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위치시 앤 원더스 박람회에서 관심있게 본 시계 5

조회 3202025. 4. 16.

안녕하세요, 테크가 주 분야이지만 시계에도 관심이 많은 객원 에디터 이주형입니다. 4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워치스 앤 원더스’라는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시계 박람회로서 올해에도 60여 개의 브랜드가 참여했는데요. 다양한 시계들이 나왔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제 관심을 끌었던 시계 다섯 점을 선별해 보았습니다.


1. 롤렉스 랜드-드웰러

롤렉스의 새로운 라인업,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롤렉스가 기존 라인업에 새로운 모델을 추가하는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계 라인업을 선보였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랜드-드웰러(Land-Dweller)는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가장 큰 소식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만합니다.

랜드-드웰러의 디자인은 먼 옛날 오이스터쿼츠라 불리는 롤렉스 역사상 유일한 쿼츠 손목시계의 일체형 브레이슬릿 디자인을 오마주한 모습입니다. 오데마 피게 로열오크나 티쏘 PRX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 트렌드를 롤렉스가 뒤늦게나마 쫓아간다는 느낌도 있지만요. 케이스 크기는 36mm와 40mm로 나오며, 케이스는 롤렉스의 자체 스테인리스 스틸 합금인 오이스터스틸에 화이트 골드 베젤을 조합한 기본 레퍼런스와 에버로즈 골드 케이스 레퍼런스, 그리고 플래티넘 케이스 레퍼런스로 나뉩니다. 에버로즈 골드와 플래티넘 케이스를 고르면 다이아몬드 베젤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의 두께는 9.7mm로, 현행 데이트저스트 41보다 2.3mm 더 얇아요.

하지만 랜드-드웰러의 진짜 혁신은 그 안에 있습니다. 새로운 무브먼트 7135에는 ‘다이나펄스’라는 새로운 탈진기(escapement)를 적용했는데요. 탈진기는 무브먼트 내에서 감긴 (우리가 흔히 ‘태엽’이라 부르는) 메인스프링의 에너지를 시간의 흐름에 맞게 분산시켜 주는,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어요. 시계 업계는 오메가와 같은 몇몇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18세기에 개발된 레버 탈진기 방식을 300년 가까이 사용해 왔는데, 설계 특성상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부품의 마모가 발생해 주기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고 윤활유를 바르는 오버홀이 필요한 주요 원인이 됩니다.

롤렉스 7135 무브먼트

롤렉스의 다이나펄스는 부품의 마모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설계를 적용해 무브먼트의 수명을 늘렸고, 무브먼트의 주요 부품에 실리콘을 사용해 사후 윤활의 필요성을 줄이면서 기계식 시계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자성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었습니다. 7135 무브먼트는 진동수도 5Hz로 높여서 초침이 1초당 10번 움직이는 롤렉스 최초의 고진동 무브먼트이기도 합니다. 롤렉스는 7135 무브먼트의 개발에 10년을 할애했고, 랜드-드웰러의 시계 전체 설계와 관련해 무려 32개의 특허를 출원했다고 밝혔어요. 랜드-드웰러는 롤렉스가 이 오랜 기계식 시계 산업에서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롤렉스 랜드-드웰러의 가격은 36mm 오이스터 스틸 레퍼런스가 2,075만 원, 40mm 오이스터스틸 레퍼런스는 2,213만 원부터 시작합니다.


2. 태그 호이어 포뮬러 1 솔라그래프

F1에 돌아온 태그 호이어의 축하 선물

태그 호이어가 2025년 시즌부터 포뮬러 1 스폰서로 복귀합니다. 2003년 이후 무려 22년 만인데요. 이를 기념해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포뮬러 1 시계의 복각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계의 기원은 실제로 태그 호이어가 포뮬러 1 스폰서였던 1986년에 선보였던 같은 이름의 시계입니다. 당시 플라스틱 케이스와 쿼츠 무브먼트로 단가를 낮추고 젊은 층을 노린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스와치에 자극을 받아 만들었던 시계인데요. 역시 다양한 색의 플라스틱 재질 케이스와 쿼츠 무브먼트, 거기에 200m의 준수한 방수 스펙으로 큰 성공을 거뒀던 시계입니다. 작년에는 뉴욕의 패션 브랜드인 키스(KITH)와의 협업으로 복각된 적도 있죠.

