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FO] 대한민국 1등 기업의 '경영지원실장'이 되려면... I 삼성전자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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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회사의 돈 관리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 회사 안살림을 책임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경영지원실장으로 사업 부서에 속하지 않고 최고경영자(CEO)와 대등하게 공조하며 경영 전략과 재무, 기획 인사 등을 총괄한다. CFO가 CEO에 뒤지지 않는 위상을 갖고 있다.

재무에 밝은 인재를 중시하는 삼성전자답게 고르고 고른 옥석에게 CFO를 맡긴다. 그만큼 따지는 점도 많다.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순혈주의'에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치며 육성된 인재를 선발한다. 단순한 재무 전문가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다른 계열사 간 협력 방안을 찾고, 동시에 미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인재가 CFO에 오를 수 있다.

윤주화부터 박학규까지 공통점 '삼성전자'

2010년 이후 삼성전자 CFO를 지낸 5명의 공통점은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다른 회사에서 이직한 사례는 없다. 2010년부터 2년간 경영지원실장을 지낸 윤주화 사장은 197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공채 19기' 출신이다. 경영지원실장에 오르기까지 32년간 회사를 지켰다. 후임인 이상훈 사장은 1982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일평생을 삼성전자에서 일했다. 노희찬 사장과 최윤호 사장 역시 각각 1988년, 1987년 입사부터 삼성전자 명함을 달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CFO인 박학규 사장도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17년 잠시 퇴임하기까지 계속 삼성전자에 있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이유로는 삼성전자에서 CFO가 갖는 중요성이 꼽힌다. 삼성전자 CFO의 임무는 단순히 회사 자금 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전체 계열사 전략을 관장하며 총수의 의사결정에도 발맞춰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산하에는 재무와 회계를 담당하는 '재경', 전략을 수립하는 '기획', 계열사 경영 계획을 살피는 '지원' 등 주요 담당이 포진해 있다. CFO 후보군을 꾸릴 때 내부에서 검증된 믿을만한 인물로 범위가 좁혀지는 이유로 풀이된다.

경험과 능력을 중시하다보니 CFO들의 출신지나 대학도 특정 지역이나 학교에 편중되지 않는다. 윤 사장은 수원고등학교를 졸업해 성균관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이 사장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노 사장은 성광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최 사장은 덕수정보산업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박 사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감사팀장 출신 윤주화, 컨트롤타워 전문 이상훈

컨트롤타워나 지원 부서를 거친 인물이 CFO로 영전한다는 특징도 사실상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삼성 컨트롤타워는 회장 비서실(1959~1998)로 시작해 구조조정본부(1998~2006), 전략기획실(2006~2008), 미래전략실(2010~2017)로 이어져 왔다. 삼성의 전자, 금융 계열사를 총괄하며 주요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임시조직 성격인 사업지원T/F가 미래전략실이 담당하던 컨트롤타워 업무 중 전자 계열사에 국한된 형태로 이양받아 수행하고 있다.

예외는 윤 사장이다. 삼성전자에서 임원 생활 초기를 대부분 경영지원실과 경영지원실의 전신인 경영지원총괄에서 지냈다. 1998년 경영지원총괄 경영지원팀장을 맡아 2009년 1월 사장으로 승진해 감사팀장으로 옮기기까지 자리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2010년 1월 해체된 재무와 전략, 기획을 맡은 경영지원총괄본부를 당해 연말에 경영지원실로 다시 되살리면서 윤 사장을 수장으로 앉혔다. 재무와 인사, 각 계열사 경영 진단까지 맡으며 위상이 크게 확장됐다.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재경팀장에는 이선종 부사장이 있었다. 재경팀장은 CFO를 도와 자금과 재무,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부사장은 2013년 말 사장으로 승진하며 금융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로 떠났다.

윤 사장 이후 2012년 말부터 2017년까지 CFO를 지낸 이 사장부터는 이력에 컨트롤타워 근무 경력을 찾아보기 쉽다. 특히 이 사장은 입사 후 8년이 지난 1990년 삼성 비서실 경영관리1팀에서 차장 직급을 달고 컨트롤타워에 첫발을 들인 뒤 줄곧 재무와 전략 분야 업무에 매진했다. 이후 삼성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담당임원(2004년), 전략기획실 전략지원팀 전무(2006년) 등을 거쳤다.

경영지원실장에 오르기 직전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래전략실 전략1팀장 사장으로 일했다. 미래전략실은 전략과 기획, 인사, 법무, 홍보, 감사 등 다양한 지원업무를 총괄했는데 특히 전략1팀은 삼성전자와 계열사를 담당하는 핵심 부서로 꼽힌다. 신사업을 발굴하고 인수합병을 결정하며 필요한 경우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중요한 업무를 수행했다.

