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곳으로 수천 년 동안 제국의 흥망성쇠가 반복됐다. 길가에 널린 돌덩이마저 고대 로마제국의 유물인 곳, 켜켜이 쌓인 역사만큼 다양한 인문 경관과 아나톨리아반도의 장엄한 자연이 여행자를 홀리는 곳이 바로 튀르키예다.
Travel Info
항공 대한항공, 터키항공 등이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자 90일 무비자
환율 1TRY(튀르키예 리라) = 약 40원
튀르키예는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어 환전은 그다지 필요 없다. 비상시를 대비해 소액만 환전해도 충분하다.
대중교통 각 도시별로 교통카드 시스템을 운용한다. 이스탄불 기준 지하철, 버스 요금은 약 30리라. 택시 요금은 지역마다 상이하다. 기본요금(약 20리라)은 저렴하지만, 50m 단위로 미터기가 작동해 실제 요금은 저렴하지 않다. 셀추크 택시는 기본요금이 140리라이며, 목적지에 따라 기사와 요금을 흥정해야 한다. (*2025년 2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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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1500년이 넘는 역사를 담고 있다. 구시가지는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신시가지와 아시아 지구에는 미식가를 위한 레스토랑이 빼곡하다. 이스탄불에는 여행자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
역사 여행의 보고
이스탄불은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이 충돌한 문명의 교차점이었다. 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이라는, 서구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두 제국이 번갈아 이 땅을 차지하며 1500여 년간 수도로 삼았던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성벽 안에 들어선 수많은 모스크는 두 문명이 얽히고설켜 흘러온 역사를 상징한다. 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2km 안에 아야 소피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예레바탄 사라이 등 엄청난 유적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체력만 받쳐준다면 하루 만에 도보로 모두 둘러볼 수도 있다.
이스탄불의 상징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다. 흔히 ‘아야 소피아’라고 부르는 비잔틴 양식 건물로 6세기 초에 완공됐다. 로마시대에는 성당으로 기능했으나,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를 점령한 1453년부터는 모스크로 사용했다. 튀르키예공화국 수립 후 1935년부터는 세속주의정책에 의거해 종교시설이 아닌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했으나 2020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모스크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일반 관람객은 건물 2층 테라스 지역만 둘러볼 수 있으며, 1층은 무슬림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광장 남쪽에는 ‘블루 모스크’라 부르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가 있다.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은 내부를 장식한 이즈니크 타일에 반사된 강렬한 푸른빛 때문에 붙었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6개의 첨탑으로도 유명하다. 술탄의 명령으로 건설한 모스크는 첨탑 4개가 원칙이지만, 유일하게 이곳의 첨탑만 6개이기 때문. 야사에 따르면, 당시 술탄 아흐메트 2세가 건축가 아흐메트 아아에게 “금(altın)으로 도배한 첨탑을 지어라”라고 명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던 아아가 ‘6개(altı)’로 잘못 알아들은 척했다고 한다.
광장 북쪽과 아야 소피아 사이에는 고대 로마 때 만들어진 예레바탄 사라이가 있다. 상수원이 없는 이스탄불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지하 저수조였다. 길이 143m, 너비 65m. 8m짜리 대리석 기둥 336개가 받친 거대한 공간으로 무려 8000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다. 저수조 내부의 기둥은 로마제국 각지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실제로 보면 모양과 크기가 모두 제각각이다.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2km 지점에 자리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오스만제국이 만든 최대 규모 모스크다. 로마제국이 만든 아야 소피아보다 웅장한 모스크를 만들고 싶었던 쉴레이만 1세가 오스만제국의 최고 건축가 미마르 시난에게 건축을 맡겼다. 아야 소피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함께 이스탄불 3대 모스크로 꼽힌다.
낭만의 도시
근대 이후 유럽인에게 이스탄불은 꼭 방문하고 싶은 영순위 여행지였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속 열차의 종착지가 이스탄불이고,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가 <아지야데>에서 비극적 사랑을 노래한 도시가 역시 이스탄불이다. 영화 <007> 시리즈 중 이스탄불이 배경인 작품이 세 편이나 되고 <테이큰>,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등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택했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 더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때문에 이스탄불 신시가지 해안가에는 유럽 부호들의 아름다운 별장이 줄지어 들어섰다.
구시가지가 인문학 여행지라면, 신시가지는 여행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곳이다. 카라쿄이 지역부터 신시가지 꼭대기의 탁심 광장까지는 쇼핑과 먹거리가 밀집한 상업지구다. 구시가지와 맞닿은 갈라타 다리 초입부터 언덕 꼭대기의 이스티클랄 거리까지는 런던 지하철(1863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1875년) 지하철 ‘튀넬’이 오르내린다. 튀넬에서 내리면 곧바로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빨간 구형 트램을 갈아타고 탁심 광장까지 갈 수 있다. 튀넬이 통과하는 카라쿄이와 베이욜루 지역은 공방과 노천카페, 기념품점 등 개성 넘치는 상점이 즐비해 힙스터들이 즐겨 찾는다. 트램이 통과하는 이스티클랄 거리는 명동 같은 쇼핑가이며, 대로 좌우로 갈라진 골목 안쪽에는 클럽과 바, 카페,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다.
