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네일의 낭만 야구

턱관절 골절 부상을 딛고 2024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출격했던 KIA 타이거즈 제임스 네일. <KIA 타이거즈 제공>

야구를 하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선수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다.

프로라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이들은 많은 노력을 하고 꿈을 꾼다.

간절하게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진행된 KBO 신인드래프트에서는 110명의 이름이 불렸다. 1261명이 드래프트에 지원했으니, 8.72%만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것이다.

프로라는 꿈을 달성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다음 목표는 ‘FA 대박’이다.

사실 FA 자격을 얻는 것도 쉽지는 않다.

부상 없이 실력으로 1군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야 자격을 얻을 수 있고, 모두가 억 소리 나는 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맞다. 프로는 돈이다. 계약금과 연봉은 선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구단은 돈으로 승리를 산다. 투자를 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프로 세계와 스토브리그는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더 큰 금전적 결실을 맺기 위한 선수들의 권리와 영입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구단의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토브리그는‘야구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고민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더 유난하다.

에이전시의 잘 포장된 상품이 된 선수들. 눈에 보이는 ‘돈’이 평가하기 쉬운 최고의 가치일 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조건 없이, 이유 없이 팀을 응원하고 그 팀의 일원인 선수를 응원하던 팬들은 스토브리그마다 이별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이별’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또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선수들은 떠난다. 당연한 이별 앞에서도 팬들은 서운하다.

봄여름가을 그라운드에 펼쳐지던 야구의 낭만, 겨울이면 야구는 차가운 비즈니스가 된다.

연일 황당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그래서 KIA 타이거즈 제임스 네일의 재계약 소식은 충격적으로 신선하다.

연패를 기대했던 시즌이었지만 주전 타자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사라졌고, 팀은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팀 악재에도 네일은 묵묵한 에이스였다.

시즌 막판 팔꿈치가 좋지 않아 9월 10일 삼성전이 마지막 등판이 됐지만, 네일은 올 시즌 27경기에 나와 164.1이닝을 책임졌다. 2.25의 평균자책점을 찍으면서 19경기는 퀄리티스타트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야수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네일의 두 번째 시즌은 8승 4패로 끝났다.

팀의 답답한 상황에도 네일은 에이스였고, 충분히 빅리그 복귀를 노려볼 만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KIA는 네일과의 이별을 각오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도 네일의 다음 행선지는 미국이 되는 것 같았다.

스위퍼를 앞세운 네일은 KBO 데뷔시즌이었던 2024시즌 26경기에 나와 149.1이닝을 던지면서 2.53의 평균자책점으로 12승 5패를 기록했다. 부상이 없었다면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
네일은 8월 24일 NC와의 원정경기에서 데이비스의 타구에 얼굴을 맞았다. 턴관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 그는 곧장 수술대에 올랐고 그의 KBO 무대는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큰 부상이었고 KIA에서의 시간이 1년도 되지 않은 외국인 선수였던 만큼 KIA는 네일 없는 한국시리즈를 생각했다. 하지만 네일의 생각은 달랐다.

네일은 한국시리즈를 위해 이를 악물었다. 좋아하는 한식으로 기력을 회복한 그는 다시 공을 들었다.

두려움도 이겨냈다.

KIA는 한국시리즈에 앞서 네일의 실전을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상무와의 연습경기가 치러졌고, 네일은 마운드 앞에 설치된 그물망 뒤에서 공을 던졌다.

모든 게 조심스러웠던 KIA였지만 네일은 1이닝을 소화한 뒤 그물망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네일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다시 타자들을 마주했고, 한국시리즈 준비를 끝냈다.

한국시리즈 결과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눈물겨운 부상 투혼으로 팀에 우승컵을 안겨주는 것으로 KIA 타이거즈 네일의 역할은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네일은 가장 힘든 시간에 가장 큰 힘이 된 구단과 동료, 팬들을 잊지 않았다.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깜짝 시구자’로 나섰던 네일은 ‘깜짝 계약’ 소식을 전하면서 팬들을 웃게 했다.

