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없이 입으로만 “골입니다”… 이번 월드컵도 ‘입중계’ 들을까?

남정미 기자 2026. 6. 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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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화면 없이 말로만 설명
‘입중계’가 뜨는 이유

“과연 최정 선수는 팀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팀의 상징이 돌아온 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난달 31일 오후 2시,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SSG 랜더스의 프로야구 경기. 4회 초 그라운드에 SSG 랜더스 간판 타자 최정이 들어서자 TV 속 스포츠 채널 중계진의 입이 바빠졌다. 최근 부상을 털고 열흘 만에 1군에 복귀한 그가 팀의 연패를 끊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같은 시각 한화 이글스 팬 3800여 명이 모인 유튜브 ‘이영우의 라이브 TV’에선 전혀 다른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한화 이글스 외야수였던 이영우(53) 전 선수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야구를 중계하는 채널. 이곳 채팅방에선 최정이 아닌 그와 맞서는 한화 외국인 투수 윌켈 에르난데스에게 온통 이목이 집중됐다. 이글스 유니폼을 벽에 걸어 두고, 이글스 모자를 쓴 채, 주황색 옷을 입은 이영우가 채팅방 댓글을 실시간으로 읽으며 대답했다. “이번 시즌 우리 용병이 타 팀에 비하면 생각보다 구멍 안 내고 잘하는 듯해요. 우리가 용병을 못 뽑은 건 아니에요. 타 팀 봐봐. 난리도 아닙니다.”

분명 야구 중계인데 야구장 모습은 없다. 화면엔 채팅창과 이닝별 점수, 선수 이름만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시돼 있을 뿐. 선수가 어디까지 진루했는지, 공이 담장 밖으로 넘어갔는지 등 실시간 경기 진행 상황은 오직 중계자의 ‘입’으로만 설명된다.

지난달 31일(한국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푸스카스 아레나에서 열린 파리 생제르맹(PSG)과 아스널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공중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오직 입으로만 중계한다

시작은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 이가 없으니 잇몸이 대신 나섰다. 본디 스포츠 중계란, 선수들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송출되는 영상이 생명이다. 그러나 높은 중계권료에 영상을 쓸 수 없거나, 혹은 아예 중계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말로만 경기를 해설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일명 ‘입중계’다. 저작권 개념이 철저한 해외에선 일찌감치 발달한 형식이다. 구독자 수 226만명을 자랑하는 해외 유명 축구 전문 유튜브 ‘The United Stand’, 구독자 182만명을 둔 아스널 팬 유튜브 ‘AFTV’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중계 화면 대신, 입으로 해설하고 온몸으로 반응을 보여주며 팬들의 채팅에 실시간으로 답한다.

국내에선 실제 경기 중계를 잘 안 하는 종목을 중심으로 입중계가 부상했다. 2005년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관심이 폭증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 해외 축구가 대표적이다. 이들 경기는 국내 지상파 방송에선 다루기 어려운 새벽 시간대에 하는 데다, 일부 스포츠 전문 채널 등이 중계권을 독점하면서 유료로 가입해야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생 때인 2007년 초부터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는 직장인 한모(38)씨는 “당시만 해도 자취하느라 집에 TV도 없고, 비싼 유료 채널 구독하기도 부담스러워서 아프리카TV를 통해 입중계를 봤다”며 “입중계를 들으며 이 시간대에 함께 축구 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가 않았다”고 했다.

◇‘축잘알’ 형이랑 같이 보는 느낌

최근엔 입중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화면이 나오는 중계를 볼 수 있음에도, 일부러 입중계를 찾아 듣는 것이다. “해설이 훨씬 찰지고 보는 맛이 난다”는 게 팬들의 중론이다. 방송 심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지상파나 최근 중계권을 공격적으로 확보해 나가는 OTT 등과 달리, 개인이 진행하는 입중계에선 상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나 리액션 폭이 넓다. 온라인상 신조어나 유행어, 심지어 가벼운 비속어까지 용납되는 경우가 많다. 축구 팬인 직장인 윤모(42)씨는 “입중계는 정말 옆집에 사는 축구 잘 아는(축잘알) 형이랑 함께 경기를 보는 느낌”이라며 “정제된 언어로 해설하는 기존 중계와 달리, 그 순간 팬들이 듣고 싶은 말이나 리액션을 시원하게 해주기 때문에 축구 보는 재미가 훨씬 크다”고 했다.