이번에 선보이는 포뮬러 1은 그때의 디자인은 그대로 재현하되, 전반적으로 더 큰 시계를 선호하는 지금의 소비자들을 감안해 케이스 크기를 당시의 35mm에서 38mm로 살짝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방수 레이팅이 100m로 하향 조정됐는데, 좀 아쉽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쿼츠 무브먼트인 점은 그대로지만 배터리 교체의 필요 없이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솔라그래프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해요. 직사광선에 2분만 노출시켜도 하루를 구동할 수 있을 정도로 충전되고, 완충까지는 40시간, 완충 후에는 최대 10개월 동안 빛이 없어도 동작해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던 지난 포뮬러 1의 전통을 따라 이번에도 9개 레퍼런스 중 일부 모델은 합성 소재로 제작됩니다. 태그 호이어는 이번 포뮬러 1을 위해 TH-폴리라이트라는 신소재를 개발했다고 해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로 만든 레퍼런스도 있지만, 다이빙 베젤은 모든 레퍼런스가 TH-폴리라이트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레퍼런스 2종과 빨간 TH-폴리라이트 케이스 레퍼런스 1종은 일반 판매 레퍼런스이지만, 그 외 6종은 각각의 F1 그랑프리 일정에 맞춰서 한정 판매될 예정이에요.

물론 포뮬러 1 공식 스폰서가 된 기념도 있겠지만, 제품의 기획을 보았을 때 이 새로운 포뮬러 1 라인업은 원조가 스와치를 의식해 개발됐던 것처럼, 문스와치를 의식한 게 보입니다. 다양한 색으로 나온다는 것 역시 문스와치처럼 수집 욕구를 자극시키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여기서 아쉬워지는 것은 가격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 레퍼런스가 277만 원, TH-폴리라이트 소재 레퍼런스가 262만 원인데, 단순히 봐도 문스와치 가격의 6배가 넘습니다. 물론 문스와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재료와 부품을 사용하니 더 비싼 건 이해하지만, 6배씩이나 비싼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저도 가격이 100만 원 미만으로 책정됐다면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3. 신형 오리스 빅 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전통적인 디자인과 화사한 색의 조화

오리스는 쿼츠 파동 이후 스와치 그룹, LVMH 그룹 등 대형 그룹 내에 여러 시계 브랜드가 합병되는 구조조정이 진행되던 가운데 독립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시계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또한, 라인업 전체를 기계식 시계로만 구성한다는 철칙도 고수하고 있죠. 오리스의 라인업 중 포인터 데이트 라인업은 1938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생산되고 있는 라인업으로, 날짜 창 대신 날짜를 가리키는 침으로 날짜를 표시하는 독특한 방식이 특징입니다.

오리스는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포인터 데이트 라인업의 신형 레퍼런스를 선보였습니다. 전 세대의 고풍스러운 다이얼 디자인 대신 이전에 몇몇 레퍼런스에서 선보인 적 있는 현대적인 텍스트와 색을 적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범용 무브먼트인 셀리타 SW200-1 기반의 레퍼런스 3종, 그리고 5일의 파워 리저브를 가진 오리스의 자체 개발 무브먼트 칼리버 403을 채택한 2종이에요.

칼리버 403을 채택한 연어색과 초록색 다이얼이 (그나마) 차분한 색이라면, 셀리타 기반의 레퍼런스 3종은 과감한 색으로 무장한 것이 특징이에요. 저는 이 중에서 묘하게 라일락 색이 끌리네요. 셀리타 기반 레퍼런스는 스틸 브레이슬릿, 그리고 칼리버 403 레퍼런스는 브레이슬릿이나 천연 가공으로 만들어진 사슴 가죽 스트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브레이슬릿 기준으로 셀리타 3종이 315만 원, 칼리버 403 2종은 580만 원입니다.


4. 그랜드 세이코 SLGB001/003

배터리가 없는 가장 정확한 시계

시계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분들, 혹은 시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들이 그랜드 세이코를 보면 세이코랑 무슨 차이냐고 많이들 궁금해합니다(저도 시계에 막 입문했을 때는 그랬고요). 간단한 비유로 설명드리면, 세이코가 현대차일 때 그랜드 세이코는 제네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최초의 쿼츠 시계를 개발하는 등 기술력에서 꿀리지 않음에도 스위스 브랜드들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취급받던 세이코는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에 도전하기 위해 1960년에 그랜드 세이코를 시작했는데요. 그 이후 그랜드 세이코는 실제로 스위스의 브랜드들과 견줄 만한 명품 브랜드로 성장했죠.

