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양자 비밀 밝히는 1000조와트급 장치…"예산 삭감 탓 전기료도 빠듯"
27일 찾은 광주과학기술원(GIST) 고등광기술연구소 레이저 생성 장치 관제실에는 십 수대의 모니터가 장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레이저의 에너지량을 나타내는 영상이나 수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일부 모니터에는 장치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관제실에선 유리창 너머로 레이저 생산 시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농구 코트 크기 정도의 장치실에는 레이저가 생산되는 회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하는 생산 시설은 안전을 위해 불투명한 검은색 유리창으로 가려져 있다.
이날 고등광기술연구소 레이저 생성 장치실을 소개한 고도경 고등광기술연구소장은 "이 장치에서 실제 레이저가 생성될 때는 PW(페타와트·1PW는 1000조 W)급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안전 조치 없이 직접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2001년 개소한 GIST 고등광기술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광과학·광기술 분야 연구개발 기관이다.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극초단 초강력 레이저 생성 시설의 출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 4.2PW다. 레이저의 진동 폭도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인 20펨토초(1펨토초는 1000조 분의 1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레이저 시설에 지정되는 국제 제타-엑소와트 과학기술센터(IZEST)다.
극초단 레이저는 10TW(테라와트·1TW는 1조 W) 이하의 진동 폭을 갖는 광펄스를 만들어 내는 장치다. 이같은 극초단 초강력 레이저 펄스를 집속하면 엄청난 세기의 전자기장이 발생한다. 막강한 전자기장이 물질에 입사하면 기존의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극한 조건의 물리적 환경이 형성돼 새로운 물리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극초단 레이저는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활용된다. 고 소장은 "전자, 양성자 가속, X-선 발생 시설, 비선형 분광학, 나노광학, 광섬유 등 다양한 광학 분야에서 초강력 레이저를 사용해 지금까지의 기술로 불가능했거나 효율성이 떨어졌던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견 '마이너'한 분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끄는 기반 기술이란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우주현상을 설명하는 도구로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고등광기술연구소에선 전자를 강력한 레이저와 충돌시키는 '비선형 산란 실험'을 통해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결하는 양자전기역학(QED) 이론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를 찾아내기도 했다. 전하가 있는 입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전기역학은 고도의 양자암호 보안체계 등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이론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극초단 레이저는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인공위성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연구나 빛의 일종인 적외선을 매개로 하는 레이저 무선통신 연구에 사용된다.
앞서 고등광기술연구소는 이같은 장치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우주 분야 연구를 본격화 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G-스페이스'라는 이름의 연구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최근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이같은 계획은 일시 중단됐다.
고 소장은 "올해 국가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일반사업과 우주국방 분야 사업이 다수 없어졌고 이에 따라 올해 연구소는 전년 예산의 30%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예산이 큰 폭 삭감되면서 장치를 가동할 전기세도 빠듯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연말 즈음에는 내년 예산이 배정되기 전까지 장치를 가동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 소장은 "극초단 레이저는 우주탐사, 국방, 통신 그리고 양성자 치료기와 같은 의학 분야까지 광범위한 연구에 활용되는 중요한 시설"이라며 "현재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보유한 만큼 앞으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와 학계의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광주=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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