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지뢰처럼 깔린 생애주기별 멸칭

2026. 5. 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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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정회옥 '나이 묻는 사회'
생성형 인공지능(AI) 챗 GPT를 활용해 만든 영포티 이미지. 한때 젊은 감각을 가진 40대를 긍정했던 이 말은 중년의 멸칭이 됐다.

한때 꼰대로 불렸던 한국 중년의 새 별명은 영포티다. 마케팅업계가 중년 가운데 '젊은 감각과 소비성향'으로 돈을 더 쓰는 이들을 부르던 이 말은 이제 젊어 보이려 애쓰는 중년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20, 30대 여성에게 부적절한 관심을 갖는 40대 남성을 따로 모은 '스윗 영포티', 틀니와 영포티를 합친 '틀포티'로 진화 중이다.

나이가 조롱의 대상이 된 건 중년만의 비극일까.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신간 '나이 묻는 사회'는 여기서 시작한다. 왜 한국 사회는 생애주기별 멸칭을 끝없이 만드는가.

먼저 생애주기별 멸칭의 소개.

아해놈, 애녀석 등 어린아이의 하대어를 바꾸려고 소파 방정환이 만든 용어 어린이는 한 세기가 지나 미숙한 초보의 대명사가 됐다. 용례는 주린이(주식투자 어린이), 요린이(요리 어린이), 헬린이(헬스 어린이). 잼민이는 초등생을 낮춰 부르는 말, 학교 급식과 벌레를 합친 급식충은 청소년의 멸칭이다. 청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N포세대, 그래서 오늘만 사는 것처럼 인생을 즐기는 청년을 비꼬는 욜로도 있다. 영포티 이전, 중년은 김여사와 개저씨로 불렸다.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 노슬아치까지 노년의 멸칭은 무한 확대 중이다. 나이가 들수록 멸칭의 강도는 세지고, 그 세대를 향한 혐오도 커진다.

여기까지는 꽤 나왔던 담론. 신간은 세대별 멸칭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짚는다. 미국에는 늙은 꼰대의 영어식 표현인 기저(geezer·괴팍한 노인)가 있고, 죽음을 앞둔 노인을 화석에 빗댄 말도 있다(파슬·fossil). 일본도 기저와 비슷한 노해(老害·로가이)가 있다. 중국은 4050세대를 유니(油膩) 중년으로 부른다. 배에 기름이 끼었으면서 주제 모르고 허세 부리는 중년이란 뜻이다. 청년층의 미국, 일본식 멸칭은 각각 줌머(Zoomer), 약해(若害·자쿠가이)다.

민폐일지도 모르는 아이와 보호자를 미리 추방하는 세계. 아기와 엄마를 가로막는 '노키즈' 문구가 관용 없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이 멸칭을 쓴 화자에 대한 사회적 처우다. 저자는 "서구에서 나이 멸칭을 사용하면 사회적 논쟁이나 사과,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멸칭이) 미디어에서 관용적으로 소개된다"고 짚는다. 이런 멸칭을 쓰는 게 나이 차별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차별적 표현은 호명을 거쳐 일상에 스며든다. 어린이 동반을 금지하는 노키즈존, 노인 출입을 막는 노시니어존은 이제 40세 이상 예약 불가 펜션, 70세 이상 구입 불가 골프장 회원권으로 세분화됐다. 이 때문에 멸칭의 대상이 된 피해자가 본인은 그 집단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노인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노노 현상'이 대표적이다.

"탑골공원 내 급식소를 탐방한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풍경을 상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노인들은 지저분하다, 냄새 난다, 무섭다 등의 이유를 들어 친구를 사귀거나 말을 걸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노인들은 서로를 타자화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반대로 자신이 겪은 나이 차별을 내면에 새기며 침체된 삶을 사는 '자기 연령주의' 현상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지식과 연령차별은 관련성이 있다"고 단언한다. 한국 중학교 사회 교과서를 분석해보니, 고령화는 주로 노인 부양 및 소외 문제, 사회적 부담 등 부정적 어휘로 기술됐다. 반대로 특정 세대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그 세대를 긍정할 수 있다. 국내 청소년 대상 연구에서 건강한 노인과 자주 접촉한 학생일수록 노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적었다. 각 세대 특징의 입체적 교육, 다양한 세대가 함께 출연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존대어만큼이나 하대어가 문법까지 발달한 한국어의 특성을 감안하면, 나이를 묻지 않고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처음 보는 모두에게 존대어를 쓰는 게 선을 넘지 않는 방법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사람들은 자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반드시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은 우리보다 먼저, 혹은 늦게 태어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세대 간 근본적 약속을 깨는 것이자 지극히 연령차별적인 행위다."

나이를 묻는 사회·정회옥 지음·한겨레출판 발행·348쪽·2만 원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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