그랜드 세이코의 시계 라인업은 쿼츠와 수동 기계식, 오토매틱 기계식 등 소비자의 기호와 예산에 맞는 다양한 라인업이 있지만, 이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스프링 드라이브입니다. 세이코가 1999년에 개발한 스프링 드라이브는 일반적인 기계식 무브먼트에서 메인스프링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전자기로 동작하는 브레이크, 즉 전자식 탈진기가 대신합니다. 이 전자식 탈진기는 감긴 메인스프링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초소형 발전기를 통해 동작해요. 차로 비유하면 휘발유 엔진이 바퀴를 직접 굴리지 않고 단순히 전기 모터를 구동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부 하이브리드 차와 비슷한 원리죠. 이런 방식으로 배터리가 필요 없다는 기계식 무브먼트의 장점과 쿼츠에 비견할 만한 오차범위를 모두 가지게 됐어요.

이번에 그랜드 세이코가 선보이는 SLGB001과 003은 차세대 스프링 드라이브인 9RB2를 탑재했습니다. 그랜드 세이코가 UFA(Ultra-Fine Accuracy, 초정밀) 시계라고 정의한 이 새로운 시계들은 연 오차가 ±20초입니다. 즉, 1년 오차가 최대 40초라는 것인데, 위에 언급한 롤렉스 랜드-드웰러의 하루 오차가 ±2초(즉, 1년에 약 2시간), 일반적인 쿼츠 무브먼트나 기존 스프링 드라이브의 한 달 오차가 ±15초 정도(1년에 약 6분) 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과입니다. 그랜드 세이코에 따르면, 메인스프링으로 구동되는 시계 중에서는 가장 정확한 시계라고 해요. 거기에, 새로운 브레이슬릿에는 없어서 그간 그랜드 세이코가 꾸준히 비판을 받았던 미세 조정 기능도 탑재되었습니다.

SLGB001과 003은 내부 사양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80피스 한정판인 001은 플래티넘으로 만들었고, 일반 판매판인 003은 고강도 티타늄으로 만든 게 차이점입니다. 아직 국내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기준으로 SLGB001은 3만 9천 달러(약 5,770만 원), SLGB003은 1만 9백 달러(약 1,613만 원)입니다. 두 레퍼런스 모두 6월에 출시됩니다.


5. 노모스 클럽 스포츠 월드타이머

미니멀리즘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독일 브랜드

1990년에 독일 글라슈테에서 설립된 노모스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디자인 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회사입니다. 이중 클럽 라인은 캐주얼한 디자인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노모스 클럽 스포츠 월드타이머는 이러한 클럽 라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시계입니다. 월드타이머는 다른 나라의 시간을 빠르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GMT와 비슷한 컴플리케이션입니다. 2시 방향에 있는 푸셔를 이용해 24개의 도시 중 현재 있는 곳의 시간대를 설정한 후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시간대이므로 도쿄를 뜻하는 TYO로 설정합니다) 시간을 설정하면 돼요. 그리고 혹여나 출장이나 여행으로 시간대를 옮기게 되면 2시 방향의 푸셔를 눌러서 지금 있는 곳의 시간대로 빠르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브 다이얼에서 두 번째 타임 존을 추적할 수 있죠. 출장이나 여행을 자주 다닌다면 보통 집이 있는 시간대로 두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시계 회사에서도 월드타이머 시계를 하나씩 내놓지만, 노모스의 클럽 스포츠 월드타이머는 그 중에서도 특유의 필요한 것만 있는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여요. 다른 월드타이머 시계들이 지구를 본뜬 표면의 다이얼을 택하는 등의 화려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에 비해 상당히 실용적인 디자인이죠. 어차피 매일 차고 다닌다면 이렇게 실용적인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무브먼트는 노모스가 자체 개발한 DUW 3202 무브먼트를 사용하는데요. 월드타이머 컴플리케이션을 넣고도 두께가 고작 4.8mm입니다. 100m 방수를 지원하고도 시계 두께를 10mm 미만으로 맞출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노모스는 설명합니다. 독립적인 경영을 추구하는 만큼, 열가공된 나사까지 거의 모든 부품을 노모스가 직접 만들어서 무브먼트를 조립합니다.

레퍼런스는 크게 여덟 가지로, 이중 블루와 실버는 일반 판매, 나머지 여섯은 각각 175피스 한정판으로 출시됩니다. 가격은 3,920유로(약 628만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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