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미니멀하게 만드는 '싱글 인 서울'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싱글이 답이다!"
'싱글 인 서울'에서 영호(이동욱)가 저렇게 외칠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무척 컸다. 1인가구 1000만시대인 우리나라에서 싱글의 로맨스와 삶을 그린 '싱글 인 서울'은 관심을 가질 타깃층이 많은 영화다. 01학번(빠른 년생이지만)인 영호와 03학번인 현진(임수정)이 주인공이란 점도 맘에 들었다. 그들과 또래이자 역시 싱글인 필자는 이 영화가 오랜만에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뛰라는 심장은 잠잠하고, 눈만 호강하고 나왔다.
인기 논술 강사이자 파워 인플루언서인 영호는 혼자가 좋다. 하기 싫은 회식을 거절하고 나 홀로 내가 먹고 싶은 고기를 뜯는가 하면, 연인에게 주는 선물 대신 스스로에게 값비싼 선물을 한다. 한강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창과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고가의 가구를 갖춘 집에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는 삶. 다른 사람에게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감정은 그 사람과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지지만 자신에게 쏟았을 때는 쏟은 만큼 예상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왜냐, 영호의 말처럼 나한테 딱 맞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반면 일에는 프로페셔널하지만 일상은 매사 허당인 출판사 편집장 현진은 혼자가 싫다. "사실 혼자인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그린라이트'를 찾아 헤맨다. 문제는 그의 '그린라이트' 감별이 적록색약의 그것처럼 잘못된 직진과 썸을 양산한다는 것. 그러나 혼자가 싫은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종이책을 만드는 그는, '책은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사실 책 만드는 것뿐이겠나, 무인도에 살던 서목하가 아닌 이상 삶을 온전하게 100%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싱글 인 서울'은 이렇듯 혼자가 좋은 영호와 혼자가 싫은 현진이 싱글 라이프에 관한 책을 만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엄청나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또 그만큼 아는 맛이 보장된 장르이기도 하다. 연애도 싫고 결혼도 싫고 아이도 싫은 게 요즘 대한민국이라지만, '나는 솔로' '환승연애' '솔로지옥' '체인지 데이즈' '돌싱글즈' 등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진심인 나라 또한 대한민국 아닌가. 최근 극장가 또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달짝지근해: 7510'과 '30일'로 쏠쏠한 관객몰이를 보였다. 게다가 무려 이동욱과 임수정이다. 로맨스의 장인들이 주연을 맡았으니 기대가 안 가려야 안 갈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왜 안 두근거릴까. 우선 로맨스의 개연성이 약하다. 싱글 남녀 두 사람을 붙여 놓으면 무조건 연분이 난다는 건 고릿적 부장님 마인드를 의심케 한다. 아무리 빼어난 비주얼의 남녀를 일을 매개로 얽혀 놓았다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파크가 튀는 과정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걸핏하면 '그린라이트'로 착각하는 현진은 그렇다 쳐도, "지금 혼자가 아닌 사람, 모두 유죄"를 외치던 영호는 뭐란 말인가. 그래, 남녀 사이 스파크 튀는 건 한순간이니까 넘어간다 치자. 그 다음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이로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40대에 접어든 이들의 행보를 방해하는 게 첫사랑이라니. 30대 중반에 나타난 첫사랑의 거대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건축학개론'도 있지만(공교롭게도 '싱글 인 서울'을 제작한 명필름의 작품), 40대 싱글 라이프에서 이토록 첫사랑의 존재가 부각되어야 했나는 의문이다. 작가를 꿈꾸던 영호가 첫 책을 내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우겨볼 순 있겠지만, 여전히 개연성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싱글의 삶에 대한 이해와 표현도 도식적으로 보인다. 고양이를 키우고 턴테이블로 LP를 듣고 빈티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남자라니, 어딘지 싱글을 주인공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물 같다. 이제 막 독립하는 현진은 LTV, DTI, DSR 따위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남녀 사이를 가까이하는 매개로 '독립을 준비하는 여자에게 세세한 도움을 주는 남자'라는 설정을 한 것 같은데, '무심코 건네주는 남자 신발에 심쿵 하는 모먼트'는 '또 오해영'과 함께 끝난 것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
물론 '싱글 인 서울'에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지만, 이동욱과 임수정의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비주얼'이 큰 역할을 한다. 영호의 외모를 보며 봐도 봐도 안 질린다고 평한 출판사 편집팀장 윤정(이미도)의 마음이 곧 관객의 마음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뽀얀 필터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비주얼과 눈빛, 로맨스 장르에서 한 가닥 하던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밋밋한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다. 심지어 이동욱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한몫한다. 롱코트의 마력을 선보였던 '도깨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각종 코트의 향연은 물론 셔츠 재킷, 카디건 등을 모두 '착붙'으로 소화하며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제목에 서울이 들어가는 만큼, 경복궁, 남산, 한강, 광화문 등 서울 곳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인 점도 눈에 띈다. 가을과 겨울의 정취를 담뿍 담았기에 이 계절에 퍽 어울린다. 김현철의 '오랜만에'와 악뮤의 '오랜 날 오랜 밤' 등 풍경에 어울리는 OST도 괜찮은 선택이다. 타율이 아주 높은 건 아니지만 간간이 터지는 '말맛'의 대사도 재미를 더한다. 특히 싱글을 예찬하는 영호의 많은 명언(!)들이 웃겼고, '어그'를 지칭하는 말에선 살짝 뿜었다. 첫사랑 역의 이솜 외에 장현성, 김지영, 이미도, 이상이, 그리고 특별출연한 윤계상 등 배우들의 활약도 나쁘지 않다. 스크린 데뷔하는 이상이는 단연 눈에 띈다. 11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2세 관람가.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빌보드가 따로 차린 'K-팝 밥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 아이즈(ize)
- '국민엄마' 김해숙의 변신은 무죄! 극과극 캐릭터 열연 - 아이즈(ize)
- 부산 '농구남매' 한 달 원정생활에 지쳤다, 돌아온 사직에서 반등 절실 - 아이즈(ize)
- '특급 루키즈' 완벽한 엔딩, 김민별-황유민-방신실로 2023년은 더 찬란히 빛났다 - 아이즈(ize)
- 2023년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마지막 대회 '아시아선수권'이 남았다 - 아이즈(ize)
- 전편을 품에 안고 자폭하는 이상한 속편, '독전2' - 아이즈(ize)
- '황희찬은 아스널' 다른 동료도 러브콜 받는다... '울버햄튼 대위기' 주전 GK, 사우디 이적설까지 -
- '노량' 김윤석 표 이순신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 - 아이즈(ize)
- '캡틴'의 이름으로...주장은 어떤 선수가 맡고, 무슨 역할을 하는가 - 아이즈(ize)
- '하이쿠키' 남지현, 20년차에 보여준 파격변신이 주는 쾌감 - 아이즈(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