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누이와 올케는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라고들 합니다. 한집안 식구가 되었지만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기에 서로의 마음을 다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베푼 정성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 같아 오래도록 서운함을 품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천 중구에 사는 박미숙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 정영길 씨와 함께 40년 동안 신포시장에서 작은 건어물 가게를 했습니다. 부부는 아들 둘을 키워 장가보냈고, 가게를 정리한 뒤로는 시장 근처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지냈습니다.
30년 전, 남편의 막내 여동생 은희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시댁은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시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남의 집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었습니다. 혼수를 해 줄 돈이 없어 시어머니는 밤마다 한숨을 쉬었습니다.
미숙 씨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결혼 전부터 친정에서 모아 둔 곗돈 통장을 꺼냈습니다. 그 돈으로 은희의 혼수 1,000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집 한 채 전세금에 가까운 큰돈이었습니다. 미숙 씨는 시어머니에게 부탁했습니다. "어머니, 이건 어머니가 해 주신 걸로 해 주세요. 아가씨 마음 불편하지 않게요."
그 곗돈은 미숙 씨가 시집오기 전 공장에서 일하며 7년 동안 모은 돈이었습니다. 언젠가 작은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었지만, 미숙 씨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시댁 막내가 기죽어 시집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희는 결혼식 날 고운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새 이불과 장롱, 그릇 세트까지 남부럽지 않은 혼수였습니다. 미숙 씨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은희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뒤로 시누이와 올케가 얼굴을 보는 날은 명절 한두 번이 전부였습니다. 은희는 늘 조용했고, 미숙 씨에게 살갑게 말을 건네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명절에 만나도 은희는 부엌일을 묵묵히 거들다 일찍 자리를 떴습니다. 미숙 씨가 "아가씨, 요즘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으면 "그럭저럭요" 하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미숙 씨는 시누이가 자신을 어려워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미숙 씨는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조금은 마음을 나눌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은희는 늘 한 걸음 떨어져 있었습니다. 미숙 씨는 시누이가 혼수 일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숙 씨의 친정어머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미숙 씨는 가게 일을 하며 어머니를 돌보다가, 결국 인천의 한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요양원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어 미숙 씨는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요양원에 어머니를 처음 모시던 날, 미숙 씨는 주차장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딸로서 끝까지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양원에서 매달 어머니 앞으로 기저귀와 간식, 새 내복이 넉넉하게 들어왔습니다. 요양원 직원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후원자분이 보내 주신다"고만 했습니다. 미숙 씨는 교회나 복지 단체에서 보내 주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 후원은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한 달도 빠짐없이 이어졌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겨울에는 두툼한 오리털 이불까지 도착했습니다. 미숙 씨는 얼굴도 모르는 그 후원자에게 마음속으로 수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은희는 부산에서 올라와 조용히 조문을 하고 갔습니다. 미숙 씨는 먼 길을 와 준 시누이가 고마웠지만, 은희는 그날도 별말 없이 미숙 씨의 손을 한 번 잡았다가 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올여름, 남편 영길 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년 넘게 투병하는 동안 미숙 씨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남편 곁을 지켰습니다. 장례식장에 남편의 영정 사진이 걸리자 미숙 씨는 그제야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장례 둘째 날 밤, 부산에서 은희가 올라왔습니다. 은희는 오빠의 영정 앞에서 한참을 울다가 미숙 씨 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누런 봉투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습니다.
"언니, 이거 언니한테 꼭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저도 언니한테 30년 동안 못 한 말이 있어요."
미숙 씨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빛바랜 편지 한 장과 요양원 영수증 묶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는 30년 전 남편이 은희에게 쓴 것이었습니다. [은희야, 네 혼수는 엄마가 아니라 네 새언니가 친정에서 모은 돈으로 몰래 해 준 거다. 새언니는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빠는 네가 알고 살았으면 한다. 평생 새언니한테 잘해라.]
은희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언니, 저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오빠한테 이 편지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언니 얼굴을 제대로 못 봤어요. 고맙다고 하면 그 큰돈을 갚아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갚을 형편이 안 됐거든요."
"그러다 언니 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를 오빠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보냈어요. 기저귀랑 간식이랑 내복이요.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언니가 알면 또 저를 걱정할 것 같아서요."
미숙 씨는 영수증 묶음을 넘기다 숨을 멈췄습니다. 10년 동안 요양원에 도착했던 그 모든 물건의 영수증이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바로 은희였습니다.

미숙 씨는 은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가씨, 그 혼수는 내가 좋아서 한 거야. 갚을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지. 아가씨도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10년을…."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큰아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고모, 외할머니 내복이 늘 새것이었던 게 고모 덕분이었어요?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10년 동안 얼굴도 모르는 분께 감사 기도를 했어요."
은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언니가 우리 엄마 대신 저를 시집보내 줬잖아요. 저는 언니 엄마를 조금 챙겨 드린 것뿐이에요. 오빠가 마지막에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두 사람이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살라고요."
은희는 덧붙였습니다. "오빠가 투병하는 동안 전화할 때마다 언니 이야기만 했어요. 내가 죽으면 네 새언니 혼자 남는다고, 꼭 곁에 있어 주라고요." 미숙 씨는 남편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걱정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습니다.
두 사람은 빈소 한쪽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30년 동안 서로를 어려워했던 시누이와 올케가, 한 사람의 마지막 자리에서 비로소 마음을 열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 날, 미숙 씨는 은희와 함께 신포시장 골목의 오래된 칼국숫집에 갔습니다. 바지락을 듬뿍 넣은 칼국수 두 그릇이 김을 내며 놓였습니다. 은희가 말했습니다. "언니, 오빠가 이 집 칼국수 좋아했죠." 미숙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희의 그릇에 바지락을 덜어 주었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은 성도 아버지도 다른 형제들이 한집에 모여 살며 진짜 가족이 되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은 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헤아리고 지켜 준 시간으로 만들어집니다.

베푼 정성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자라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서운함을 품은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의 침묵 속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지 한 번쯤 헤아려 보세요.
올가을 미숙 씨는 부산에서 올라온 은희와 함께 월미도 바닷길을 걸었습니다. 잔잔한 바다 위로 저녁노을이 붉게 번졌고, 갈매기들이 낮게 날며 항구를 맴돌았습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바닷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출처 : '즐거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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