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 김규성·오선우의 버티기

부상 악재 속에서도 팀을 지켰던 ‘최고참’ 최형우의 바람과 달리 KIA의 2025시즌이 아쉬움으로 저물고 있다. <KIA 타이거즈 제공>

KBO는 강자들의 무대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과정부터 쉽지 않고 1군 선수로, 주전으로 자리를 굳히는 것도 정말 어렵다.

1년에 144경기나 소화하는 스포츠라서 매일 경쟁하고, 생존싸움을 한다.

강자라서 이들이 1군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그런데 아니기도 하다.

‘버티는 자가 강자’라는 말이 있다. 강자도 부상·부진을 버텨내지 못하면 밀려난다.

올 시즌 KIA를 생각하면 그랬다.

아쉬운 결승선을 눈앞에 둔 지금, 버티는 자가 강자였다.



잘 나가는 팀은 엔트리 변동이 많지 않다.

지난 시즌 KIA는 확실한 라인업과 필승조가 있었다.

잘 구성된 조각들로 우승 퍼즐을 완성했던 2024년이었다.

2025시즌은 변동의 시즌이었다. 일단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김도영의 개막전 부상을 시작으로 주전 야수들이 연달아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투수진도 부상을 피해 가지 못했다. 좌완 선발과 필승조 윤영철과 곽도규가 수술대에 올랐고, 황동하는 억울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상에 부진까지 겹치면서 ‘재정비 차원’의 말소도 많았다.

변동의 시즌,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KIA 선수는 3명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많은 이들이 최형우를 이야기할 것이다.

후배들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도 ‘최고참’ 최형우는 여전한 타격으로 4번 자리를 지켰고, 최선을 다한 질주로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줬다.

‘꾸준함’의 대명사 최형우는 KIA에서 가장 많은 130경기를 뛴 선수이기도 하다.

타석과 수비이닝을 따지면 유격수 박찬호가 앞서지만, 그는 시즌 초반 2루 슬라이딩을 하다가 무릎을 다치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

두 번째 선수로는 아마 양현종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양현종은 7월 9일 한화전을 끝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한 뒤 24일 LG전까지 쉬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시선을 불펜으로 돌려 ‘꾸준함’을 생각하면 두 번째 ‘개근상’ 주인공이 보일 것이다.

타이거즈 역사상 첫 100홀드를 장식하기도 한 전상현이 단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투수 조장’으로 역할을 했다.

세 번째 선수는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공·수·주 다양한 순간에 등장한, 특별했던 장면에도 있던 선수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라운드 홈런을 치고 펄쩍펄쩍 덕아웃으로 뛰어 들어가던 김규성이 바로 3인 중 한 명이다.

개막전부터 엔트리를 지키고 있는 KIA 내야수 김규성. /김여울 기자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김규성은 6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엔트리에서 말소된 적이 없다.

김규성은 지난 시즌에는 27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막판 순위 싸움에 힘을 보태면서 우승반지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마무리캠프에서 수비 강훈을 하면서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고, 올 시즌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폭발적인 타격은 아니지만 전천후 내야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수비, 잠실을 흔들었던 홈스틸을 선보였던 과감한 주루 실력을 갖추면서 쓰임새 많은 선수로 우선 떠오르는 이름이 됐다.

‘부러지지 않는 이상 뛴다’라는 최형우의 이야기처럼 부상도 버텼다.

김규성은 “안 아파야지 많은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걸 많이 느꼈던 해인 것 같다. 안 아프니까 확실히 운도 많이 따라주고 경기도 많이 나가고 그랬던 것 같다”며 올 시즌 KIA의 한 맺힌 키워드가 된 ‘부상’을 이야기했다.

김규성은 가장 많은 경기를 뛰고 또 보면서 귀한 공부도 했다.

김규성은 “시즌 초와 타격에 큰 변화는 없는데 타석에서 어느 정도 많이 나가다 보니까 이런 카운트에서는 뭐가 들어올 것 같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공이 오겠다라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그전에는 머릿속에 잘해야 된다, 잘 보여야 된다라는 이런 생각 때문에 내 플레이를 못했던 느낌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그런 플레이를 했다면 올해는 여유도 생기면서 좋은 플레이가 나오는것 같다”며 “형들 플레이하는 것을 보면서도 매년 배우고 있다.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또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걸 배웠다. 시합을 안 나가도 그런 부분이 많이 보이면서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전들이 동시에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그라운드 주인공도 될 수 있었다.

지난 6월 KIA는 ‘함평 타이거즈’의 힘으로 12승5무7패 승률 0.682를 찍었다.

당연한 게 아니었던 자리에서 당연하지 않은 활약으로 팬들을 웃게 했던 선수들, 김규성에게도 잊을 수 없는 6월이었다.

