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납부 창구...시들한 고향사랑 기부 열기
올 상반기 모금 200억 못미쳐
지난해 동기보다 14.3% 줄어
전남 22.4%…가장 큰폭 감소
지정기부 진행 사업 차질 우려
민간 플랫폼 개방 등 서둘러야
“올해 들어 우리 지점 창구를 통해 고향사랑기부금을 납부한 사례는 한건도 없습니다.”
전국의 농협 예금창구에는 ‘고향사랑기부금 수납창구’가 있다. 전국 NH농협은행과 농·축협은 온라인창구인 ‘고향사랑e음’과 함께 고향사랑기부금을 납부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창구들이 요즘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올들어 기부금을 한푼도 접수하지 못한 창구도 있다.
한 지역농협 관계자는 “모금 첫해인 지난해에는 각종 기관과 연계한 행사 등에서 모은 기부금이라도 들어왔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없다”고 밝혔다.
고향사랑기부제(고향기부제)가 시행 2년차를 맞았지만 모금 열기가 벌써 시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전체 모금액이 지난해보다 줄었고, 모금을 독려하는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모금창구를 민간 플랫폼으로 개방하고, 개인에게 홍보를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2023·2024년 분기별 고향기부제 모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고향사랑기부금 총액은 199억8000만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4.3%(33억3300만원) 감소했다. 1인당 평균 모금액도 13만4940원으로 10.1% 줄었다.
특히 지난해 가장 많은 금액(143억3000만원)을 모금한 전남이 전국 가운데 가장 감소분이 컸다. 전남은 지난해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모금액 100억원을 넘겼지만, 올 상반기엔 47억5400만원을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61억2700만원) 대비 22.4%(13억7300만원)나 급감했다. 올해 모금액 2·3위를 차지한 전북(-7.4%)과 경북(-21.5%)도 줄긴 마찬가지다.
지자체 담당자들은 고액 기부가 준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초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은 모금액(22억4000만원)을 기록한 전남 담양군 관계자는 “10월 기준 지난해에 비해 모금 건수는 늘었지만 모금액은 5∼6% 줄었다”며 “기부 첫해에는 독지가 등이 상한액인 500만원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2년차인 올해는 소액 기부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금액이 줄면서 기부금을 통해 진행하는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광주광역시 동구는 지난해 발달장애인으로 이뤄진 E.T(East Tigers) 야구단을 운영하기 위해 민간 플랫폼을 활용한 지정기부로 2억5470만원을 모금했는데, 올해는 17일 기준 고향사랑e음에서 670여만원(목표액 8200만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김희선 광주광역시 동구 인구정책계장은 “지난해 모금액으로 올해까지 운영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지만 모금액이 급감하면서 앞으로 운영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런 탓에 모금창구를 민간 플랫폼으로 개방하고, 개인에게 홍보를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행안부는 지자체 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올 8월 고향사랑e음을 민간 플랫폼과 연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안에 시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계장은 “민간 플랫폼과의 연계가 연내 시작할지도 불투명할뿐더러 민간 플랫폼이 자유롭게 홍보활동을 할 때와 같은 효과를 낼지도 의문”이라며 “지자체에서 자유롭게 모금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종 행사를 통해 모금을 독려하고 있는 농협 관계자들은 개인에게 홍보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태규 NH농협 전남 순천시지부 농정단장은 “첫해엔 이벤트성으로 한 고액 기부가 많았지만 기부문화가 정착하려면 개인의 소액 기부가 늘어야 한다”며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아직 일반인들은 고향기부제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홍보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법인으로 기부 대상을 확대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권선필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기부제 특별위원장(목원대학교 교수)은 “법인이 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금하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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