이 사장과 합을 맞춘 재경팀장은 남궁범 전무로, 2014년 연말 승진해 부사장에 오른 뒤 2021년 말까지 오랜 기간 삼성전자의 곳간을 책임졌다. 남 부사장은 2021년 말 사장에 승진해 현재까지 에스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17년 이후 모두 '미전실 출신'이 독식

2017년부터 삼성전자의 CFO는 변화를 맞게 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완전히 해체됐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은 계열사 자율 경영을 선포하고 삼성전자에 사업지원T/F라는 조직을 2018년 신설했다. 사업지원T/F의 공식적인 역할과 현재 추진 중인 업무는 대외에 공개되지 않지만, 삼성전자 계열사의 경영지원실장, 재경팀장, 지원팀장 등의 인사권을 행사하며 사업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17년 말 사업지원T/F가 출범할 당시 "삼성전자와 전자계열사 사장단은 각 회사 간, 사업간 공통된 문제에 대한 대응과 협력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협의할 조직을 삼성전자 내에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래전략실 등 컨트롤타워 출신이 중용되는 흐름 자체는 변화가 없다. 이 사장의 후임으로 2017년말부터 2020년 초까지 CFO를 지낸 노 사장 역시 구조조정본부 재무팀(2004년), 미래전략실 감사팀(2009년)을 거쳤다. 삼성전자 CFO를 맡기 직전인 2016년부터 2020년 초까지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부사장으로 경영지원실장을 지냈다.

노 사장의 특징은 사장으로 승진하며 첫 보직으로 2018년부터 삼성전자의 CFO를 맡았다는 점이다. 이전 윤 사장과 이 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감사팀, 미래전략실 전략1팀 등에서 사장으로 근무하다 CFO로 보직을 이동했다.

이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전자와 전자계열사간 대응과 협력을 위해 2018년 출범한 사업지원T/F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사업지원T/F가 삼성전자 소속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CFO가 관장하는 경영지원실과의 호흡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사업지원T/F 장에는 미래전략실에 몸을 담았던 정현호 사장이 부임했다. 당초 정 사장은 이 사장 이후 차기 CFO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사업지원T/F장인 정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며 정 사장과 함께 협력할 CFO로 초임 사장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노 사장은 직전까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부사장으로 CFO를 지내다 사장으로 승진과 동시에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으로 영전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의 자회사나 계열사에서 CFO를 지낸 뒤 삼성전자 CFO로 넘어온 유일한 사례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이 삼성디스플레이의 CEO를 겸직하는 등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간 협력 관계가 뚜렷하던 상황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노 사장이 삼성디스플레이 CFO로 이동한 지 약 3개월 만에 삼성전자에서 DS부문장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권오현 회장(당시 부회장)은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이사를 추가로 맡으면서 삼성전자 부품 양대 축으로 꼽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모두 관장하게 됐다. 적자가 심화하던 삼성디스플레이의 해결사로 부임한 성격이 강했다. 노 사장과 권 회장은 2016년 초부터 2017년 말까지 약 2년간 호흡을 맞춘다. 이후 권 사장이 2017년 10월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 할 때"라며 용퇴하고, 노 사장 역시 한 달 뒤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의 CFO로 이동한다.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CFO를 사내이사로 선임하지만 유일하게 노 사장은 등기임원에 올리지 않았다. 당시 노 사장에 앞서 CFO를 맡았던 이상훈 사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 데다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도 사내이사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초부터 2021년 말까지 CFO를 맡은 최윤호 사장 역시 상무 시절이던 2010년부터 2014년 미래전략실 전략1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후 최 사장은 사업지원T/F 담당임원 부사장(2017년)을 거쳐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에 오르게 된다.

지난해 3월 최 사장이 삼성SDI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며 완제품(DX)부문에서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던 박 사장이 CFO로 올라섰다. 박 사장은 2002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사업지원팀 담당 임원을, 2014년에는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 부사장을 거치며 컨트롤타워를 경험했다. 박 사장은 2017년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는 사건을 겪으며 미래전략실 동료들과 사퇴했으나 1년 만에 삼성SDS의 사업운영총괄(COO) 부사장으로 귀환했다.

이어 2020년 박 사장이 삼성전자에 돌아오며 맡은 보직은 반도체(DS)부문 경영지원실장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연말부터 DS부문에 별도 경영지원실을 마련했다. 전사 경영지원실과 마찬가지로 DS부문을 위한 재무과 기획, 법무, 홍보 업무를 담당한다. 이는 TV나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반도체는 별도 기획과 재무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행된 조치로 풀이된다.

이후 박 사장은 2021년 말 사장단 인사를 통해 통합 완제품(DX)부문 첫 경영지원실장으로 보직이 변경된 뒤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CFO를 맡고 있다. DS부문에 경영지원실이 신설되며 기존에 전사 차원에서 운영됐던 경영지원실 역시 DX부문 산하로 이동했다. 경영지원 업무가 이원화됐지만 삼성전자 CFO로서의 대표성은 DX부문 경영지원실장이 갖고 있다.

함께 삼성전자의 재무 관리를 돕는 인물은 김동욱 재경팀장 부사장이다. 그는 2011년 말부터 재경팀 담당임원 상무로 오랜 기간 예산과 비용관리 등을 책임져 온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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