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개발 경쟁에서 중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테슬라와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공장 실전 배치 덕분에 앞서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는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과 같은 분야에서 급격히 성장한 것처럼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해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휴머노이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 황은 이달 초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새로운 기술 포트폴리오를 발표하며 “범용 로봇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과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의 활용이 가속화돼 2030년까지 전 세계 연간 판매량이 100만대에 달하고 2060년까지 30억대가 운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일론 머스크 CEO는 올해 약 5000대의 옵티머스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아직 대중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보스턴다이내믹스나 앱트로닉과 같은 업체에 비해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테슬라가 미국 시장을 선도하더라도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조사업체인 세미애널리시스의 레이크 크누트센 애널리스트는 BYD와 같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테슬라의 성장 속도를 앞지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인 것과 같이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크누트센은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서 보여준 파괴적 영향력을 인간형 로봇 분야에서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에는 그 파급력이 단일 산업을 넘어 노동 시장 자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월 연구 노트를 통해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확립된 공급망, 현지에서의 채택 기회와 강력한 정부 지원 덕분”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2027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1380억달러 규모의 중국 국가벤처펀드는 체화된 AI(embodied AI)를 투자 우선순위로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민간 투자자들과 기업들이 관련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장려하고 있다.
BofA의 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미래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이 분야를 중요한 산업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는 “단기적으로는 3~4년 이내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 라인에 배치돼 일부 근로자를 대체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중기적으로는 이들이 서비스 산업으로 점차 확산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자동화발전협회(AAA)의 제프 번스타인 회장은 “중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이 더 많고 정부 지원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하다”며 “그래서 지금 당장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반도체, 소프트웨어와 일부 정밀 부품 기술에서 앞서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고급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정교한 로봇 손 생산에서도 미국 경쟁업체에 뒤처진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공장의 실제 작업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해서 데이터 학습에 있어서 유리한 환경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로봇 스타트업인 딥로보틱스의 청위항 영업이사는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이유는 실제 응용 사례와 결합해 실전에서 빠르게 반복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미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중국에서 ‘휴머노이드’라는 용어가 포함된 특허가 총 5688건 출원됐다. 이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이며 미국의 1483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 기업들은 우수한 규모의 경제와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에서 미국 업체들을 앞서고 있다고 크누트센은 진단했다. 또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민쉰 리 중국 자동차 및 산업 연구 책임자는 중국의 제조업 역량을 고려했을 때 현지에서 제조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로봇에 비해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제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는 중국이 부품 공급망의 약 70%를 차지하는데 더 많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투입됨에 따라 부품 비용이 매우 빠르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테슬라가 2세대 옵티머스를 약 2만달러에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면서도 이것이 대량 생산과 연구개발(R&D) 주기 단축에 성공하고 저가 중국산 부품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항저우에 본사를 둔 유니트리로보틱스는 이미 지난해 5월 소비자용 휴머노이드인 G1을 1만6000달러에 출시했다. 세미애널리시스는 G1이 "시장에 존재하는 유일한 실용적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평가하며 미국산 부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니트리는 지난 1월 춘절(중국 설) 축하 공연에 자사의 최고 성능 휴머노이드 로봇인 H1 16대를 인간 무용수들과 함께 등장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또 지난달 전자상거래 플랫폼 JD닷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두 대를 소비자들에게 한시적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샤오미와 같은 중국의 주요 기술 기업뿐만 아니라 BYD, 체리, 샤오펑과 같은 전기차 업체들도 휴머노이드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머스크는 올해 안에 수천대의 옵티머스 로봇을 테슬라 업무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BYD와 지리자동차와 같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유니트리의 로봇 일부를 이미 공장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중국이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지능형 로봇 시스템의 경제적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경고하며 이는 "미국에 실존적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크누트센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조 및 산업 기반을 신속하게 동원해야 하며 이는 국내 생산이나 동맹국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테슬라와 같은 기업들은 부품 조달과 리쇼어링 또는 프렌드쇼어링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붙였다.
최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