유튜브 ‘비정상축구’에서 방송인 피터(맨 왼쪽), 알베르토, 파비앙이 입중계를 하고 있다. /유튜브

실제 지난달 31일 오전 1시(한국 시각)에 진행된 파리 생제르맹과 아스널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입중계’는 맹활약했다. 유튜브 ‘비정상축구’는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3인방을 표방하는 방송인 파비앙·피터·알베르토가 운영하는 스포츠 채널이다. 경기가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 이르자, 실제 프랑스 파리 출신인 파비앙이 중계하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이들이 진행한 입중계는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조회 수 24만회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엔 평소 열혈 축구 팬으로 알려진 영화감독 봉준호(57)가 손흥민 선수가 출전한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UEL) 결승 입중계에 나서, 조회 수 80만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봉 감독은 손흥민이 후반 교체 투입되자 “건배”를 외치며 술잔을 들고, “이런 중요한 시점에 영화 얘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등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화제를 모았다.

봉준호 감독(왼쪽에서 둘째)과 방송인 김신영 등이 입중계에 나선 모습./유튜브

◇대놓고 ‘편파 중계’ 가능

대놓고 ‘편파 중계’가 가능하다는 점 역시 입중계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공식 스포츠 중계의 경우 국가대표 경기가 아닌 이상, 중립을 지키며 최대한 공정하게 중계해야 한다. 입중계는 다르다. 아예 채널명에서부터 어느 팀 입중계인지를 밝혀, 원하는 팬들이 골라 들을 수 있도록 한다.

프로야구가 대표적이다. 이영우의 라이브 TV는 한화 이글스 선수 출신이 운영하는 입중계 채널답게 철저히 한화 위주 중계다. 팀이 부진할 때는 더 아프게 쓴소리하고, 잘할 때는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야구 팬인 회사원 김모(44)씨는 “경기는 놓쳤더라도 이후 녹화된 입중계 영상은 찾아서 다시 본다”며 “진짜 팬들만큼 정확하게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한화 이글스 선수 출신이 운영하는 입중계 채널./유튜브

지역을 연고지로 둔 스포츠인 만큼, 해당 지역 사투리를 잘 살리는 것도 야구 입중계의 매력이다. 대구 기반 팀인 삼성 라이온즈 입중계에선 “어제 야구보다가 (대구) 파티마병원 응급실 갔다카는 형님 계신다”와 같은 대구 사투리가, 광주 기반 팀인 기아 타이거즈 입중계에선 “아, 2회가 순식간에 끝나부렀네요. (김)도영아, 하나만 하자잉”과 같은 구수한 광주 사투리를 들을 수 있는 식이다.

다만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TJB(대전방송)는 유튜브 채널 ‘티잼비’를 통해 진행한 입중계에서 출연진이 상대편인 LG 트윈스 선수에게 “틱장애가 있는 것 같다” 등 비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당시 LG 트윈스 팬들은 물론이고 전체 야구팬들 사이에서 “도를 넘었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TJB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무리 한화를 응원하는 편향 중계이며 재미를 강조했더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이란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안정환도 월드컵 입중계로?

그럼에도 입중계는 올여름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북중미 월드컵 중계를 TV로는 KBS와 JTBC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 BJ(인터넷 방송인)로 과거 지상파 월드컵 중계를 하기도 했던 감스트는 일찌감치 플랫폼 SOOP(전 아프리카TV)을 통해 입중계를 하겠다고 밝혔고, 유명 스포츠 해설가인 박문성 역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 ‘달수네라이브’를 통해 입중계를 할 전망이다.

지난달 9일 안정환 선수가 자신의 SNS에 '입중계' 여부를 묻는 영상을 게재했다./인스타그램

지난 월드컵에서 여러 번 MBC 해설위원으로 나서며 시청률 1위를 견인했던 안정환 역시 입중계 의사를 내비쳤다. 이번 월드컵에서 MBC가 중계를 하지 않으면서, 안정환도 공식적인 중계는 하지 않는다. 이에 안정환은 지난달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월드컵 중계를 하지 못하게 돼 많이 아쉽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이 있다”며 “안정환19 채널(개인 유튜브)에서 입중계를 한번 해볼까 생각을 하는데 주위에 찬반이 되게 많아 의견을 여쭙고자 한다”는 영상을 올렸다. “형님 목소리가 있어야 축구 볼 맛이 난다” “공중파에서 못 하는 입담 멘트 중계 기대된다” 등 2000개 넘게 달린 댓글 대다수가 찬성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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