네일의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다.

네일의 옆에서 입과 귀가 되고 있는 박재형 통역은 “서로 그때가 제일 힘들면서도 제일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한다”며 “많은 선수를 만났고 다들 좋은 선수였고 좋은 인연이었지만 네일은 더 특별한 것 같다. 병원과 숙소에서 병간호하면서 둘이 오랜 시간을 함께했었다”고 돌아봤다.

2024년 10월 28일 KIA 타이거즈 박재형 통역(가운데)이 제임스 네일(왼쪽)이 준비한 생일 축하 어깨띠를 하고 에릭 라우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박 통역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 /김여울 기자

‘정’으로 두 번째 시즌을 맞았던 네일은 다시 또 KIA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박 통역도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박 통역은 “1년 차 때도 워낙 잘하기도 했고 ‘언제 빅리그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고, 선수 이후를 생각해야 하니까 돈을 더 우선시할 것 같다’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며 “이번에는 솔직히 갈 줄 알았다. 그전에도 다른 구단의 제안이 있었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진지하게 오퍼가 온다고 했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재계약을 하니까 기뻤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된 팀에 대한 애정, 힘든 시기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책임감’이 네일의 마음에 있었다.

박 통역은 “2년 차로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런 감정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2년 차에 완전히 에이스로 자리 잡으면서 책임감을 더 느끼고 그런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며 “(김)태형이 (이)성원이 (이)호민이 같은 애들이 올라오면 먼저 다가가서 알려주려고 했다. 그렇게 하니 어린 선수들도 편하게 제임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단순히 투구뿐만 아니라 투구 전반적인 준비와 공 하나하나 던지고, 다시 마운드에서 재정비하는 순간까지 어떻게 세팅하는지 이런 것을 공유했다”고 이야기했다.

또 “선수로서는 물론 그냥 사람 제임스로도 굉장히 인성이 좋고 진짜 좋은 사람이다. 우리 통역들도 그렇고 다른 선수를 챙기려고 많이 했던 것 같다. 한국인 선수들도 그것에 맞춰서 정을 나눴다”고 덧붙였다.

제임스 네일이 지난 10월 3일 삼성과의 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다음 시즌'을 이야기하며 포즈를 취했다. /김여울 기자

가장 가까이에서 감정을 공유했던 통역도 작별을 생각했지만 네일은 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팬분들이 모든 노력을 다 못 보셨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발전했다. 내년에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쉬웠던 시즌에서도 희망을 언급한 그는 “내년 시즌에 보자”는 말을 했다.

“내년 시즌?”이라고 되묻자 네일은 웃으면서 작별 인사를 했었다.

‘KIA와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사전에 교감된 내용은 없었다.

심재학 단장은 “우리는 다 메이저리그를 간다고 생각했다.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전하기는 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로열티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선수는 많지 않다. 외국인 선수 중에 가장 손가락 안에 든다. 팀에 대한 마음이나 와서 선수들하고 지내는 그런 과정, 한국 문화를 즐기는 것 보면 정말 최고의 선수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시리즈를 생각하면 더 마음이 뭉클하다.

심 단장은 “선수 입장에서는 그렇게 안 던져도 되는 것이었는데 이 악물고 던졌다. 턱이 부러졌었다. 사람이 힘을 쓰면 턱에 집중되는데 그런 큰 경기에서는 더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참으면서 던진 것이다”고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네일은 ‘다음 시즌’이라는 약속을 지켰다. 빅리그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서도 네일은 KIA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야구의 낭만이 그리웠던 요즘, 네일은 낭만 야구를 선택했다.

세상에는 여러 가치가 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과 선택은 다르다. 어떤 선택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는 있다.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FA 대박’이 인생 최종 목표가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사실 그라운드 이후 삶이 더 길다.

1000만 관중에 마냥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이러다 다 죽어”라는 대사가 떠오르는 뒤숭숭한 스토브리그다.

일방적인 짝사랑은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