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봇들이 사는 마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출처:Stanford University / Google)

높은 자유도를 지닌 오픈월드(Open World)라는 게임 장르가 있다. 게이머는 오픈월드 게임 안에서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거나, NPC와 소통하며 숨겨진 재미를 발굴할 수 있다. 전통적인 롤플레잉 게임과 달리 스토리 전개 방식도 자유롭다. 주요 스토리는 정해져 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없다. 게이머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 된다. 

분명 오픈월드 게임을 즐길 거리가 참 많다. 하지만 오래 하다 보면, 문득 아쉬움이 몰려온다. 오픈월드 게임의 자유도 역시 짜여진 각본 안에서만 허용되기 때문. 생동감 있어 보이던 NPC, 흥미진진한 스토리 모두 정해진대로 행동하고 흘러간다. 그래서 종종 진정한 의미의 오픈월드 게임, 그러니까 모든 객체가 지성을 갖고 스스로 움직이는 게임을 고대하곤 한다. 

실제 살아 숨쉬는 작은 세상을 구현한 게임은 없는 걸까. 이와 관련, 최근 흥미진진한 연구 결과가 하나 나왔다. 4월 11일(현지시간) 외신 테크크런치(TechCrunch)에 따르면 스탠포드 대학교와 구글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을 만들어 경과를 지켜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탄생한 봇들은 서로 의사소통하며 문제 없이 지냈다. 

(출처:Stanford University / Google)

연구진은 챗GPT를 이용해, 25개의 각자 다른 봇을 만들었다. 예컨대 존 린(John Lin)이라는 인공지능 봇은 약국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대학 교수인 아내 메이 린(Mei Lin)이라는 봇과 지내며, 슬하에 아들인 에디 린(Eddy Lin)을 두고 있다. 또 가족들을 정말 사랑하며, 옆집 노부부를 좋게 생각한다. 

챗GPT는 대형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대화형 챗봇으로,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 챗GPT로 만들어진 봇들은 어떨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화로 상호작용했다. 연구진은 현재는 아침이며 방금 기상했다는 상황을 부여했다. 그러자 존 린이라는 봇은 양치하고 아내와 짧은 입맞춤을 나눈 뒤, 옷을 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다음이 중요하다. 아버지 봇과 아들 봇이 서로 부엌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대화가 시작됐다. 아버지 봇이 먼저 아들에게 ‘좋은 아침이야 에디. 잘 잤어?’라고 묻자, 아들 봇이 ‘좋은 아침이에요 아빠. 네 잘 잤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아버지 봇이 ‘오늘 뭘 할거니?’라고 하자, 아들 봇은 ‘새 작곡을 하고 있는데 곧 마감이라 빨리 끝내려고요’라고 답했다. 

(출처:Stanford University / Google)

언뜻 보면 단순한 역할극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공지능 봇들은 제한된 조건과 상황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자발적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실제 가족들이 나눌 법한 얘기를 나눴다. 이뿐 아니라 이들은 의사소통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기억했으며, 알아서 할 일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연구진은 이자벨라 로드리게스(Isabella Rodriguez)라는 인공지능 봇에 파티를 열기를 원한다는 상황을 부여했다. 그러자 봇들은 서로 파티 소식을 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인공지능 봇들은 본인 일정을 조율해서 파티 참석 여부를 결정했다. 총 12명의 봇이 파티 소식을 들었는데, 이중 5명이 참석했고 일부는 바쁘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한 봇이 시장 후보로 나선다는 소식이 봇들 사이에서 확산한 것. 처음 이 소식을 알고 있는 봇은 단 1명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5명 봇 중 8명이 이를 인지했다. 봇들이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소식을 학습한 것이다. 마치 인간 사회에서 새로운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출처:Stanford University / Google)

단 모든 시뮬레이션이 완벽하진 않았다. 챗GPT는 환각 효과를 일으킨다. 환각 효과란 인공지능이 사실이 아닌 정보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전달하는 문제를 뜻한다. 실험 과정에서 이자벨라 봇은 샘 스미스(Sam Smith)라는 봇에 대해, <국부론>을 저술한 경제학자라고 소개했다. 실제 국부론은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쓴 책이다. 

가상 세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의사소통 가능한 봇. 누군가는 고대하는 얘기다. 그러나 당장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란 어려울 듯하다. 연구진에 따르면 단 이틀간 실험에 들어간 비용만 수천달러에 달한다. 부정확한 정보 제공, 인공지능 윤리 등 생성 인공지능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더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