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패션: ‘지속 가능한’ 옷장을 만드는 방법
환경에 친화적인, 옷가지 수가 적당한 '적정 옷장'이라면 옷이 74벌 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고서가 있다. 이를 활용해, 세 명의 기자가 각자의 옷들을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옷장 검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적정 옷장에) 실패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셔츠 밑에 걸려 있는 캐미솔(상체 선이 드러나는 민소매옷)들, 재킷으로 덮어놓은 드레스들, 서랍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구겨진 점퍼들 등. 내가 가진 옷 중 절반 정도 확인했을 뿐인데, 이미 74벌이 넘었다. 창고에 있는 여름옷만 넣어둔 가방은 검사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베를린의 싱크탱크 '핫 오어 쿨 인스티튜트'가 2022년에 발표한 보고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74벌의 크고 작은 옷가지와 한 벌짜리 옷 20벌 정도가 "적정 옷장(sufficient wardrobe)"이다. 그리고 새 옷 구매는 연평균 5벌 이내여야 한다. 이 보고서 저자들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가 패션 산업에서 나온다는 "보수적인 추정치"를 바탕으로,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한다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패션 업계가 배출량을 11억 톤의 CO2e(이산화탄소 환산톤)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앤 컴퍼니에 따르면, 이는 2018년 수준인 21억 톤에 비해 약 50% 감축한 수치다.
'적정한 옷가지 수'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20개국을 대상으로 패션의 탄소 발자국을 분석하고, 각 개인에게 공정한 탄소 발자국 목표를 설정해 만들어졌다.
옷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처음에 가졌던 두려움은 이내 부끄러움이 됐다. 나는 옷장 검사 프로젝트를 동료 기자인 마사 헨리케스, 윌 파크와 함께 진행했다. 그들도 '적정한' 74벌보다 더 많은 옷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런던예술대학 내 런던패션대학의 '지속가능한 패션 센터'의 디렉터인 딜리스 윌리엄스에게 우리의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우리의 옷 소비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받기로 했다.
윌리엄스는 "우선 세 사람 모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해야 하죠. '나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가?', '내 옷장에는 왜 이렇게 많은 옷이 있을까?', '패션 시스템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팔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윌리엄스는 보고서를 통해 유행이 주도하고 저렴한 가격과 손쉬운 반품이 뒷받침하는, 만연한 '새 것' 문화에 주목했다.
그는 "기업은 그들이 만드는 제품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션 업계의 회계 시스템은 환경적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지 않는 결함이 있어요. 그 비용은 우리가 지불하죠."
아나의 옷장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불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옷 구매 습관이 변화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옷을 단 2벌 샀다. 또한 옷의 84%는 5년 이상 입어 온 것들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구입한 것 중에서 매일 입을 옷을 고른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나를 반영하지 못하는 옷을 입게 된다. 또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지만, 같은 옷을 반복해서 입는 경향이 있다. 영국 자선단체인 '폐기물 및 자원 행동 프로그램(Wrap)'에 따르면, 영국인의 옷장에 있는 옷 중 약 30%는 1년 넘게 입지 않은 옷이라고 한다.
윌리엄스는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다른 외관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기능적인 것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지 않는 옷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걸까요? 정말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특정 아이템을 입는 습관이 없어져서인가요? 다른 아이템과 함께 스타일링을 시도해 보셨나요? 아니면 업사이클링을 시도해 보셨나요?"
나는 윌리엄스에게 내가 특히 자랑스러워하는 스커트를 보여줬다. 10년 동안 입지 않은 채로 옷장에 걸어두었다가, 동네 재단사에게 가져가 밑단을 수선해 A라인에서 미니스커트로 완전히 새로워진 옷이다. 수선에는 31달러가 들었다. 요즘에는 같은 가격이면 패스트 패션 매장에서 새 스커트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스는 "수선이나 부분 교체 보다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게 훨씬 저렴한 현재 경제적 상황이 또 다른 장벽"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영국 정부에 스웨덴의 정책을 반영해 수선할 때 부가가치세를 면제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로부터 새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행위는 해당 소매업체를 전복시키는 행위입니다. 모든 저가 의류 산업이 망할 것이라는 생각도 근거 없는 믿음이죠. 물건의 내구성은 대부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니트로 넘어가서, 나는 윌리엄스에게 점퍼 2벌을 보여줬다. 하나는 유래를 100% 추적 가능한 울로 만든 것으로, 나는 이 옷을 소매점이 준 보풀 제거용 빗과 함께 받은 특수 가방에 보관해왔다. 이 점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퍼다. 다른 하나는 폴리에스테르와 비스코스, 캐시미어, 나일론이 혼방된 구겨지고 보풀이 있는 점퍼다.
