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처마
예산과 공사기간, 그리고 기존 주택에서의 불편함을 경험 삼아 철골이라는 구조와 금속패널이라는 외장재를 먼저 결정한 건축주. 초등학교와 인접한 채 수많은 아이들과 마을버스가 대지를 스치듯 지나가는 이곳에서 최대면적을 확보하면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마을을 연결하는 이정표를 만드는 것은 건축가에게 하나의 큰 과제가 되었다.⠀
주택에서 흔치 않은 철골과 패널을 마주한 건축가는 색과 패턴을 활용해 금속이 가진 물성을 제거하고, 건물을 마치 하나의 새하얀 빙산 덩어리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장소로 만들기로 한다.⠀
합리성에 더해진 건축가의 조형의지는 그렇게 재료와 대지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건축주 가족을 위한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풍부한 감성이 담긴 선물이 되어 구도심을 밝힌다.


대지는 화곡초등학교를 마주한 삼거리에 위치한다. 코너에 위치해 마을의 이정표가 되는 곳이다. 위쪽 동네를 연결하는 지점이어서 차량 통행이 매우 빈번하고, 유동 인구도 제법 많아 상가들이 매우 발달해 있다. 서쪽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을 마주하고 있어 주변 건물로부터의 간섭이 없고, 일조량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시원한 비스타(vista)와 유동 인구를 볼 때 주택으로서나 상가로서나 입지 환경이 매우 우수한 대지였다.
대지에는 상가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고, 오래전 이를 매입해 거주해온 건축주는 앞으로 다가올 노년을 대비해 신축을 결심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이 없어 발생했던 불편함이나 미흡했던 단열 등 기능적인 부분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은 거의 대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건폐율을 적용하면 불가피하게 한 층 바닥면적을 현재보다 줄여야만 했다. 구도심에서는 종종 실제 대지면적이 지적도상의 면적보다 작은 경우가 있는데, 이곳 또한 같은 상황이었다. 서류상의 면적을 기준으로 설계해도 실제 대지의 크기가 그보다 작기 때문에 조금 더 큰 면적으로 지어질 수 있었다.
건폐율에 맞게 건축면적을 조정하니 실제로 남은 공지는 공부상 면적보다 작았다. 결국 주차장과 조경 면적 확보 부분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지만, 다행히 대지의 두 면이 도로에 접해 있어 건축가는 주차장과 계단, 엘리베이터 위치를 다양하게 테스트해 보며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방해가 적고 안전한 쪽에 주차장을 배치하고, 상가와 주택의 공간구성을 고려하여 엘리베이터와 출입구 위치를 선택하였다.


1층 상가는 경사가 있는 대지를 면한 탓에 위치에 따라 1미터 정도 천정고의 높이차가 있다. 가장자리 상가의 법정 천정고를 확보하고, 후면의 일조사선을 지키기 위해 2층과 3층은 또한 반으로 나누어 한단 정도의 높이차를 두었다. 이처럼 공부상보다 작은 실제 대지면적과 이에 따라 작아지는 바닥면적, 도로의 경사, 주변의 낮은 인접 대지를 위한 일조 사선 고려 등 제약조건들이 많았지만,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드러내지 않은 담백한 디자인으로 건물을 완성했다.
철골을 이용한 건식공법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성이다. 철골 구조물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고, 현장에 반입해 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건물 구조를 신속하게 완성할 수 있다. 또한 입면은 크레인을 이용해 패널 한 장으로 3개 층 전체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도로 쪽에 비계를 사용하지 않아도 시공이 가능하다. 인도 없이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이라 비계를 설치하기에 위험했던 이 프로젝트에 아주 적합한 방식이었으며, 먼지나 소음 등도 콘크리트에 비하면 거의 없어서 주변 피해도 최소화되었고, 학교 앞 통학로에 위치해 그 장점이 두드러졌다.


주택에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해달라는 요청은 주택에 철골구조 건식공법을 적용하는 것만큼이나 흔치 않다. 창고나 공장처럼 보이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는 패널의 경우 판을 매우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 장점을 극대화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입면을 한 장의 패널로 구성할 수 있어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이 물성 자체를 활용하는 입면 디자인을 고안하였다.
샌드위치 패널은 주로 회색의 금속 색상이 주로 사용되다 보니 공장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건축가는 금속 속성이 인지되지 않는 이미지를 상상했고, 백색을 적용하여 차가운 이미지를 치환하기로 했다. 물성보다는 따듯함이 먼저 인지되어 철판이라는 물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입면의 사선들이 조형적으로 완결된 형태로, 마치 하나의 빙산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했다. 기존 가로를 존중하고, 이를 반사하는 배경이 되기에는 펼쳐진 상황이 무성의했기 때문이다. 동네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억할 만한 장소가 존재해야 하고, 대지가 위치한 이 삼거리 모퉁이는 그러한 장소를 만드는 데 적합했다. 이에 이 재료로 표현 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을 찾아 이곳에 특징있는 장소를 만들었다.


기능상 평면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출계단을 선택해야만 했고, 구조적인 테스트를 통해 선정된 삼각형 기둥이 만든 삼각형 조형이 건물의 조형을 완성했다. 이 기둥은 4층 주택의 대문과 같은 일종의 솟을대문이 되어 기능과 더불어 입구를 상징한다.
1층부터 3층에는 상업 공간, 4층에는 주거 공간을 배치했다. 1층 상가는 코너라는 위치적 이점을 살리고, 코어 위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건축주 가족을 위한 4층 주택은 높은 건물이 가까이 붙어있는 남측보다는 전경이 넓게 펼쳐진 서측에 테라스와 거실을 배치해 시야를 틔워주었다. 또한 거실 남측에는 가족들이 이전 집에 대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도록 발코니를 두었다.



발코니를 통해서는 대지 인근의 기다란 계단이 보인다. 대지 남서방향으로 보이는 이 기다란 계단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계단을 주제로 한 그림까지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가족에게 의미가 있었다. 재건축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이전 공간을 회상할 만한 요소를 찾아주고자 고민하던 건축가에게 이 계단은 그 역할을 해주었다.


다락은 연속된 구조체의 리듬을 통해 기도실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구조형식이 철골이다 보니 지붕 하부에 구조물을 노출해만 했고, 면적에 비해 구조물 크기만큼 공간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축가는 공간을 두 개로 나누어 높이 차이를 두는 쪽을 선택했다. 전체가 애매한 것보다는 높은 부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낮은 부분은 다르게 활용하기 위함이다. 평상 높이 정도의 높이차가 있어 툇마루 등으로 활용될 수 있고, 다락 턱에 앉아서 바라보는 난간과 그 너머 창문을 통해 보는 풍경은 시적(poetic)인 장면을 연출한다. 새로 지은 공간인 만큼, 이 집이 가족들에게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풍부한 감성이 담긴 선물이 되길 바란다.








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용도: 근린생활시설, 단독주택
구조: 철골구조
규모: 지상4층
대지면적: 268㎡ (81.07py)
건축면적: 156.21㎡ (47.25py)
연면적: 524.74㎡ (158.73py)
주차: 4대
사진: 이한울
설계: 디디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 070-8752-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