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에서 보면 그냥 검은 헛간처럼 생긴 집이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경사진 초원 위에 자리한 이 96평짜리 집은 오래된 박공지붕 주택을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탈바꿈시킨 리모델링 프로젝트다.

예술과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부부가 의뢰인이었고, 그들의 바람은 단순했다. 아이들과 미래의 손주들이 찾아왔을 때 넓고 즐겁고 오래 기억될 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

긴 유리 복도가 집의 중심을 관통한다. 기존 건물, 새로 지은 차고, 예술가 작업실, 그리고 새로운 침실 공간을 하나로 이어주는 이 복도는 양쪽으로 두 개의 독립된 검은색 헛간 구조물과 나란히 서 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안뜰과 수영장, 별채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시선의 흐름 자체가 손님의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차고와 작업실 공간이 나온다. 3대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차고에는 여유로운 수납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고, 현관 바로 옆에는 반려견 발을 씻길 수 있는 전용 공간과 야외 반려견 놀이 공간도 따로 설계되어 있다.

두 마리의 반려견을 아끼는 부부의 생활 방식이 집 구조 안에 그대로 녹아든 셈이다. 기존 건물 안에는 주요 생활 공간이 모여 있다. 거실에서는 수영장이 내려다보이고, 데크와 방충망이 설치된 베란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한쪽 벽면을 따라 길게 배치된 주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가구 배치만으로 다이닝 공간과 거실을 구분하는 방식이 공간을 더 넓게 느끼게 한다. 게스트 침실은 거실과 거리를 두고 뒤쪽에 배치되어 있어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자연스럽게 확보된다.

유리 복도 반대편 끝에는 부부의 침실 공간이 있다. 외관은 다른 헛간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검고 절제된 모습이지만, 문을 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채로운 색상의 미닫이문을 통해 파란빛과 노란빛이 콘크리트 바닥 위로 번지고, 맞춤 제작된 목공예품과 욕실의 독특한 타일, 침실 천장에 매립된 영화 감상용 프로젝터까지, 공간 곳곳에서 디자인에 대한 부부의 취향이 드러난다.

침실을 지나면 햇살이 가득한 거실이 나온다. 청석으로 마감된 벽과 수영장 안뜰 쪽을 향해 열린 양면 벽난로가 이 공간의 중심을 잡는다. 벽난로 양쪽의 유리문은 실내와 실외를 경계 없이 연결해주고, 그 너머로 안뜰과 수영장이 펼쳐진다.

야외 공간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청석 포장재가 각기 다른 입구로 뻗어나가면서 잔디와 포장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주변 초원과의 연결감을 유지한다.
수영장 옆 격자 지붕 아래에는 곡선형 콘크리트 테이블이 놓여 있고, 실내 주방과 바비큐 그릴, 탈의실, 욕실까지 갖춰져 있어 야외에서도 불편함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수영장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 맞춤 타일로 마감된 수영장에는 얕은 물놀이 공간이 따로 있고, 가장자리에는 넉넉한 선베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온수 욕조까지 이어지는 포장재의 흐름은 야외 공간 전체를 하나의 동선으로 묶어준다.

천장에 그려진 맞춤 벽화, 소장 미술품, 집 안 곳곳에 스며든 색채 감각. 이 집은 단순히 리모델링된 주택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삶과 취향이 공간이 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