윌리엄스는 "이러한 혼합 섬유는 생분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지도 않은 이 점퍼는 (썩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의류는 여러 섬유를 혼합해 만든다. 그러다 보니 의류 재활용은 1%에 그친다. 섬유를 분해하지 않고 분리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섬유인 폴리에스테르는 석유로 만든다. 그리고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합성 소재는 전체 섬유의 62%를 차지하는 반면, 울은 1%에 불과하다.
윌리엄스는 나의 두툼한 울 점퍼를 매만지며, "반면 울은 가장 놀라운 섬유"라며 "오래 지속되고 열역학적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나는 머뭇거리며 윌리엄스에게 "이 점퍼를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다"며 점퍼에서 나는 사랑스러운 냄새를 해명했다. 나는 이 옷을 그냥 바깥에 널어놓는 식으로 관리했다.
윌리엄스는 웃으며 "이것 또한 문화적 장벽"라고 말했다. "우리는 옷을 한 번 입으면 반드시 세탁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탁은 옷의 품질을 떨어뜨립니다."
오늘날 전 세계 폐수의 20%가 패션 업계에서 나온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약 3781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내 옷장에는 12벌의 청바지가 있다. 대부분은 모양이 무너졌고, 세탁을 통해 처음 구입 당시와 많이 달라진 것들이다.
윌리엄스는 청바지 라벨을 살펴보며 "면에 엘라스테인(신축성이 좋은 합성물질)을 첨가하면 청바지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리바이스 501'이 오랫동안 품질을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청바지에 신축성이 필요할까요? 그게 없어도 청바지를 입을 수 있나요?"
마사의 옷장
마사의 옷 검사에서 청바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녀의 천적은 레깅스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나 자신에게 '레깅스를 입을까?'라고 묻는다"며 "90%의 경우, 그 대답은 '물론이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가 사는 곳에선 충분히 두껍고 튼튼하며 몸에 잘 맞는 중고 레깅스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매년 두어 벌씩 새로 구입하고 있어요."
마사의 레깅스는 "지속 가능한" 비스코스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레깅스와 마찬가지로, 신축성을 높이기 위해 화석 연료에서 추출한 합성 소재인 엘라스테인이 일부 들어갔다. 이러한 소재도 재활용을 거친 것들이 있지만, 윌리엄스는 재활용 합성 섬유는 종종 다른 공급망, 즉 플라스틱병 산업에서 온다고 말했다. 캠페인 단체인 '체인징 마켓 파운데이션'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윌리엄스는 레깅스의 수명을 우선시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봉제선을 피하고 세탁 방법을 잘 선택해 의류를 관리하는 것도 수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마사의 옷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중고품 비율이었다. 그녀의 옷 중 무려 53%가 중고품이나 업사이클링 제품이었다. 미국 평균인 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중고 의류 산업은 향후 10년 내 미국에서 약 9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리라 예상되며, 패션 분야 내 다른 어떤 하위 분야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의류 재판매 시장은 2022~2026년 사이에 1820억 달러에서 16%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빈티드'와 '디팝'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 확산에 힘입은 결과다.
마사는 "나의 중고 옷 중에는 너무 아끼다 보니 구멍이 난 후에도 버릴 수 없었던 옷도 있다"고 말했다. "소매를 돌돌 말거나 패치를 붙여 구멍을 가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멍이 난 옷이 제 옷장 속 최고의 옷인 것 같아요."
하지만 구입한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마사도 자신이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옷이 25%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마사는 그 원인을 옷 보관 방식에서 찾았다. 윌리엄스는 그녀에게 잊고 있던 옷을 다시 발견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다.