고대 로마로 시간 여행
셀추크
아나톨리아반도 서쪽 끝단 이즈미르주에 속한 작은 마을로 성경에 나오는 에페소가 이곳이다. 고대 로마 도시 형태를 거의 완벽하게 보존한 에페수스 유적이 있으며,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낸 ‘동정 마리아의 집’, 사도 요한과 성 루가의 무덤이 있어 기독교도에게는 성지순례 필수 코스다.
고고학의 보고, 에페수스
셀추크를 방문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에페수스 유적 때문이다. 아고라, 원형경기장, 공중목욕탕, 테라스하우스 등 도시 구조물은 물론 항구로 통하는 길과 신전 등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문외한이라도 로마제국의 도시 형태를 추측할 수 있는 곳이다. 백미는 유적 중심에 있는 셀수스 도서관. 지진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파사드만 남았지만, 정교한 조각과 공간감을 극대화한 비대칭 구조 등 로마 건축 기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기독교의 성지
예수그리스도 사후 박해가 시작되자 사도 요한이 이끌던 공동체는 에페소에 정착했다. 사도 요한은 에페소에서 복음서를 쓰고 생을 마감했다. 신자들은 아야줄룩 언덕에 무덤을 쓰고 그 위에 작은 교회를 세웠는데, 6세기경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거대한 성당으로 증축했다.
에페수스 유적 남쪽 불불산(Bulbuldag)에는 동정 마리아의 집이 있는데,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시던 곳으로 알려졌다. 19세기 초 독일 수녀 에머리크가 꿈에 계시를 받아 존재가 알려졌으며, 교황 요한 23세가 성지로 선포했다. 이후 바오로 6세, 요한바오로 1세, 베네딕트 16세 등 역대 교황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현재도 기독교 신자들의 성지순례가 줄을 잇는다.
아름다운 그리스 마을, 시린제
셀추크에서 동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15세기경 오스만제국이 아나톨리아 반도를 점령하자 에페소 지역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일궜다.
1923년 튀르키예-그리스 전쟁이 끝난 후 인구 교환 협정이 이뤄졌는데, 이때 그리스에 살던 튀르키예인과 튀르키예에 살던 그리스인 수백만 명이 각각 고국으로 돌아갔다. 시린제에 살던 그리스인들도 모두 본국으로 이주했다. 한동안 버려졌던 마을은 1990년대 들어 정부 정책에 따라 관광지로 개발됐다. 이주한 튀르키예인들은 그리스계 원주민들이 하던 대로 올리브를 재배하고 포도주를 빚어 상품화했다.
시린제 마을은 건물 전체가 오스만제국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셀추크를 방문한다면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 가볍게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환상적인 지질 경관
파무칼레
카파도키아와 함께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자연경관이다. 사계절 새하얀 눈밭을 보는 듯한 석회질 언덕에 층층이 겹쳐진 푸른 웅덩이는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하다. 파무칼레 언덕 너머의 고대 로마 유적 히에라폴리스 역시 놓칠 수 없는 장엄한 경관을 선물한다.
목화의 성
파무칼레는 튀르키예어로 ‘목화(Pamuk)의 성(Kale)’이라는 뜻이다. 지역 사람들이 하얀 석회 언덕을 보고 목화밭을 연상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의외로 흔한 이름이라 튀르키예 지도를 보면 ‘파무크’라는 지명이 자주 보인다. 석회암 지대를 뚫고 나온 온천수가 1만 년 이상 흐르며 빚어낸 절경이다. 제한된 구역이지만 온천이 흐르는 석회암 지대를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다. 다만 대단히 미끄러우니 주의가 필요하다.
경이로운 폐허, 히에라폴리스
파무칼레 석회 온천지대 정상에 있는 고대 로마 유적이다. 파무칼레는 고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했기에 일찍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기원전 190년경에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아탈로스 2세가 도시를 세우고 히에라폴리스라 이름 붙였다. 하이라이트는 원형극장이다. 서기 2세기경 세워졌으며, 전세계 로마시대 원형극장 중 가장 보존이 잘된 곳 중 하나다. 무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히에라폴리스 언덕 꼭대기 부근에 자리해 극장에서 무대를 보면 파무칼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유적의 또 다른 볼거리는 북문 바로 옆에 있는 네크로폴리스다. 그리스어로 ‘죽은 자의 도시’라는 뜻으로, 지금으로 치면 공동묘지다. 로마시대 도시에는 꼭 네크로폴리스가 붙어 있었는데, 히에라폴리스의 네크로폴리스는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게임 속 언데드 소굴이 떠오르는 기괴한 경관은 으스스하지만, 그만큼 환상적이다. 흔한 석관 형태의 무덤뿐 아니라 봉분형 무덤과 신전 형태의 무덤 등 로마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를 볼 수 있는 것도 매력. 여느 튀르키예 유적처럼 노천에 방치되다시피 널려 있어 무덤 안에 들어가 보는 것도 가능하다.
