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된 알랭 들롱의 얼굴 [듀나의 영화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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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들롱이 8월18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들롱은 비스콘티, 안토니오니, 고다르, 클레망, 로지, 멜빌과 같은 20세기 중반의 거장들이 만든 중요한 영화들에 출연했다.
옛 영화를 보지 않는 지금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들롱은 성차별, 호모포비아, 외국인 혐오로 범벅이 된 '국민전선(현 국민연합) 지지자 영감'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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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르네 클레망
출연: 알랭 들롱, 마리 라포레
알랭 들롱이 8월18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이로써 들롱의 보디가드였던 스테판 마르코비치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알고 있었을 마지막 사람이 사라졌다. 마르코비치는 유명 인사의 섹스 필름을 몰래 찍어 협박하려던 악당이었다. 경찰은 들롱이 그 사건과 직접 연결되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 들롱은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그 수상쩍은 이미지는 들롱이 이후 출연한 암흑가 영화들에 오히려 도움을 주었다. 그 이후 이어진 가정폭력과 불륜도 인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들롱은 비스콘티, 안토니오니, 고다르, 클레망, 로지, 멜빌과 같은 20세기 중반의 거장들이 만든 중요한 영화들에 출연했다. 들롱이라는 배우의 가장 큰 무기와 기능은 그의 빼어난 외모에 있었고, 1980년대 이후 나이 들어 주름이 생기고 살이 찐 뒤로는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이 급속도로 줄었다. 옛 영화를 보지 않는 지금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들롱은 성차별, 호모포비아, 외국인 혐오로 범벅이 된 ‘국민전선(현 국민연합) 지지자 영감’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알랭 들롱의 대표작은 르네 클레망의 〈태양은 가득히〉다. 잘생긴 신인배우 들롱을 전 세계적 스타로 만든 영화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를 각색한 작품으로, 히치콕의 〈열차 안의 이방인들〉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하이스미스 스릴러 영화로 꼽힌다. 들롱은 이 영화에서 미국인 잡범인 톰 리플리로 나온다. 막역한 친구 필립(원작에서는 디키)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이탈리아로 가는데, 필립은 톰을 따라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톰은 영화 중간에 필립을 살해하고 죽은 친구의 신분을 훔친다.
당시 클레망이 누벨바그 감독들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새로운 세대(누벨바그)의 영화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그와 상관없이 수많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남유럽, 젊음, 아름다움이 결합된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선사했다.
들롱이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이 사람의 이미지에는 쉽게 지울 수 없는 빈곤의 흔적이 있었다. 부유한 친구를 질투하는 가난하고 부도덕적인 범죄자의 이미지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말썽꾼이었던 들롱의 과거사를 아는 관객들에게 영화 속 리플리는 더욱 그럴싸하게 보인다.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 리플리는 완전범죄에 성공하고 법망을 빠져나온다. 클레망의 영화는 리플리가 체포되리라는 걸 암시하면서 끝난다. 스테판 마르코비치 사건은 전자 쪽에 가까웠다. “내가 살해되면 그건 100% 알랭 들롱과 그의 대부인 프랑수아 마르칸토니 때문이다”라는 죽은 자의 편지는 이 결말을 바꾸는 데에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듀나 (영화평론가·SF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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