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반환점을 돌았다. 30팀이 모두 희망차게 출발했던 개막전을 지나 어느새 전반기가 끝이 났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또 어느 팀은 올라갔고, 어느 팀은 내려갔다. 승부의 세계는 늘 그렇듯이 희비가 엇갈린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던 전반기를 정리해봤다.
똑같은 챔피언
지난해 양 리그 MVP는 애런 저지와 오타니 쇼헤이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양 리그 MVP가 2년 연속 같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저지는 다른 차원에 있다. 익숙한 우익수로 돌아오면서 공격력이 더 강력해졌다. 5월까지 노렸던 4할 타율은 힘들어졌지만, 개인 최고 타율을 비롯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넘보고 있다(96경기 타율 .355 35홈런, OPS 1.194). 전반기 35홈런은 62홈런을 쏘아올린 2022년 전반기 33홈런보다 더 많다. 웬만한 선수의 한 시즌 성적을 저지는 전반기에 완성했다.
오타니도 오타니였다. 내셔널리그 전반기 홈런, 득점, 장타율, OPS 1위를 휩쓸었다(95경기 타율 .276 32홈런, OPS 0.988). 타자로도 손색이 없는데, 투수로도 돌아왔다. 따로 마이너리그 재활 등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실전 등판에서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5경기 9이닝 1실점, 탈삼진 10개를 기록했다. 후반기에 투수로 정상 등판을 치르면 MVP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다.
올해는 지난 MVP들의 타이틀 방어 의지가 굳건하다. 전반기는 그들의 건재함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달라진 도전자
지난해 양 리그 MVP는 만장일치로 탄생했다. 다른 경쟁자들이 1위표를 한 장도 뺏어오지 못했다. MVP 경쟁이 다소 싱거웠다.
올해는 다르다. 아메리칸리그는 시애틀 포수 칼 랄리가 저지를 견제하고 있다. 랄리는 38홈런으로 전반기 메이저리그 홈런 1위에 올랐다. 38홈런은 메이저리그 역대 전반기 최다 홈런 2위에 해당한다. 랄리는 타점에서도 저지를 앞선다(랄리 82타점, 저지 81타점). 포수 프리미엄이 붙으면 저지와의 격차는 더 줄어들 수 있다.
메이저리그 전반기 최다 홈런
39 - 배리 본즈 (2001)
38 - 칼 랄리 (2025)
37 - 레지 잭슨 (1969)
37 - 마크 맥과이어 (1998)
37 - 크리스 데이비스 (2013)
내셔널리그도 오타니의 아성을 넘보는 선수가 있다. 시카고 컵스 피트 크로-암스트롱이다. 일명 PCA로 불리는 크로-암스트롱은 올해 공격이 일취월장하면서 MVP 후보로 거듭났다. 이미 25홈런 27도루로, 현재 42홈런 46도루 페이스다. 수비와 베이스러닝이 뛰어난 크로-암스트롱은 승리기여도에서 '타자 오타니'와 차이를 최대한 벌려야 한다.
여전히 리그 MVP 경쟁에서는 저지와 오타니가 유력하다. 하지만 랄리와 크로-암스트롱이 묘한 기류를 형성했다. 두 선수를 긴장시키는 도전자들이 나타났다.
코리안리거의 명과 암
전반기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 선수는 총 네 명이다. 이정후와 배지환, 김혜성 그리고 김하성이다. 배지환은 극적으로 개막전 로스터에 승선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7경기 11타수 1안타 .091).
출발은 이정후가 좋았다. 시즌 첫 홈런을 양키스타디움 1차전, 또 3차전에서는 2홈런 4타점으로 독무대를 만들었다. 건강한 이정후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정상급 선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쉽게 이정후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정후가 바깥쪽에 약점을 노출하자 집요하게 그 곳을 공략했다. 5월28일 이후 6월까지 이정후의 타율은 29경기 .149(101타수 15안타)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최하위였다.
5/28일~6월30일 최저 타율 (90타석)
0.160 - 폴 골드슈미트
0.157 - 잭 캐글리온
0.149 - 리스 호스킨스
0.149 - 이정후
이정후는 7월부터 다시 힘을 내고 있다. 7월 첫 경기에서 3안타를 때려내더니 7월 10경기 37타수 12안타, 타율 .324로 전반기를 마쳤다.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시간이다(92경기 타율 .249 6홈런).

김혜성은 좁은 관문을 뚫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했지만, 5월에 올라와서 자기 입지를 굳혔다. 다저스가 김혜성을 지키기 위해 베테랑 크리스 테일러를 정리한 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여전히 경기 출장은 일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혜성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48경기 타율 .339 2홈런 11도루). 로버츠 감독도 김혜성의 출장 시간이 보다 늘어날 것을 시사했다.
어깨 수술을 받은 김하성은 전반기 막판에 복귀했다. 재활 과정에서 경미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시간이 좀 더 걸렸다. 6경기 동안 안타 홈런 도루, 또 장기인 수비까지 선보였다.
김하성의 전반기는 후반기를 위한 예열이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더 높이 날아야 한다.
익숙한 내셔널리그
내셔널리그는 시즌 전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최고 승률 팀은 다저스다(58승39패 .598). 7월 7연패로 잠시 주춤했지만, 다저스는 다저스였다. 시즌 초반 샌디에이고와 샌프란시스코의 거센 추격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로버츠 감독은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본인 운영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다. 내줄 땐 확실히 내주는 경기들이 꽤 늘었다. 이건 다저스만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다.
동부지구는 필라델피아, 중부지구는 시카고 컵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두 팀 모두 애초에 지구 우승 후보였다. 다만, 필라델피아와 선두를 다툴 것으로 내다봤던 애틀랜타는 전반기를 동부지구 4위로 마감했다(42승53패 .442). 전반기 최대 이변 중 하나였다.
어색한 아메리칸리그
아메리칸리그는 디트로이트의 약진이 돋보였다. 59승38패, 승률 .608는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지난해 10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올해 최고 승률을 경쟁하는 상황은 의외였다. 물론,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부지구 도움도 있었다(같은 지구 상대 18승9패).