김규성은 “함평 타이거즈라고 불리는 어린 선수들, 선우형, 호령이형, 민이 이런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 기간에는 정말 힘들어도 묵묵히 나와서 운동하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그러면서 버텼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8월 31일 KT전도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았다.

김석환의 희생플라이로 4-4가 된 8회초 2사 2루, 김규성이 외야 우측 펜스를 때리는 큰 타구를 날렸다.

다른 투수도 아니고 KT 마무리 박영현을 상대로 펜스를 직격한 김규성은 2루에 이어 3루를 돌아 홈까지 내달렸다. 6-4를 만든 극적인 홈런이었다. 기쁨의 순간이 짧기는 했다.

KT 마무리를 공략했지만 KIA도 뒷문 단속에서 실패하면서 김상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

김규성은 “공이 펜스 맞고 나왔다. 전력으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무조건 3루까지는 간다하면서 뛰었는데 코치님이 계속 돌리셨다. 그때 알았다. KT 투수 마무리를 상대로 내가 그라운드를 홈런을 쳤다? 그때는 진짜 너무 좋았다. 이겼다, 진짜 이겼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방방 뛰면서 좋아했었다”며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었다. 다음 게임을 또 해야하니까”라고 희비가 교차했던 날을 떠올렸다.

첫 풀타임 시즌이라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시즌 끝나가는 게 못내 아쉬운 김규성이다.

김규성은 “우리 선수들 이기려고 정말 열심히 한다. 그런데 안 될 때는 정말 안 된다. 이기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데 안 될 때는 뭘 해도 안되는 것 같다. 그만큼 야구가 어렵다. 야구가 매년 다르고, 어려워지고 그런 것 같다”며 “시즌이 끝나가는 게 아쉽다. 팀 사정도 그렇고, 부상자들이 워낙 많았다. 부상자들이 많다고 해서 시즌을 안 할 것도 아니고 올해는 많이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4월 12일 1군에 등록된 뒤 한 번도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고 입단 후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오선우. /김여울 기자

아쉬움을 안고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김규성과 함께 이 악물고 버티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버티기 단계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면서 웃은 오선우.

개막전부터 뛰지 못했지만 4월 12일 시즌 첫 등록 이후 오선우의 이름은 한 번도 엔트리에서 빠진 적이 없다.

2군에서 버티고 버텼던 그에게 다른 이들의 부상은 기회가 됐다.

달라진 타격으로 부상 빈틈을 채운 그는 어느새 라인업에 당연하게 이름이 적히는 선수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말대로 ‘버티는 중’이다.

지난해 3경기, 2023년 33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오선우는 올 시즌 118경기에 나왔다.

2019년 입단 후 지난해까지 184타석이 전부였던 그는 올 시즌에는 452타석을 소화하고 있다.

힘이 넘칠 때는 모든 타석이 즐겁고 행복했지만, 처음 경험해 보는 긴 시즌에 오선우의 발이 무거워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1군은 보이는 것처럼 화려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화려한 무대를 위한 지난한 과정과 무거운 책임감 등은 알지 못했다.

오선우는 “주전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라는 걸 첫 번째로 깨달았다. 2군에서 계속 있으면서 TV로만 보면 1군에서 경기 나오면 안 힘들 것 같았다. 경험이 없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뛰어보니까 만만치 않았다. 주전 선수들이 괜히 주전이 아니다. 주전을 뛰면서도 결과를 내야 되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는 걸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다음 기회, 주전이라는 확실한 자리를 위해 오선우의 지금 버티기는 의미가 있다.

오선우는 “많이 배웠다. 타격폼도 1개로는 안 될 것 같다. 원래 다리 들고 쳤는데 힘도 떨어지고 하니까 지금은 숏 템포로 치고 있다. 그런 걸 배운 것 같다. 내년에도 기회가 생긴다면, 기회를 잘 잡아서 또 이렇게 경기를 나가게 된다면 힘든 시기가 왔을 때 다를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슬럼프가) 한 달 정도 갈 것을 일주일 정도 하다가 바로 탈출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을 쌓는 계기인 것 같다”며 “올해 만약에 후반기에도 잘했으면 내년 힘든 시기에 또 이랬을 것이다. 올해 다 경험을 해봐서 다행이다. 전반기에는 잘해보기도 하고, 후반기에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올해가 큰 수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상 없는 게 최고였다. 일단 시즌이 끝나면 나의 목표가 이루어진다. 1군 올라와서 풀타임도 처음이지만 한 번도 2군 안 내려간 게 또 처음이다. 그래서 시즌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144번째 경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1도가 부족해서,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해서 앞선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도 있다.

버티고 버틴 ‘강자’ 김규성과 오선우의 2025 시즌은 충분히 뜨거웠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