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닫힌 광장의 노래, 방탄소년단이 광화문에서 전한 것

3월 21일 오후 8시 기다림이 끝났다. 어둠에 잠긴 경복궁으로부터 임금이 지나도록 만들어진 길 어도(御道)를 따라 일곱 청년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글로벌 190개국 동시 생중계, 광화문 광장 최초의 단독 아티스트 공연,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아리랑(ARIRANG)’을 발표한 방탄소년단(BTS)이 3년 5개월 만에 펼치는 완전체 복귀 공연 ‘아리랑’이 시작됐다. 지하철 3개 역 무정차, 인근 빌딩 31곳의 출입 차단 및 삼엄한 검색 검문을 뚫고 현장에 모인 8만 명 안팎(서울시 데이터 기준)의 인파가 방탄소년단의 응원봉 ‘아미밤(Army Bomb)’을 들고 글로벌 슈퍼스타의 귀환을 환영했다.
도심 속 상징적인 공간에서 대규모 무료 공연을 개최하는 경우는 대중음악의 역사 속 여러 사례를 들 수 있다. 1981년 11년의 공백을 깨고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귀환을 알린 사이먼 앤 가펑클은 새벽부터 모여든 50만 명의 관객 앞에서 그룹 역사에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해당 공연의 TV 생중계 및 방문객으로 거둔 이익을 재정난에 빠진 공원 보수와 재개발을 위해 기부했다. 도시가 음악가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음악가가 도시에 음악을 돌려준 사례다.
2006년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록 밴드 롤링 스톤스가 150만 명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1만 명의 안전 인력이 배치된 가운데 모든 방문객이 자유롭게 오가며 공연을 즐겼고, 해당 방송은 브라질 지상파 방송국 채널을 통해 중계됐다.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오가는 공론장에서 재결합이라는 강력한 문화적 이벤트를 개최하기 위한 핵심의 가치는 열림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과 롤링 스톤스가 그러했듯, 2024년 ‘디 에라스 투어’라는 역대 최고의 월드 투어를 열었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독일 뮌헨에서 공연장 밖 언덕에 오른 4만여 팬에게 감사를 표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보편적 시청권과 공간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 음악가를 응원하는 팬덤의 어우러짐이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만끽할 권리를 부여했다.

3월 21일의 광화문은 센트럴파크도, 코파카바나도 아니었다. 시민들은 서울시가 ‘가상의 스타디움’으로 구상한 광화문광장에서 경찰, 소방, 공무원 등 1만5,000여 명 이상의 안전관리 인력과 함께 갇혔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가 광화문광장 7일 대관료로 서울시에 지급한 비용은 3,000만 원, 경복궁·숭례문 촬영 허가비까지 합쳐도 9,000만 원이다. 무료 공연이라는 대의명분과 다르게 무료인 것은 하이브가 광장을 쓰는 비용이었다. 시청은 유료였다. 넷플릭스 유료 구독자만 시청할 수 있었던 생중계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첨예한 주제인 ‘보편적 시청권’과 맞물려 공연의 폐쇄적인 성격을 더 강화했다.
대규모 인원 운집 과정에서의 안전사고 방지라는 명분에 공감하기에는 공연의 성격이 달랐다. 스타디움 공연의 폐쇄적 구조를 벗어나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공연 서사의 일부로 확장한다는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 공연이 펼쳐졌다. 광화문으로부터 1.2km, 세종대로 전체가 33시간 동안 통제된 가운데 객석은 무대 앞 스탠딩, 광화문광장 지정석, 세종대로 사거리부터 시청역의 입석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무대는 광화문 북단에 고정되어 있었고, 맨 앞의 관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관객이 수백 미터 떨어진 LED 스크린으로 공연을 지켜봤다. 넷플릭스 카메라에 장엄하게 담긴 근정문에서 흥례문, 광화문, 월대를 지나 무대에 오르는 동선은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일방통행이었다.
왕이 백성을 향해 걸어 나오는 구조에서 관객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직선 도로 통제에도 멤버들이 걸어 내려오거나, 중간 무대에서 팬들과 마주하거나,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연출이 없었다. 정적인 구성 탓에 멤버들의 고군분투에도 공연의 활력이 살아나지 못했다. 도시를 공연으로 확장한 것이 아니다. 도시를 공연을 위해 정지한 셈이다.

공연의 의미는 분명하다. 광화문광장에서 대중음악가의 단독 공연이 열린 최초의 사례다. 사상 최초의 도심 공연, 190개국 동시 생중계 등 기술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서울이 글로벌 라이브 이벤트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고, 20대 이상 카메라와 10km에 달하는 전력 케이블, 시네마 카메라가 매력적인 생중계 콘텐츠를 완성했다. 서울 도심 곳곳이 매력적인 공연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초라는 타이틀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광장은 닫히지 않아야 한다. 중계는 누구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무대는 관객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공연이 끝난 후 하이브는 "이번 공연에 보내주신 성원과 배려를 소중히 간직하며, 더 분발해 K팝과 K컬처가 지닌 감동과 가치를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감동과 가치라는 단어를 곱씹게 된다. 광화문에서 전 세계 전해진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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