. 그중 자신 있는 건 커브예요. 그냥 커브도 아니고 너클 커브라 각도 큰데, 직구보다 스트라이크에 더 잘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습니다. (원래 변화구를 잘 던지는 투수였어요?) 고등학교 3학년까지는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못 잡았어요. 그러다가 코치님이 너클 그립을 알려주셨는데 잡자마자 손에 감기는 거예요. 너클 커브를 마스터하려고 1년 내내 야간마다 매일 연습했습니다.
강점을 모두에게 드러냈던 게 ‘최강야구’였어요. 인하대 1차전 당시 선발 투수로 출전해, 8K 역투를 펼쳤던 그날의 경기가 아직 기억나요?
그럼요, 제 인생투인걸요. 지금도 한 번씩 영상을 돌려보곤 해요. 밸런스나 공이 워낙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시합 전이나 분석할 때 보고 있어요. 그날 등판 전부터 엄청나게 떨렸는데,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나니까 긴장이 확 풀렸어요.
전혀 긴장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삼진을 잡고 크게 기뻐하지도 않던데요?
평소 경기 때는 티를 최대한 안 내려고 해요. 원래는 티를 좀 많이 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이라고 배워서 감정을 숨기고 있어요. 그날도 경기 이기고 나서야 기쁜 티를 냈던 기억이 있어요.
이후로 최강야구 트라이아웃도 신청해서 최종 라운드까지 진출하기도 했어요. 지난 출연으로 배운 점이 많았나 보네요.
대선배님들과 함께하면서 값진 경험이었고 조언도 많이 들었어요. 긴장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던져야 프로에서 잘 될지 배웠습니다. 그때보다 멘탈적으로 성장도 했고요. 최강야구로 함께 하면 실력이 늘 수 있겠다 싶어서 인하대 선수들이랑 다 같이 나가봤어요. 근데 긴장을 지나치게 하다 보니 제 공을 못 던지고 인터뷰도 제대로 못 해서 아쉬웠습니다.
다양한 선배 중에 닮고 싶은 선수가 있을까요?
KT 위즈의 소형준 선수가 롤 모델이에요. 형준이 형이 제 학교 선배인데, 재능이 워낙 출중한데도 운동을 진짜 열심히 하거든요. 야구에 진심인 형이라 고등학교 때부터 존경하면서 잘 따랐어요. (조언을 건네주기도 하나요?) 지금도 연락하면 폼도 봐주시고, 좋았을 때랑 안 좋았을 때 사진까지 비교하면서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그럴 때마다 너무 감사하죠.
그만큼 평소에 본인이 잘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격이 정말 서글서글해 보여요.
동생들한테 최대한 친형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하고, 형들한테는 친한 동생처럼 다가가면서 선을 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최대한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합니다. (MBTI는 뭐예요?) ESTP인데, 원래는 ESFP였어요. 야구를 하다 보니까 T로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예전에 심리 상담을 한 번 받았었는데, 야구 할 때 성격은 INFJ래요. 평소랑 완전 반대 성향을 띤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야구 할 때 상상이나 걱정을 하는 편인가 보네요?
그쵸, 원래 그런 스타일이에요. 야구에 대한 걱정을 자주 했는데, 그게 저한테 나쁘게 작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안 하려고 하다 보니 MBTI가 T로 바뀐 거 같아요. 요즘도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최대한 제 공을 믿으려고 하고요. 운동을 안 할 때는 룸메이트 (김)도현이랑 맛집에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야구에만 빠지지 않으려 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 초에 다녀온 교생 실습이 큰 도움이 됐겠어요.
야구 해야 하는데, 실습을 가야 한다니까 처음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근데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 중에 최강야구 팬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 저보고 야구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정말 슈퍼스타급으로 대우를 해주셨어요. (웃음)
#올라갈
실습을 다니면서 옛날 추억도 떠올랐겠어요. 유신고의 원투펀치로 활약했던 만큼,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실망감이 상당했죠?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고 야구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고등학교 감독·코치·체육부장님은 물론, 중학교 감독·코치님까지도 다 연락을 주셔서는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다고 대학 가서도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그때 정신이 확 차려졌어요. 지금 이렇게 나약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아직 끝난 게 아닌데 ‘내가 진짜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됐습니다.
어느덧 2025 신인드래프트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어요. 정원배 감독이 ‘이번 시즌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할 대학리그 선수’라고 언급하면서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클 거 같은데요?
하는 거에 비해 감독님이 저를 아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래프트에 대해서 지금은 그저 뽑아주신다면 감사한 마음뿐이고요. 이미 한 번 드래프트를 해보니까 드래프트를 앞두고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을 갖기보다는, 그냥 그동안 해왔던 걸 꾸준하게 보여주면 만족할 만한 결과가 있을 거로 믿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즌 점수를 하나도 안 주는 게 제일 큰 목표입니다. 지금 제로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 공을 믿고 던지다 보면 이룰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인하대가 우승했으면 합니다. 원래 인하대는 항상 우승하는 팀인데, 10년 동안 우승이 없거든요. 현재 투타에서 모두 페이스가 올라와 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꼭 우승할 거 같습니다.
올해 12월 31일이 됐을 때, 2024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요?
2024년이 제 아마추어 야구의 마지막 연도다 보니까, 올해 시작부터 설렜는데요. 마지막 날 웃으면서 한 해를 끝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때 맞은 12월 31일에는 많이 울었거든요. 내심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나 아쉬움, 후회, 부모님께는 죄송함까지 몰려왔어요. 올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거나 웃으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임준서의 행복한 연말을 함께 응원하는 팬분들께 한마디 전하면서 마칠게요.
어… 이런 건 안 해봤는데. (당황) 어릴 때부터 항상 제 꿈을 응원해 주시는 주변 분들, 대학에 와서 생긴 팬분들께 항상 감사드리고요. 올해 드래프트에서는 꼭 지명을 받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남은 두 달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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