동부지구도 요동치고 있다. 4월15일부터 78일간 지구 1위를 지켰던 양키스는 토론토의 질주에 전반기 막판 지구 1위를 뺏겼다. 한때 동부지구 유일한 5할 승률 팀이었는데, 시즌에 접어들수록 경쟁 팀들의 견제가 심해졌다. 심지어 보스턴도 전반기를 10연승으로 마치면서 지구 1위 토론토를 3경기 차로 압박했다.
5할 승률만 4팀이 모인 동부지구는 지구 최하위 볼티모어의 승률이 .453다. 각 지구 최하위 중 최고 승률이다. 메이저리그 최대 격전지라는 명성을 되찾았다.
각 지구 최하위 승률
AL 동부 : .453 (볼티모어)
AL 중부 : .330 (화이트삭스)
AL 서부 : .418 (애슬레틱스)
NL 동부 : .396 (워싱턴)
NL 중부 : .402 (피츠버그)
NL 서부 : .229 (콜로라도)
서부지구는 휴스턴이 치고 나갔다(56승40패 .583). 매년 전력 누수가 생기지만, 그 공백을 탁월하게 메우고 있다. 5월24일 이후 30승15패는 리그 최고 성적이다. 바둑에서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다고 해서 '대마불사(大馬不死)'란 용어가 있다. 지난 8년간 7번의 지구 우승을 이뤄낸 휴스턴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신인 돌풍
새로운 선수들의 등장은 매 시즌 볼거리다. 올해도 눈도장을 찍은 신인들이 있었다.
제이콥 윌슨은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후보 1순위다. 87경기 타율 .332로 리그 2위에 올라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올스타 팬투표에서도 바비 위트 주니어를 눌렀다. 신인 유격수가 올스타전 선발 출장을 하게 된 건 역사상 두 번째다(1960년 볼티모어 론 한센).
젊은 선수들이 중심인 애슬레틱스는 윌슨과 더불어 닉 커츠, 덴젤 클락도 주목해야 한다. 58경기 17홈런의 커츠는 파워, 44경기 만에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OAA)에서 +12를 획득한 클락은 수비의 귀재다. 신출귀몰한 중견수 수비로 큰 화제를 몰고왔다.
최고 유망주 로만 앤서니도 보스턴의 부름을 받았다. 아직 성적은 평범하지만(31경기 타율 .264 2홈런) 점점 적응하는 모습이다. 최근 16경기 타율은 .371, OPS는 0.967이다.

캔자스시티 노아 카메론은 신인 투수 중 가장 견고했다(12경기 3승4패 ERA 2.31). 그리고 밀워키 제이콥 미조로스키는 신인 투수 중 가장 압도적이었다(5경기 4승1패 ERA 2.81). 포심 평균 구속 99.3마일, 슬라이더 평균 구속이 94.4마일에 달한다. 피츠버그 폴 스킨스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다저스를 상대로도 6이닝 12K 1실점을 기록했다. 이 덕분에 사무국은 단 5경기만을 뛴 미조로스키를 올스타로 뽑았다. 논란은 있지만, 그만큼 강렬했다.
부상 악령
올해도 어김없이 불청객은 찾아왔다. 애리조나는 승부수 코빈 번스가 토미존 수술대에 올랐다. 디트로이트의 기대주 잭슨 조브도 토미존 수술을 피하지 못했다. 게릿 콜이 토미존 수술로 시즌 아웃된 양키스는, 클락 슈미트마저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됐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에 의하면 스프링캠프 이후 팔꿈치 내측측부인대 부상을 입은 투수는 18명이다. 이 가운데 10명이 22~29세 투수들이다. 성장기와 전성기를 관통하는 시기다. 젊은 투수들의 활약이 반가우면서도 불안한 이유다.
한편,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몸값을 못하는 앤서니 렌돈과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올해도 부상에 신음하고 있다.
렌돈은 개막도 하기 전에 백기를 들었다.
퇴진
성적이 실망스러운 팀은 충격요법을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감독 경질이다. 피츠버그 데릭 셀턴, 콜로라도 버드 블랙, 볼티모어 브랜든 하이드, 워싱턴 데이브 마르티네스가 감독직을 잃었다. 워싱턴은 2019년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낸 마이크 리조 단장도 해고했다.
에인절스는 론 워싱턴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남은 시즌을 결장한다. 올해 73세 워싱턴 감독은 현역 감독 최고령이다.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나이의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밖에, 에유헤니오 수아레스의 4홈런 경기, 클레이튼 커쇼의 통산 3000탈삼진, 카슨 켈리와 바이론 벅스턴의 히트 포 더 사이클 등 대기록도 풍성했다.
순위 싸움이 본격화될 후반기도 가지각색의 일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후반기는 오는 토요일부터 시작된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