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빚" 갚아준 팬과 재혼한 여가수 정체

데뷔부터 히트곡 제조기, 트로트 디바의 탄생

최진희는 그룹 '한울타리' 보컬로 활동하다 솔로로 전향한 이후, ‘그대는 나의 인생’, ‘사랑의 미로’, ‘미련 때문에’,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랑의 미로'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애창곡으로도 알려졌으며, 그녀는 북한 무대에도 네 차례나 섰을 만큼 국경을 초월한 인기를 자랑했죠.

무명 시절부터 남달랐던 존재감

공무원 월급이 4만 원이던 시절, 최진희는 한 달에 180만 원을 벌 정도로 음악계에 일찌감치 발을 내디뎠습니다.

20대 중반엔 어머니께 집을 마련해드리며 효심을 보였고, 당시 집에는 돈 세는 기계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첫 결혼과 이혼, 그리고 경제적 위기

1985년, 드러머 이덕규와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결혼 생활은 11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이혼 당시 그녀는 심각한 빚에 시달렸고, 남은 재산이라곤 차 한 대뿐이었다고 고백했죠.

언니 집에 얹혀 지낼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팬에서 남편으로… 기적 같은 두 번째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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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한 행사에서 만난 사업가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오랜 팬이었던 그는 최진희에게 지속적으로 진심을 전했고, 결국 15억 원에 달하던 빚을 대신 갚아주며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됩니다.

딸의 권유로 재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2000년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위기도 있었지만, 함께 이겨낸 부부의 시간

tv조선

집을 지으면서 공사 문제로 다툼도 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찾아왔지만 남편은 3억 원을 지원해주며 위기를 넘겼습니다. 최진희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남편을 보며 내가 남자복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여전히 건재한 트로트 여왕

빌딩과 토지 등 자산도 확보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최진희는 여전히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0주년 콘서트도 성황리에 마무리하며, 명실상부한 레전드의 면모를 보여줬죠.

“히트곡이 20곡이 넘는다”는 자부심처럼, 그녀의 인생 제2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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