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그룹의 리밸런싱 성적표는 양호하다. 비핵심자산을 팔아 차입금을 줄였고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여 자본을 보강했다. 반도체 호황까지 겹치면서 재무지표도 대폭 개선됐다.
그러나 재무제표의 숫자가 가벼워진 것과 부담이 사라진 것은 별개 문제다. 그룹 재무구조 개선 과정에는 주가수익스왑(PRS), 영구채, 전환우선주, 상환전환우선주, 총수익스왑(TRS) 등 비정형 자금조달이 대거 활용됐다. 당장 일반 차입금처럼 보이지 않거나 자본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조건에 따라 향후 현금 유출, 정산 부담, 지분구조 변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치들이다.
자산 팔아 낮춘 부채비율
한국신용평가는 2025년 말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부채성 자본조달 규모를 18조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차입금과 부채로 잡힌 금액을 제외한 수치다. 계열사 연결기준, SK㈜ 별도기준이며 SK디스커버리 계열은 제외됐다.
유형별로는 PRS 5조6000억원, 상환전환우선주 5조8000억원, 전환우선주 3조9000억원, 신종자본증권 2조6000억원, TRS 8000억원이다. 회사별로는 SK이노베이션이 11조9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SK에코플랜트 3조1000억원, SK㈜ 2조8000억원, SKC 9000억원이 뒤를 잇는다.
SK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비핵심자산 매각과 외부 자본 유치다. 우선 매각 측면에서는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13조원 규모의 비핵심자산 및 사업 처분이 이뤄졌다.
SK㈜는 SK스페셜티 지분 85%를 2조6308억원에, SK바이오팜 지분 14%를 1조2500억원에 매각했다. SK이노베이션은 보령엘엔지터미널 지분 5601억원과 코원에너지서비스 사옥 및 부지 5010억원을 처분했다. SK에코플랜트는 블룸에너지 지분 1조5000억원을 매각했고 국내 환경사업 정리를 통해 연결기준 순현금유입 9000억원을 확보했다.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매각, SK텔레콤의 카카오 지분 처분, SK동남아투자법인의 베트남 빈그룹 지분 매각도 같은 흐름에서 진행됐다.
이들 거래는 순차입금 감소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실제로 SK그룹 순차입금은 2023년 말 85조원에서 2025년 말 52조원으로 줄었다. 조정합산 기준 부채비율도 같은 기간 121%에서 88%로 낮아졌다.
'부채성 자본' 질적 관리 관건
자산매각이 차입금 감축의 수단이었다면 외부 자본 유치는 한층 복잡한 숙제를 남겼다. 자금은 자본의 형식으로 들어왔지만 상당 부분은 향후 조건에 따라 현금 유출이나 정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한 PRS와 영구채, 우선주성 조달이 집중되면서 리밸런싱의 비용이 미래로 이연된 양상이다.
부채성 자본조달의 부담은 SK이노베이션에 가장 크게 쏠려 있다. 한국신용평가 추산 기준 SK이노베이션의 관련 규모는 11조9000억원으로 그룹 전체의 60%를 넘는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 투자 부담이 집중된 계열사다. 자본확충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부담이 왜 배터리 사업 회복 여부와 맞물려 있는지 드러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8월 8조원 규모의 자본확충 패키지를 실행했다. SK이노베이션 별도 유상증자 2조원, SK온 유상증자 2조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유상증자 3000억원, SK이노베이션 영구채 발행 7000억원 등이 포함됐다.
다만 8조원이라는 총액이 그대로 재무여력으로 남은 것은 아니다. 기존 투자자 회수액 등을 감안하면 실제 순현금 유입은 3조5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유상증자의 상당 부분이 재무적 투자자(FI)와의 PRS 계약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핵심 변수도 PRS다. SK㈜는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1조6000억원 규모의 PRS를 체결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SK온 유상증자 주식을 대상으로 2조원, SKIET 유상증자 주식을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PRS를 활용했다.
PRS는 유상증자 시점에는 자본확충 효과를 낸다. 그러나 만기에는 기초자산 가치에 따라 정산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자가 보유한 지분의 실제 매각금액이 계약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보전해줘야하는 정산 의무가 발생한다.
영구채도 단순한 자본 보강으로만 보기 어렵다. SK이노베이션은 같은 달 7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만기 30년에 5년 콜옵션, 스텝업 조건이 붙어 있다. SK온도 2024년 6월 5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만기 30년에 3년 콜옵션과 스텝업 조건이 있다. SK인천석유화학과 SKC도 영구채 또는 영구교환사채를 활용했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성 인정 효과가 있어 부채비율 방어에 유리하다. 그러나 콜옵션 시점에는 상환 또는 차환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스텝업 조건에 따라 조달비용이 올라간다. 형식은 영구채지만 실질적으로는 첫 콜옵션 행사 시점부터 재무 압박이 재개되는 구조다.
우선주성 조달도 남은 부담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 9월 나래에너지서비스와 여주에너지서비스 주식을 대상으로 3조원 규모의 전환우선주를 발행했다. 발행 54개월 이후 전환청구가 가능한 구조다. 2024년 11월에는 SK E&S로부터 이관된 3조135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도 있다. 해당 증권은 비참가적·누적적 구조이며 올해 11월 1일부터 상환이 가능하다.
전환우선주와 상환전환우선주는 자본으로 인식되는 동안 재무지표를 방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전환권이 행사되면 지분구조가 바뀌고 상환권이 작동하면 현금 유출이 발생한다. 자본으로 들어온 돈이 일정 시점 이후 다시 현금흐름과 지배구조의 변수로 돌아올 수 있다.
비슷한 구조는 다른 계열사에도 남아 있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6000억원 규모 전환우선주와 4000억원 규모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했다. 전환우선주에는 발행일로부터 4년 내 기업공개(IPO) 조건과 2년 연장 조건이 붙어 있다. SK에어플러스도 2025년 10월 1조3000억원 규모 전환상환우선주를 발행했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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