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황제가 점찍은 명당”...110주년 맞은 한국 최고(最古) 호텔 [호텔 체크人]
110주년 맞은 최고(最古)호텔
황제의 명당에서 세계의 안방으로
한 세기를 넘어선 서울의 랜드마크
매 순간 고객과 쌓아온 신뢰가 원동력
화려한 호텔이라도 신뢰 없이는 110년을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웨스틴 조선 서울이 개관 110주년을 맞았다. 국내 호텔 업계에서 웨스틴 조선 서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지켜왔다.
1만 3223㎡ 넓은 부지에 4층 본관과 2층 별관, 총 72개 객실. 당대 최대 규모였다. 최초 프렌치 레스토랑 ‘팜 코트’, 최첨단 ‘콘서트룸’과 ‘연회장’. 조선호텔은 이미 문화예술 중심지였다. 개관과 동시에 세계 귀빈들의 필수 방문지였다.
하지만 역사는 고종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914년, 일제는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땅은, 이제 사람들이 꿈을 꾸는 공간이 됐다. 세월은 흘렀지만, 장소의 정기는 그대로다. 철도호텔은 웨스틴 조선 서울로 이름을 바꿨지만, 황궁우의 묵묵한 응원 속에 웨스틴 조선 서울은 110년간 최고(最古) 호텔 자리를 지켜왔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쟁, 그리고 경제 부흥까지. 웨스틴 조선 서울은 한국 근현대사 무언의 증인이다.
마지막 순간, 주방에서 묵묵히 일하던 셰프들이 하얀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무대를 걸어 나오는 모습은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겼다. 처음엔 실수를 우려했지만, 본 행사에서 직원들은 완벽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해낸 직원들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현관은 수많은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VIP부터 일반 고객까지, 기쁨과 슬픔을 안고 오가는 사람들 희로애락이 이곳에 집약된다. 흥미로운 점은 1970년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낡았다’고 평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체로 의미가 깊다.
IMF 세대 숙명일까. 취업은 시급한 과제였다. 깊이 있는 준비보단 빠른 사회 진출을 택했다. ‘마케팅’이란 키워드를 따라 우연히 조선호텔의 문을 두드렸고, 처음엔 ‘그저 그런 호텔’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입사 후 모든 게 달라졌다. 호텔 상징성·중요성, 그리고 내가 잡은 기회의 크기를 깨달았다. 인식뿐만 아니라 관점도 변했다. 정치 외교학을 전공하며 현상을 비틀어 보던 성격에서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호텔리어로 탈바꿈했다.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자부한다. 밤 11시, 집에 돌아와 LP를 돌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우연한 계기였지만, 지금 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열정,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호텔 업무와 시너지를 냈다. 대학 시절, 월요일 조조 영화를 혼자 보며 느꼈던 감성이 지금은 호텔 마케팅·기획에 녹아들었다. 매년 여름 아트 페스티벌을 열어 록 밴드나 힙합 아티스트를 초청한다. 110년 된 호텔이라고 꼭 올드해야 하나. 겉으로는 전통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역동성을 잃지 않고 있다.
VIP의 정의도 새롭게 해석한다. 단순히 ‘귀빈’(Very Important Person)을 넘어, ‘감동을 주는 사람’(Very Impressive Person)으로 본다. 두툼한 지갑을 가진 사람보다는 호텔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사람, 호텔에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는 이들이야말로 현 시대에 걸맞은 VIP라고 생각한다.
목표는 전 세계인이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호텔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항상 곁에 있는 호텔’로 기억되길 바란다. 할아버지 첫 데이트부터 손주 졸업 축하 파티까지, 한 가족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으로 남고 싶다. 겉으로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지만, 내면으로는 끊임없이 혁신하며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는 ‘정중동(靜中動)’ 공간을 지향한다.
20층 웨스틴 클럽 라운지에서 진행하는 ‘커넥트(Connect)’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한 달에 한 번,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축제 같은 거다. K-푸드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했다.
객실 상품도 ‘메이드 인 코리아’ 스타일로 바꿨다. 경복궁 연계 체험이나 미술관 투어 등 한국적 요소를 담은 ‘로컬 투어 패키지’를 내놨다. 상품 구매율은 과거 10-20%에서 현재 30-40% 이상 크게 성장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체험’ 상품이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 OTA 채널을 통해 외국인 고객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로컬 경험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K-컬처 영향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트렌드라고 판단한다.
과감히 좌식 테이블에 작별을 고하고 테이블 좌석을 전면 도입했다. 여기에 요즘 트렌드인 ‘오마카세’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도 마련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은 편안함에 환호했고, 직원은 무릎 관절에 작별 인사를 했다. 럭셔리한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편안함은 한층 높아졌다. 고객과 직원이 동시에 미소 짓는 찰나가 혁신의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호텔리어 일은 지속 가능한 직업이다. 코로나 이후 여행과 레저 산업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호텔 관련 비즈니스 활성화와 부가가치도 높아졌다. 10~20년 후에는 다른 산업과 간극을 메우고 앞서 나갈 수 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이렇게 예쁜데 힘든 일을”…안재현과 이혼 묻자, 구혜선의 대답 - 매일경제
- 오늘의 운세 2024년 10월 12일 土(음력 9월 10일)·2024년 10월 13일 日(음력 9월 11일) - 매일경제
- “샤워 중 노래 부르면”…‘법원 밴드부 회장’ 송일국 판사 아내가 한 말 - 매일경제
- “이 영상 보면 입이 쩍”…공군의 ‘강펀치’ 레이더 모르게 400km 밖 표적 뚫었다 - 매일경제
- 커피도 아닌데 한국서 1억잔 팔렸다…정식 메뉴도 아니었다는 이 음료 - 매일경제
- “너넨 야경 봐 좋지만 우린 어떡하라고?”... 한강전망 끝판왕 호텔이 받은 민망한 민원 - 매일
- “한강 덕분에 우리 아들 한 풀었다”…노모의 눈물, 무슨 일인가 봤더니 - 매일경제
- 제시에 사진 요청했더니 일행이 주먹질…“가해자 처음 본 사람…도의적 책임” 사과 - 매일경
- 노벨상 쾌거에 숨은 ‘적자 2조원’의 마술···구글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글로벌] - 매일
- 법원, ‘아동학대 혐의’ 손웅정 감독 등 3명에게 벌금 300만 원 약식명령···“더 이상 욕설·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