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항암 생활5- 수술과 항암 치료 이후 면역 관리 병원에 다녀야 하나요?-구경희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질문들

여덟 번의 항암을 했다. 암의 종류와 기수에 따라 항암의 종류는 다르다. 나의 경우는 주사 항암과 2주간의 약물 항암을 한 세트로 총 8회를 했다. 항암을 시작할 때마다 채혈하고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 등을 검사한 후에 주사를 맞는데 수치가 낮으면 주사를 맞을 수가 없다. 채혈할 때마다 호중구 수치가 낮게 나올까 봐 걱정하곤 했는데 마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혈액 성적을 받기 위해 평소 입맛이 있든 없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8차에 걸친 항암 동안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스케줄대로 진행했는데 그래도 꽉 찬 6개월이 넘게 걸렸다.

항암이 끝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지막 항암을 마치고 점검차 CT를 찍고 관해 (암세포가 보이지 않음) 상태임을 확인했다. 항암치료를 지휘하신 종양내과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다 끝났습니다. 6개월마다 외과에서 정기적으로 추적검사 할 것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
종양내과 선생님은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다. 3기 중에서도 림프절 전이가 많아서 케모포트도 고려했었고 약도 꽤 세게 처방해서 치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손가락 발가락이 검게 죽지는 않았는지 검사를 하곤 했다.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끝이 났다. 그날 나는 무진장 기분이 좋아서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아산병원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날듯이 걸어온 기억이 난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이게 다 끝났다고? 치료가 끝났다면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냥 6개월을 기다리다가 검사를 받으러 가면 되는 건가? 무엇인가 더 좋은 치료가 남았는데 내가 놓쳤으면 어쩌지?’
또 다른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나의 태도는 암 치료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항암치료 이후에도 고용량 비타민C, 싸이모신 알파주사, 면역주사, 온열치료, NK세포 측정 등 수많은 보조 치료 요법들이 나와 있었다. 대학 병원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치료에 대한 안내가 없었는데 이런 보조 치료를 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온갖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진단 초기에 겪었던 암 환자 공포증에 다시 사로잡혔고 혼자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주사요법

. 내 인생 처음으로 빽을 써본 것도 이때이다. 주변에 암 면역병원 의사를 아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소개받은 첫 암 면역병원은 우이동에 있었다. 우이동은 대학 다닐 때 신나게 MT 갔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이제는 병 치료를 위해 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이동은 요양병원과 암 면역병원이 즐비했다. 멋진 북한산 산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병원 중에서 소개받은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입원실은 꽉 차 보였다. 병원 곳곳에 무슨 주사를 맞으면 NK세포 수치가 올라간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맞으려고 생각했던 고용량 비타민C 주사 소개 포스터도 있었는데 포스터가 심각하게 낡아 보여서 뭔가 믿음이 가질 않았다. 원장 선생님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암은 나을 수 있습니다. 다 마음에 달려있어요. 욕심을 버리세요. 기대를 버리세요. 암은 주로 착한 사람들한테 많이 옵니다. 속이 많이 상해서 걸리는 병이지요. 많은 분이 암에 걸리고 다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오셨으니까 비타민 주사나 맞고 가시고요. 특별히 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 책 읽어 보세요.”
라고 하면서 수술과 항암치료 없이 대장암이 나았다는 어느 미국인 책을 주었다. 본인이 개발한 식이요법과 운동, 그리고 마인드 관리가 그의 치료비법이었는데 책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도 수술과 항암 등 표준 치료가 필수라고 믿는다. 그날 낡은 입원실에 누워 고용량 비타민C 주사를 맞으며 누워있는데 창밖 멀리 북한산 바위가 보였다. 봄이 오면 꼭 저 산에 올라야지 생각하며 혈관이 덜 터진 한 쪽 팔에 주사를 꽂고, 혈관이 터져 멍이 시퍼런 다른 쪽 팔로는 수술 없이 대장암을 치료했다는 미국 사람 책을 뒤적였다. 오전부터 준비해서 부랴부랴 병원에 왔는데 주사를 다 맞고 병원을 나서니 이미 짧은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암 면역 병원 방문은 끝이 났다.

