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원더독스 윤영인, 실업리그 에이스에서 ‘해결사’로… 김연경 감독이 웃은 이유

필승 원더독스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던 초반, 벤치에 서 있는 김연경 감독의 표정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 라인에서 공을 “쾅” 하고 내리꽂는 한 선수였다. 숫자와 스펙보다 표정으로 먼저 경기장을 압도하는 타입. 그게 윤영인이다. 프로 드래프트에서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실업 무대에서만 7년을 버틴 선수라는 소개를 들었을 때, 솔직히 ‘이 무대에서 바로 통할까?’라는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코트를 밟은 뒤 보여준 건 그동안의 시간을 전부 설명해주는 농밀한 한 방, 그리고 흐름이 기우는 순간에 딱 필요한 표정과 몸짓이었다. 한마디로, 이 팀이 불을 지필 때 먼저 성냥을 긋는 선수다.

원더독스에서 윤영인의 자리는 분명하다. 아포짓 스파이커, 라이트. 네트 우측 끝자락, 팔꿈치를 높이 세우고 내려찍는 그 구역. 이 자리는 보통 키 큰 강타자들이 오래 자리 잡는다. 윤영인은 178cm로 포지션 평균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타점으로 잃은 걸 타이밍과 파워로 벌어온다. 토스를 잡아들이는 순간, 공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짧고 빠르게, 그래도 손끝에 힘은 남겨두며 밀어 넣는다. 상대 블로커가 타이밍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리듬이다. 직선과 대각을 같은 폼으로 때릴 수 있고, 한 번 박아 넣은 뒤엔 다음 볼에서 페인트로 블로커를 묶는 눈치도 있다. 실업 무대에서 매일같이 맞물려 싸우던 블록 두 겹, 세 겹을 지나온 사람의 감각이다.

팀 안에서 그의 존재감은 스파이크 숫자보다 분위기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흔들리는 시점, 수비가 길게 끌려다닌 랠리 뒤, 누구나 어깨가 무거워지는 그 공에서 윤영인이 손을 든다. 강한 서브 한 방으로 사이드를 찍고, 바로 이어지는 랠리에서 대각으로 뽑아내며 “괜찮다, 다시 가자”라는 신호를 던진다. 김연경 감독이 “소극적이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장면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는데, 그 이후로는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득점 뒤 동료들을 쓸어올리는 제스처, 상대 블록에 걸려도 다음 볼에서 주저 없이 다시 때리는 그 결. 원더독스가 슬슬 이 팀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싶을 때, 그 색깔의 농도를 진하게 만드는 손이 윤영인의 오른팔이다.

물론 장점만 있는 선수는 없다. 윤영인의 약점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첫째, 신장. 라이트에서 블로킹을 책임지려면 손끝의 각도와 위치를 한 치도 틀리지 않게 잡아야 한다. 높이로 덮지 못하는 만큼 사이드 스텝과 손 모양이 생명이다. 가끔은 바깥으로 새거나, 손목이 열려 맞고 나가는 공이 나온다. 둘째, 프로 무대 경험치. 실업 리그와 방송 무대, 그리고 프로급 상대는 결국 스피드가 다르다. 빠른 토스, 짧은 템포, 전술 전개 속도에 맞춰 블로킹 라인을 정리하고 디그 포지션을 옮기는 감각은 아직 쌓는 중이다. 셋째, 멘탈의 기복. 큰 소리를 내며 팀을 끌어올릴 땐 누구보다 뜨거운데, 두세 개 연속으로 막히는 날엔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가기도 한다. 김연경 감독이 줄곧 “자신 있게”를 주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 시간과 성공 경험으로 채워지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이 팀에서 윤영인이 갖는 가치는 단단하다. 원더독스는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팀이고, 그래서 과정이 그대로 결과가 된다. 윤영인은 과정의 증명이다. 드래프트 탈락 → 실업 무대 에이스 → 트라이아웃 선발 → 라이트 해결사. 이 서사가 팬들의 가슴을 먼저 움직인다. 코트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방식이 ‘힘으로만 누르기’가 아니다. 세트 후반, 토스가 조금 붙으면 공을 눌러 때리고, 뒤로 물리면 스냅을 강하게 써서 블록 사이 손끝을 노린다. 라이트에서 자주 나오는 짧은 백어택도 망설임이 없다. 이게 쌓이면 세터의 선택지가 넓어진다. 미들 템포 하나, 라이트 백어택 하나, 레프트 고속 하나. 상대 블록은 분산되고, 그 사이로 우리 수비도 숨을 고른다. 공격수 하나의 존재가 팀 구조를 바꿔놓는 방식이 바로 이런 거다.

