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황금 세대'는 끝났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벨기에 축구가 황금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한 적은 애시당초 없었다.

#우승컵
황금세대 명명의 기준은 명확하다. 우승컵이다. 그동안 황금세대라고 인정받은 팀들은 대부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여담으로 한국도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승했다면 명실상부 황금세대라고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황금 세대는 지네딘 지단을 중심으로 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세대. 그리고 앙투안 그리즈만과 킬리앙 음바페를 앞세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우승 세대를 칭한다.
스페인 역시 유로 2008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2년 유로 우승을 이끈,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사비 에르난데스를 축으로 펼친 '티키타카'로 세계를 평정한 이들을 황금세대라고 한다.
'호날두'가 주축이 된 포르투갈은 유로 2016에서 우승했다. 2018~2019 UEFA 네이션스리그 우승컵도 들어올렸다.
물론 평소의 실력에 비해 엄청난 성과를 낸 팀들에 대해서도 황금세대라는 표현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대개는 그들 국내 내부에서 쓰는 표현들이다. 결국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면 황금세대라는 칭호를 붙이기 힘들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벨기에에게 황금세대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의아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통용됐다. 착시 현상 때문이었다. 벨기에 대표팀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고공행진했던 FIFA 랭킹 때문이었다.

#최고의 선수들 & FIFA랭킹 1위
사실 벨기에는 유럽 축구의 중심에 있지 못했다. 한번씩 반짝 하는 팀이었다. 황금 세대라고 불리기 전까지 월드컵 최고 성적은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의 4위였다. 보통은 16강 진출이 현실적인 목표인 팀이었다.
그러던 벨기에가 2010년대 들어 달라졌다. 화수분처럼 스타 선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로멜로 루카쿠, 에덴 아자르, 케빈 더 브라이너, 다니엘 판 부이텐, 뱅상 콤파니,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티보 쿠르투아 등 최고의 선수들이 계속 나왔다. 대부분 유럽 최고의 클럽에서 주전으로, 그리고 각 리그 최고 선수로 활약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포텐을 터뜨렸다. 파나마, 튀니지, 잉글랜드, 일본, 브라질을 격파하면서 4강까지 올랐다. 4강에서는 프랑스에 졌지만, 잉글랜드와의 3~4위전에서 승리하며 3위에 올랐다.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이후 벨기에는 FIFA랭킹 1위에 등극했다. 2018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FIFA 랭킹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사수했다. FIFA랭킹 1위 고수의 뒤에는 실력과 함께 행운이 따랐다. 유로 2020 예선에서는 러시아, 키프러스, 카자흐스탄, 스코틀랜드, 산마리노와 함께 한 조에 속했다. 러시아가 조금 까다로울 뿐 나머지 팀들은 모두 약체들이었다. 벨기에는 이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듭하면서 FIFA랭킹 포인트를 계속 모아갔다.
코로나 19 사태로 1년 늦은 2021년 열린 유로 2020에서도 벨기에는 운이 따랐다. 8강에서 이탈리아에게 지면서 탈락했다. 그래도 FIFA랭킹 경쟁을 하던 다른 팀들의 성적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벨기에는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월드컵 예선에서도 에스토니아, 체코, 벨라루스, 웨일스 등을 상대하며 포인트를 쌓았다. 결국 2022년 3월 브라질에 밀려 2위로 내려올 때까지 벨기에는 3년 5개월간 FIFA랭킹 1위를 달렸다.

#실패
그 사이 벨기에는 노쇠화되고 있었다. FIFA 랭킹 1위라는 찬란한 빛에 가려 노쇠화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 콤파니는 은퇴했고, 알더베이럴트와 베르통언은 나이를 먹었다. 에이스 아자르는 몸이 불어났다. 주포 루카쿠는 완벽한 통계 세탁을 했다. A매치 85골을 넣으며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약한 팀에게만 폭풍골을 터뜨리는 '양민 학살'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루카쿠는 에스토니아를 상대로 8골, 아이슬란드와 룩셈부르크, 러시아를 상대로 5골을 넣는 등 약팀에만 강했다. 잉글랜드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축구 강국을 상대로는 단 1골씩 밖에 넣지 못했다.
결국 일이 터졌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당시 FIFA 랭킹 2위였던 벨기에는 캐나다에게만 1대0으로 간신히 승리했을 뿐이었다. 모로코에 0대2로 졌다. 3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는 0대0으로 비겼다. 결국 조3위로 탈락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6년만의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그리고 1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벨기에는 자존심 회복을 외쳤다. 첫 상대 역시 만만했다. FIFA랭킹 48위 슬로바키아였다. 여전히 FIFA랭킹 3위인 벨기에는 슬로바키아를 몰아쳤다.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더 브라이너에, '양학' 마스터 루카쿠까지 버티고 있었다.
결국 졌다. 공격은 변죽만 울릴 뿐 답답했다. 운까지 따르지 않았다. 벨기에는 두 골을 넣었지만 최소됐다. 하나는 오프사이드로, 또 하나는 핸드볼이었다. 벨기에 선수들 그리고 팬들은 고개를 숙였다.
황금 세대 아니 도금 세대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벨기에는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와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