히에라폴리스에는 뜻밖에 기독교 성인인 필립보 사도의 무덤이 있다. 다른 사도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 지역 선교에 힘썼던 필립보 사도의 주요 활동 무대가 바로 히에라폴리스였는데, 87년에 이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해 순교했다.
파무칼레 여행 Tip
데니즐리 버스터미널에서 파무칼레로 가는 승합 택시 돌무슈가 30분마다 있는데, 파무칼레 마을을 지나 북문까지 운행한다. 북문으로 입장해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관람하고 파무칼레를 지나 남문으로 나가는 게 체력적으로 편하다. 다만 남문에서 파무칼레 마을까지는 3.7km 거리인데 대중교통편이 없다. 택시를 타거나 걷는게 낫다. 차도를 따라 걸으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택시비는 2025년 2월 기준 300리라로 이동 거리에 비해 비싸지만 대안이 없다.
파무칼레나 인근 도시 데니즐리에서 숙박할 경우 수질에 당황하게 된다. 온천이 아닌 수돗물에 석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비누가 잘 녹지도, 닦이지도 않는다.
튀르키예 최고 휴양지
안탈리아
패키지 여행객이 주로 찾는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무칼레에 가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튀르키예 최대 휴양도시다. 지중해의 따뜻한 바다와 연중 온화한 날씨로 전 유럽에서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국제공항이 있는 교통의 요지로 튀르키예 남부 여행의 중심축이다.
유럽인이 사랑하는 해변
안탈리아는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해안 도시다. 겨울에도 최저 기온이 영상 10℃ 언저리에 머무는 포근하고 온화한 날씨 덕분에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도시 서쪽에 길게 뻗은 베이산맥의 웅장한 배경 아래 펼쳐진 해안에는 대부분 해변과 리조트가 들어섰다. 해안에 접한 타흐탈르산(Tahtalı Dağı)은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산이라는 전설이 있다.(*이런 전설을 품은 올림포스산은 그리스에 4개, 튀르키예에 2개가 더 있다.)
바닷가지만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관광객이 북적이는데, 북부 유럽 사람들이 추운 날씨를 피해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 북유럽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깨끗한 도시, 잘 갖춰진 여행 환경 등이 이들을 불러 모은다.
남부 여행의 허브
안탈리아 국제공항은 여름 휴가철에는 이스탄불 국제공항의 유동량과 맞먹을 정도의 이용객 수를 기록한다. 구도심에서 고작 13km 떨어진 데다 트램이 공항과 구도심을 연결하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은 편. 파무칼레가 있는 데니즐리까지도 버스로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일정에 따라서는 안탈리아를 베이스캠프 삼아 파무칼레에 다녀오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안탈리아 인근에는 페티예, 알라니아 등 휴양도시와 유적지가 산재했다. 차로 40분 거리에는 고대 로마의 항구도시 시데 유적이 있으며, 성지순례 코스로 유명한 페르게 유적도 인근에 있다. 특히 안탈리아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아스펜도스 유적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원형극장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해마다 대규모 공연이 열릴 정도로 상태가 완벽하다. 성악가 조수미가 이곳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고양이의 천국
튀르키예 사람들의 고양이 사랑은 각별하다.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사랑했다는 종교적 이유와 쥐를 잡는 이로운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튀르키예 정부는 동물보호법을 제정해 고양이와 개를 보호하고 있으며, 중성화 수술과 인식표 부착 등 체계적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튀르키예 고양이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길고양이들은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거리의 상인들은 상품 위에 자리를 잡은 길고양이를 내쫓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튀르키예의 독특한 고양이 사랑과 문화적 배경이 궁금한 이에게는 영화 <고양이 케디>(2017)를 추천한다. 이스탄불의 골목 풍경과 서민 생활까지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아름다운 구시가지
이스탄불처럼 안탈리아에도 로마제국의 유산과 오스만제국의 흔적이 혼재해 있다. 구시가지 칼레이치는 안탈리아 여행의 중심지다. 칼레이치로 들어서는 입구인 하드리아누스 문은 안탈리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130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안탈리아에 방문한 것을 기념해 건설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사자 조각이 인상적이며, 이 문을 경계로 안팎의 도시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다.
성문 안으로 오스만제국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빼곡하다. 골목은 마치 미로 같다. 골목마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 느긋하게 구경하다 커피 한잔하며 쉬어 가기 좋다. 골목을 따라 바닷가에 닿으면 마리나 항구가 나온다. 2세기부터 지중해로 나가는 길목이 된 항구로, 현재는 안탈리아 인근 바닷가를 도는 유람선 선착장이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3월호
글·사진 김구용(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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