최근 경기에서 윤영인이 보여준 장면을 떠올려보자. 2세트 후반, 딱 그 한 공이 필요할 때 서브 에이스가 네트를 스치듯 들어갔다. 바로 다음 랠리에서 라이트 줄 강타. 두 포인트 차가 네 포인트 차로 벌어지면서 벤치가 동시에 일어났다. 이게 클러치다. 기록지에선 서브 에이스 1, 공격 득점 1로 끝이지만, 실전의 체감 가치는 그 이상이다. 상대 세터는 다음 로테이션에서 리시브 부담을 덜어주려고 미들을 더 써야 하고, 그 순간 우리 블로킹 라인은 중앙을 예측하고 올라선다. 공격 한 번이 수비까지 덩달아 정돈되는 효과. 팀이 ‘흐름을 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들도 구체적으로 보인다. 블로킹은 손 모양과 타점보다 ‘위치 선정’이 먼저다. 라이트 블록은 레프트에 비해 스텝 폭이 좁고, 라인·내각 선택이 빠르다. 상대 세터가 대각으로 틀면 반 걸음 안에서 손끝을 닫아야 하고, 라인으로 빠지는 톱스핀은 손목을 세워 눌러야 한다. 이 훈련은 지루하지만 답이 있다. 같은 코스 50개, 타점 50개를 몸에 익히면 실전에서 발이 먼저 간다. 리시브 커버도 중요하다. 라이트가 뒤에 빠져 있을 때, 두 번째 터치가 흔들리면 윤영인이 한 발 더 들어와 올려야 한다. “나는 때리는 사람”이라는 선 긋기를 넘어 커버까지 가져오면, 김연경 감독이 말한 “토털 배구”에 더 빨리 닿는다. 멘탈은 더 단순하게. 막히면 웃고, 다음 공을 더 세게. 블로커가 손을 댄 공은 나쁜 게 아니다. 타이밍이 비슷했다는 뜻이고, 다음 공에서 각도를 반만 바꾸면 된다. 이걸 몸이 알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원더독스 안에서 윤영인은 이미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실업 리그에서 수없이 치고받으며 배운 “이기는 법”을 후배들에게 그대로 가르친다. 랠리 끝에 숨이 찼을 때, 손을 높이 들고 “다음 공”을 외치는 사람. 자신이 먼저 점프해 몸을 던져주는 사람. 이런 행동은 말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김연경 감독이 바라는 팀의 결은 아마도 여기 있을 것이다. 누구 한 명이 30점을 때려 이기는 팀이 아니라, 다섯 명이 동시에 한 발 더 뛰어 이기는 팀. 윤영인의 에너지와 눈빛은 그 철학의 앞줄에 서 있다.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이 선수가 조금 더 일찍 프로의 문을 열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지금의 무대가 오히려 잘 맞을지도 모른다. 여긴 “버텨온 시간”이 곧 서사이고, 그 서사가 곧 힘이 된다. 팬들은 그 힘에 환호하고, 동료들은 그 힘을 믿는다. 그래서 윤영인의 득점은 단순히 1점이 아니다. 실패와 좌절, 다시 도전의 세월이 포물선을 그려 네트를 넘는 순간, 그 한 방은 스코어보드보다 큰 울림을 남긴다.

결국 배구는 순간의 스포츠다. 세트가 갈리는 공, 흐름이 꺾이는 공, 자신감이 돌아오는 공. 윤영인은 그 순간에 손을 든다. 아직은 미완의 구석도 보이고, 높은 벽 앞에서 주저앉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선수는 알 것이다. 라이트의 자리에서 한 번 더 뛰고, 한 번 더 때리고, 한 번 더 웃으면 결국 벽에도 문이 생긴다는 걸. 필승 원더독스가 그 문을 먼저 발견할 때, 거기엔 아마 9번이 서 있을 것이다. 이름은 윤영인. 이 팀의 오른쪽 끝에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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