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서 레바논까지…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
이스라엘-헤즈볼라 첫 교전에 이란까지 전선에 나서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전쟁이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지나 레바논까지 번졌다. 이란도 결국 전선에 나섰다. ‘시아파 벨트’인 예멘-이라크-시리아의 무장세력도 가세할 조짐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1년 만에 ‘중동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체 어디까지 나아가려는가?
이스라엘, 헤즈볼라와 첫 근접 교전
2024년 10월1일 이스라엘 지상군이 국경을 넘어 레바논 남부로 진입했다. 이스라엘 군 당국은 “테러범과 테러 기반시설을 겨냥한 제한적 지상군 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인 10월2일 새벽 국경마을 오다이세로 진입하려던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무장 정치세력 헤즈볼라 대원 간 첫 근접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에 투입된 이스라엘군 병력은 최정예 부대로 이름난 에고즈 특공대와 골라니 여단 소속이다. 이날 오후 이스라엘 군 당국은 두 부대 소속 장병 8명이 교전 중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중상을 입고 후송된 부상자도 최소 8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헤즈볼라 쪽도 “오다이세에 침투한 이스라엘군을 격퇴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최북단 미스가브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다이세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이 잦은 곳이다. 특히 2023년 10월7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후 양쪽 간 ‘저강도 전쟁’이 지속되면서, 마을 주민은 모두 피란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전쟁 발발 이후 헤즈볼라의 기습에 대비해 레바논 국경을 넘어 비밀 군사작전을 이어왔다. 실제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지상군 작전 첫날인 10월1일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에서 한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지상군 작전 개시 이전부터 (이스라엘) 군 병력이 수십 차례 국경을 넘어가 70차례 이상 모두 1천여 곳의 헤즈볼라 은거지와 (무기 등을 숨겨둔) 터널과 벙커 등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해왔다. 헤즈볼라와 이슬람 지하드 등 테러조직원 3천여 명이 개전 직후부터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방을 공격하기 위해 국경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지상군 투입 이전에 이스라엘군이 충분한 사전 준비를 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첫 근접 교전에서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에 밀린 이유는 뭘까? 헤즈볼라의 길지 않은 역사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신의 정당’ 성장 뒤엔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아랍어로 ‘신의 정당’이란 뜻)는 1982년 6월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레바논 전역의 시아파 무장조직이 꾸린 연대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이 내세운 침공 이유가 레바논 남부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였으니, 헤즈볼라는 출발부터 팔레스타인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1985년 공식 출범한 헤즈볼라를 창설 초기부터 지원하고, 훈련시킨 것은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이다.
이후 이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헤즈볼라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정당조직과 중동 일대에서 ‘가장 잘 훈련되고 무장한’ 군사조직을 양 날개로 레바논 최대 시아파 단체로 성장했다. 연대세력인 시아파 아말운동, 기독교 자유애국운동 등과 함께 헤즈볼라는 2018년 총선에서 71석을 차지하며 레바논 의회(전체 128석) 최대 세력으로 떠오른 바 있다. 헤즈볼라의 군사조직도 보유한 무기체계와 전투 능력 면에서 레바논 정규군보다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헤즈볼라는 2011년 3월 발발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내전 초기부터 꾸준히 정부군을 지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시리아 내전의 맞상대인 알누스라전선과 이슬람국가(IS) 등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레바논 진입을 성공적으로 차단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헤즈볼라 쪽은 다양한 실전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2006년 7월에도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지만, 헤즈볼라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한 달여 만에 철수한 바 있다. 그간 헤즈볼라는 무기체계를 고도화하고, 실전 능력까지 높였다. 오다이세의 첫 교전 결과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인물이 9월27일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목숨을 잃은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사무총장) 하산 나스랄라다.