병원마다 걸려있는 면역 강화 식품

우이동 원장님은 면역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단어는 통사 치료라는 단어였다. 말하자면 등에 통증이 있다고 등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몸 전체의 면역 기능을 올려야 한다는 그런 논리였다. NK세포 얘기에도 솔깃했는데 몇 번의 주사로 면역 수치를 한껏 올릴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페이스북에서 읽은 글이었는데 글을 쓴 의사분의 신념이 아주 믿을만했고 인품도 좋아 보였다. 재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표준 치료가 잘 끝났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고, 면역치료 같은 것은 효과도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손 놓고 있다가 혹시라도 재발하면 나만 고생이니까 뭐라도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싶었다. 우이동 원장님은 다른 면역 치료보다 마음을 편히 하라고 했지만 나는 또 다른 ‘더 나은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이 환자의 마음이다. 죽고 싶지 않은, 끝까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말이다.

어렵게 시간을 냈다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준비해 간 메모를 들이밀며 재발을 막을 수 있냐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웃으며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했고 식이요법부터 주사 요법까지 긴 설명을 했다. 과당, 액상 과당, 정제 탄수화물을 먹지 말라는 얘기와 함께 배에 주사를 놓았다. 싸이모신 알파라는 면역 주사였는데 주기적으로 맞으면 면역 수치가 올라간다고 했다. NK세포 활성도를 체크하고 중금속 수치도 확인해야 한다며 채혈했다. 마지막으로 고용량 비타민C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주사를 한 시간가량 맞았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했고 병원 분위기는 무척 밝았으며 많은 환자로 붐볐다. 주사를 다 맞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사러 갔는데 약사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 대체 어디가 아프신데 이런 약을 드세요?”
“암 진단을 받았는데요. 왜요?”
“아… 아닙니다.”
잠시 후 약사는 커다란 봉투에 넘치도록 많은 약을 들고 나타났다. 보험이 안 되는 약도 있어서 값도 상당히 비쌌다. 나는 표준치로도 끝났으니 비타민류 같은 보조 약품을 줄 거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침, 점심, 저녁에 먹을 약과 밤에 먹을 진정제까지 하루 4회치, 2주 분량의 약을 받아왔다. 보약 먹듯이 시간 맞춰 약을 챙겨 먹고 2주 후에 또 병원에 갔고, 각종 검사 수치는 걱정할 수준 아니라는 말과 함께 또 여러 주사를 맞고 엄청난 양의 약을 받아왔는데 여전히 약사는 심상찮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세 번째로 병원을 다녀온 후, 약을 먹다가 멈칫했다. 그때야 이 약들이 무슨 약들인지 궁금해졌다. 대장암 수술을 한 사람이 무슨 약인지도 모르면서 약을 먹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벌써 20일 치 가까이 먹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니 나는 정말 답답한 사람이다. 집 앞 약국에 가서 어떤 약인지 알려 달라고 했고, 약을 살펴보던 약사는 어리둥절하며 어디가 아프길래 이 약들을 한꺼번에 먹느냐며, 당뇨 치료제도 있고 진정제도 있고 아무튼 함께 쓸 일이 별로 없는 약들이라고 말하며 크게 중독될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복용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했다. 그날로 약을 다 폐기 처분했다. 당연히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고 나의 면역병원 순례는 끝이 났다.

암 환우가 되고 나서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갔던 병원에서는 ‘통사 치료’ 또는 ‘기능 의학’에 기반한 치료를 했는데 그 영역은 현대의학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고 한다. 의사들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의 치료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결국 선택은 환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 환우들의 심정은 정말 절박하다. 사람들과 하하 웃고 있을 때조차도 ‘재발’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런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서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비싼 보조 치료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종 면역 주사나 약들, 온열 치료와 같은 보조 요법들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들도 매일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진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의사마다 생각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도 이제는 이해한다. 첫 번째 병원장은 항암 치료 후에 관해 상태라면 굳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고 마음을 순하게 하라고만 했었고 두 번째 병원장은 각종 요법과 약물까지 총동원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 보자고 했다. 둘 다 옳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렸을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두 분 모두 자신의 신념에 가득 차 있었다. 환자도 환자의 신념에 따라야 한다. 나의 신념은 수술과 항암, 표준치로는 모든 보조 치료보다 더욱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전적으로 환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암 면역 병원이 도움이 되었다는 환우 분들
1. 가족들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환우는 병원의 돌봄이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2. 암 외에도 다른 지병, 즉 당뇨나 고혈압 등이 있어서 위급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 환우 분은 의료인이 상주하는 병원에 계시는 것이 안심됩니다.
3. 채혈 할 때마다 호중구 수치가 떨어지는 분들은 암 면역 병원의 주사 요법이나 온열요법등이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4. 진단을 받고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같은 처지의 환우들을 만나 서로 대화하면서 위로 받았다는 얘기도 읽었습니다.
5. 집에서 편안히 요양할 처지가 아닌 분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돌 볼 어린 아이가 있거나 가사를 직접 하는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 하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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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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