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첫 번째 SUV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에서 SUV는 한때 '주변부'에 불과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국내 시장은 세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SUV는 이제 명실상부한 주류로 올라섰다. 특히 1990년대 레저 붐과 2000년대 도심형 수요의 폭발을 거치며, 각 완성차의 정체성과 기술 로드맵을 규정하는 '핵심 차종'으로 부상했다. 특히 각사의 첫 번째 SUV는 단순한 신차가 아니라, 브랜드가 어떤 시장을 선택했고 어떤 역량을 축적하는지 결정한 분기점이었다. 아래 다섯 모델은 '처음'이 남긴 방향성과 유산을 보여준다.

KGM 코란도 – 대한민국 SUV의 출발점
대한민국에서 'SUV'라는 개념을 대중화한 시발점은 코란도였다. 군용 지프의 계보를 민수 시장으로 옮겨오며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라는 이름 그대로 제조사 정체성을 규정했고, 차명과 브랜드를 넘나들며 장수 네이밍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거화·동아 시절의 개량을 거쳐 쌍용 편입 후에는 인테리어·편의장비를 승용차 수준으로 다듬어 본격적인 패밀리용 4×4 이미지를 구축했고, 1990년대 '뉴 코란도'로는 짧은 휠베이스·높은 접근각·프레임 섀시 조합의 정통 오프로더 매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후 모노코크와 전륜 기반 AWD를 도입한 코란도C, 파생형 '코란도 스포츠/투리스모'로 라인업을 확장하며 '차명→브랜드' 전환의 선례를 만들었다. 오늘날 KGM에 이르기까지 코란도의 유산은 "SUV 전문기업"이라는 정체성과 제품 기획 철학으로 이어지며, 국산 SUV 역사에서 상징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기아 록스타 –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첫걸음
록스타는 아시아자동차 K-111 전술차와 '랜드마스터' 콘셉트의 민수화 결과물로, 기아의 첫 지프형 SUV였다. 박시한 차체와 프레임 보디, 파트타임 4×4, 1.8 가솔린·2.2 디젤 등 기본기는 단단했지만, 파워 스티어링 부재와 거친 승차·정숙성, 협소한 2열 등 일상성의 약점이 분명했다. 급성장하던 1990년대 내수에서 소비자 기대가 '험로 성능'에서 '도심형 편의·안락함'으로 이동하자, 록스타의 강점은 매력 요소보다 타협해야 할 불편으로 인식되기 쉬웠다. 결과적으로 록스타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기아가 이후 스포티지·쏘렌토로 이어지는 도심지향 SUV 공략과 승용 플랫폼 기반 전략으로 선회하는 데 중요한 학습을 제공했다. 즉, '첫 SUV'로서의 경험이 오늘의 글로벌 SUV 강자 기아를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이자 토대였다.

현대자동차 갤로퍼 – 명작 라이선스의 현지화가 연 전설의 시동
갤로퍼는 현대정공 주도로 미쓰비시 1세대 파제로를 라이선스 생산해 내놓은 현대의 첫 양산 SUV로, 검증된 설계를 바탕으로 시장 신뢰를 빠르게 확보했다. 디젤 중심 파워트레인과 롱·숏 바디, 2인승 밴부터 9인승까지 폭넓은 트림이 '레저 붐'과 다목적 수요를 정면 겨냥했고, 현대 브랜드 유통망을 활용한 판매 전략이 초기 확산을 가속했다. 부분변경 '뉴 갤로퍼'와 '갤로퍼 II'로 승용 감성을 강화하며 상품성을 키웠고, 경쟁작 쌍용 무쏘와의 각축은 국산 SUV 전반의 품질·성능 상향을 견인했다. 비록 독자 개발 출신은 아니었으나, 갤로퍼는 현대의 4×4 기술 축적과 테라칸·싼타페·투싼으로 이어지는 풀라인업 SUV 전략의 출발점이자,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상징적 유산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첫 SUV'가 현대의 SUV 저변을 넓히고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한 축을 영구적으로 세웠다.

쉐보레(舊 GM대우) 캡티바/윈스톰 – 국산 크로스오버 보급의 촉매
GM대우가 주도 개발해 2006년 '윈스톰'으로 데뷔하고 해외에선 '쉐보레 캡티바'로 판매된 이 차는, 세타 플랫폼 기반 모노코크 차체와 온디맨드 AWD로 도심형 패밀리 SUV의 표준을 제시했다. 체급은 투싼보다 크고 싼타페보다 약간 작은 포지션에 7인승·풍부한 편의사양을 더해 '크로스오버의 실용성'을 가격 경쟁력과 함께 전달했고, 이는 국내 C-D 세그먼트 SUV의 옵션·구성 경쟁을 촉발했다. 유럽 지향 주행 감각의 파생 '윈스톰 맥스(오펠 안타라)' 시도는 국내 사양 맞춤 부족으로 한계를 보였지만, 쉐보레 전환 이후 캡티바로 명맥을 잇는 동안 페이스리프트·사양 개편을 통해 패밀리 SUV 시장의 선택지를 넓혔다. 무엇보다 대우/GM대우 계열에 부재했던 '독자 SUV' 경험을 축적해 이후 글로벌 GM 내 역할을 확대하는 발판이 됐다. 요컨대 윈스톰/캡티바는 국산 크로스오버 보급을 가속한 실용 중심의 첫 주자였다.

르노삼성자동차 QM5 –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이다
2000년대 들어서까지 오직 세단 라인업만으로 운영했던 르노삼성자동차는 2007년에 들어서야 르노 콜레오스 기반의 첫 SUV 모델, QM5를 선보였다. 르노삼성은 물론 르노 입장에서도 첫 번째 SUV 모델에 해당하는 QM5는 독특한 디자인과 구성이 특징이었다. 유럽식의 주행 감각과 프랑스풍 디테일을 내세운 QM5는 현대차 투싼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크기에, 레인지로버에 적용되던 클램셸 타입 테일게이트 등 차별화 포인트를 도입해 이목을 끌었다. 다만 국내 도심·패밀리 수요의 관점에서 사양·공간 구성과 가격 책정이 동급으로 인식되던 투싼·스포티지 대비 설득력이 부족해, 시장 확장성은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QM5는 르노삼성이 세단 일변도에서 벗어나 SUV 포트폴리오를 열고, '유럽 감성 SUV'라는 브랜드 캐릭터를 시도한 첫 작품으로서 의미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