레바논 매체 알마야딘의 보도를 종합하면, 나스랄라는 1960년 8월31일 수도 베이루트 동부 외곽에 자리한 빈민가 카란티나에서 3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5년 4월 레바논 내전 발발 직후 가족의 고향인 남부 바주리야로 이주했다.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시아파 아말운동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티레의 이맘 무함마드 가라위의 추천으로 1976년 말 이라크 유학길에 오른다.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 신학교에 다니던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시아파 탄압을 피해 1978년 귀국했다. 이스라엘의 침공과 함께 일찌감치 헤즈볼라에 가담한 그는 1991년 2월 중대 기로에 선다. 당시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였던 압바스 무사위가 부인과 5살 난 아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헤즈볼라 지도부는 32살이던 나스랄라에게 사무총장직을 맡으라고 권고했다. 애초 제안을 거절했던 나스랄라는 무사위의 잔여 임기만 채우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이듬해 임기를 마친 그는 이후 압도적 지지로 연임을 거듭하며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지위를 지켜왔다. 그가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한 베이루트 주민은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이제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냐”며 울먹였다.
두 지도자의 사망, 이란의 개입
나스랄라에 앞서 이스라엘은 7월31일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수도 테헤란을 방문 중이던 하마스 정치부문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도 암살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지원해온 이른바 ‘저항의 축’의 양대 산맥이었다. 하니야에 이은 나스랄라의 죽음은 이란으로선 가만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됐음을 뜻한다. 10월1일 밤 이스라엘 영공으로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180여 기가 날아들었다. 이란 쪽은 “처음으로 초음속 미사일도 사용했고, 발사체의 90%가 목표물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쪽은 “발사체 대부분이 요격돼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하니야 암살 뒤 ‘가자지구 전쟁을 멈추기 위한 협상을 위해 대응을 자제해달라’는 (미국 등의) 요청을 받았다. 그는 내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문한 손님이었다.” 카타르를 방문한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2024년 10월2일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과 한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란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중동지역의 안보는 무슬림의 안보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이스라엘의 도발 탓에 이란은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은 유럽이나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란 쪽은 이미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10월2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전날 대규모 미사일 공격은 ‘방어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추가 보복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란은 군사적 조치를 종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쪽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0월1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공격에 대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며, 미국은 이를 위해 이스라엘과 함께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대응에 미국도 동참할 것임을 내비친 셈이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 직후 이스라엘의 ‘방어권’만 강조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약간 기조가 달라졌다. 그는 10월2일 이스라엘 쪽에서 나오는 이란 핵 시설 타격설을 의식한 듯 “보복대응도 비례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달 앞으로 대선이 다가온 미국도 ‘확전’만큼은 피하고 싶은 게다.
이스라엘 쪽은 전혀 다른 입장이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액시오스는 10월2일 복수의 이스라엘 당국자 말을 따 “표적 암살과 이란 방공망 공격 외에 가스관과 유전 같은 전략 기반시설이나 핵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시온주의 극우정당을 이끌고 집권했던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는 X에 올린 글에서 “이란의 핵무기 프로그램과 핵심 에너지 시설을 타격해 ‘테러 정권'을 치명적으로 마비시켜야 한다. 우리에겐 정당성이 있고, 이를 수행할 수단도 있다. 이제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마비됐고, 이란은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오늘도 반복되는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10월2일 성명을 내어 “이란의 사악한 공격을 단호하게 비난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스라엘 땅에 발을 디딜 자격이 없다”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전날 구테흐스 총장이 이란에 대한 비난 없이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한 것에 대한 분풀이다. 구테흐스 총장은 10월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참석해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받는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폭력과 죽음의 악순환은 오늘도 이어진다. 레바논 보건당국은 10월3일 “지난 24시간 동안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46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선 이스라엘군이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공세를 지속했다. 10월2일 칸유니스에서만 32명을 포함해 가자지구 전역에서 모두 51명이 목숨을 잃었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2023년 10월7일 개전 이후 전쟁 362일째를 맞은 2024년 10월2일까지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4만1689명이 숨지고, 9만662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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