마사는 "제가 입지 않는 낡은 옷 중에는 감성적인 가치가 있는 옷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지만 선뜻 기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 옷도 있고, 되살려 입고 싶은 옷도 있었습니다. 몇 개는 자선 단체가 운영하는 옷 가게로 가져갔어요."
윌의 옷장
윌은 옷장에 있는 모든 옷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그중 95%를 입고 있었다. (나머지 5%는 빈티지 축구 셔츠와 수년 동안 수집한 소중한 아이템들이었다) 그 비결은 네이비와 그레이, 베이지라는 차분한 옷 색깔과 단순한 옷 형태, 복잡하지 않은 옷장 구조라고 했다.
윌리엄스는 윌에게 "당신은 분명 물건을 사기 전에 꼼꼼히 살피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적정 옷장보다 더 많은 옷을 갖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자극에 굴복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가격과 입는 수를 곱해서 산출하는 '옷의 가치'가 훨씬 더 높은 사람이죠."
윌의 옷 중 약 3분의 1은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혼방 소재의 스포츠웨어였다. 그는 "이런 제품들은 환경 영향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운동할 때 입는 상의와 반바지는 대부분 로컬 제조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죠. 또한 매번 사용 후 보통 40도의 물로 세탁합니다."
합성 섬유를 세탁하면 미세 플라스틱이 방출돼 수로를 오염시킨다. 섬유는 전 세계 미세 플라스틱 오염의 34.8%를 차지하는 가장 큰 1차 미세 플라스틱 배출원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한 연구팀은 세탁 주기와 물 온도를 줄이면 의류의 수명을 크게 연장하고 환경으로 배출되는 염료와 극세사의 양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윌리엄스는 소재를 넘어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관행과 특히 유엔의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 산업 헌장'에 서명한 업체들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이 헌장에 서명한 기업들은 공장의 전력을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지구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윌의 스포츠웨어 옷장에는 1년에 한 번만 입는 스키복이 있다. 윌리엄스는 이 분야는 렌탈 시장이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사용하지 않는 나머지 기간에 스키 장비를 대여한다면, 사용은 사용대로 하면서 부수입도 올릴 수 있다.
영국의 '에코스키' 등 많은 패션 플랫폼이 이러한 카테고리를 운영 중이다. 자주 사용하면 의류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는 위험은 있다. 하지만 렌탈 시장의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렌탈 업체도 보험 등을 통해 의류의 수명을 연장하고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적정 옷장을 만드는 방법
옷 검사를 시작할 때, 우리 세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핫 오어 쿨 인스티튜트'에서 "적정하다"고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옷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1년에 5벌까지 새 옷을 구입하는 것은 적정하다 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많이 사고 싶은 충동은 느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새 수영복을 살 계획이다. 내 수영복은 모양이 망가졌다. (나는 수영을 자주 한다.) 마사는 레깅스를 계속 사되, 대안을 찾아볼 계획이다.
윌은 "솔직히 나는 필요한 게 없다"고 말했다. "제 슬리퍼가 낡긴 했지만, 급한 건 아닙니다. 제가 응원하는 축구팀에서 정말 멋진 새 셔츠를 출시하고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저는 2013년 이후로는 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옷 검사 이후에는 셔츠 구입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그렇다면 더 나은 옷 관리를 위해 어떤 식으로 옷장을 점검해야 할까? 윌리엄스는 "그런 만병통치약은 없다"면서도, 옷장을 투자와 비용이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눠보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입으며 기분이 좋고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아이템은 '투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소재의 유래가 확실하지 않거나,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입지 않은 채 옷장에 걸려 있는 옷은 '비용'에 해당합니다."
매년 새로 생산되는 옷은 1000억 벌이 넘는다. 이 중 65%가 1년 안에 매립된다. 우리가 새 옷을 사지 않기 위해 취하는 모든 행동은 패션의 가장 큰 문제인 과잉 생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옷장과 소비 행태를 바꿈으로써 정부와 기업에 메시지를 전하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윌리엄스의 말처럼, "우리가 시민으로서 함께 힘을 모으면, 큰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나 산티는 프리랜서 기자이자 "지구를 치유하는 세 가지"의 저자다. 추가 취재는 'BBC 퓨처'의 기자인 윌리엄 파크와 'BBC 퓨처 플래닛'의 에디터인 마사 헨리케스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