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걸린 삼성, 이재용 등기임원 복귀할까

2024. 10. 2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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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개발보다 원가절감 위한 의사결정 구조 위기 키워”
“엔비디아 납품 후 AI 시대 이끌 삼성전자 청사진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부당합병 혐의 관련 2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내내 삼성전자 안팎에서 제기된 위기론이 공식화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이 기술 경쟁력 약화를 반성하며 외부 업황의 문제가 아닌 내부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다.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기술 테스트를 통과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시장은 더 이상 삼성전자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오보사’(주가 맨 앞에 5가 보이면 사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외국인은 지난 10월 17일에도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날까지 역대 최장인 27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이다. 삼성을 감시하는 민간기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는 현 상황을 사면초가로 규정하고,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컨트롤타워 재건을 촉구했다.

엔비디아 HBM3E 납품 사실상 불발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지난 10월 8일 공시했다. 매출은 전 분기 대비 6% 늘었으나, 영업이익이 12% 줄며 시장 기대치(10조원)에 못 미치는 ‘어닝쇼크’를 냈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사업부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영업이익이 전 분기 6조원대에서 5조원대로 줄었으리라 추정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스마트폰과 PC(개인용컴퓨터) 등 전방 정보기술(IT)의 수요 회복이 지연되면서 삼성전자의 주력인 범용 D램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반도체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부진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실적 악화도 영향을 끼쳤다. 국내 증권가는 ‘삼성전자만 홀로 겨울’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투자 은행들은 삼성전자를 ‘허약한 반도체 거인’이라고 꼬집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부회장)은 잠정 실적을 발표한 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라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잠정 실적을 두고 경영진이 사과한 건 삼성전자 창립 이래 처음이다. 2023년 반도체 부문에서만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가 났을 때도 삼성전자 경영진은 침묵을 유지했다. 누구보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그간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와 납품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던 삼성전자는 실적 참고 자료에서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와의 사업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 등에 공급하고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AI가속기인 ‘블랙웰’에 들어갈 12단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D램 1위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삼성전자의 D램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2% 증가해 1위를 유지했지만,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와의 격차는 12.8%포인트에서 8.4%포인트로 줄었다.

전영현 부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을 첫 번째로 꼽았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가 직면한 표면적인 문제는 수율(완성품 중 합격 제품의 비율)이다. 파운드리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리는 이유는 낮은 수율 때문이다. 수율은 반도체 기업의 생산성·수익성·기술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삼성전자 전·현직 직원과 파트너·협력사 관계자들은 낮은 수율 문제를 “비용 절감형 의사결정 구조에 따른 예고된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0월 10일 삼성전자는 전장 대비 2.32% 내린 5만8900원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해 3월 16일(5만9천900원) 이후 1년 7개월 만에 종가 기준 6만원 선을 내줬다.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HBM 5세대 제품인 ‘HBM3E’의 엔비디아 납품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6세대인 HBM4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애초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중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삼성전자를 떠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5세대에 실패하고 6세대를 성공하겠다는 것은 걷지는 못하지만, 뛰어보겠다고 외치는 것과 같다”며 “삼성전자는 10나노 4세대 D램(D1a)을 HBM3에 썼는데, 수율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를) 성공적으로 양산해 공정 미세화에 박차를 가했어야 하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실패 원인을 모른 채 스텝이 꼬인 상황에서 차세대 공정을 개발하다 보니 상황이 쉽지 않아 발목이 잡혀 버렸다”고 말했다.

‘초격차’를 내세우던 삼성이 수율에 발목이 잡힌 이유로는 기술개발보다 원가절감에 목을 매는 조직문화가 꼽힌다. 삼성 안팎의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이른바 삼무원(삼성전자 공무원)으로 불리는 보신주의가 생긴 건 눈앞의 성과를 중시하는 재무 인력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내부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HBM 개발과 연구에 인력과 돈을 투자할 동안 삼성은 2019년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며 조직을 해체했고, 당시 많은 인재가 삼성을 떠났다”며 “도전을 권장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확인하는 과정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영진 시야에서 품질 경영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그는 “2017~2020년 호황기 시절 반도체 연구소 설비에서 양산제품을 생산하느라 차세대 제품을 위한 개발과 시료를 만들 수 없었다”며 “반도체를 생산하면 계측을 중간에 진행해야 하는데, 계측기가 차지하는 공간과 과정 등이 돈으로 환산되면서 경영진이 ‘계측을 덜 해도 된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사면초가에 책임경영 목소리 부상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성공하더라도 미래가 밝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엔비디아의 하청업체로 인정받아 엔비디아의 몸값을 높여주는 게 삼성전자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재계 관계자는 “적어도 삼성전자라면 구글 못지않은 AI 연구·개발을 하거나, ‘탈엔비디아’를 위해 자체 반도체를 제작하는 세계 빅테크 기업들과 협의체를 만드는 등 미래를 내다보는 청사진이 있어야 하는데,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원들의 주말 출근과 정신력 강화 등으로 사내 정치를 하는 데 힘 빼기보다 시시각각 바뀌는 AI 기술 흐름을 숙지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기성품을 찍던 과거의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 시대에 맞춰 파트너들과 생태계를 구축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전영현 부회장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수성 마인드가 아닌 도전정신으로 재무장하겠다”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을 들여다보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관료화됐다고 비판받는 조직문화를 의식해, 현장과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수뇌부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지자 재계에서는 현재 비등기임원인 이재용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복귀해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회장은 회사의 법적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는데도 실질적으로는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해 논란이 돼왔다. 이찬희 삼성 준감위 위원장은 “삼성은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상황 변화 등으로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놓여 있다”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으로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10월 20일 “삼성전자는 HBM 팀을 한번도 해체한 적이 없다. 시기에 따라 인력 규모의 변화는 있었지만 해체는 없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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