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리 듣고도 차 안빼면 1%

이 사진을 보라. 몇몇 커뮤니티에 ‘장애인주차구역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인데, 좀 신기하다. 주차면 바로 앞에 녹색등의 기계가 설치돼 있다. 게시글 아래에는 ‘레이저 나오는 거 아니냐’ ‘저기 주차하면 크립톤 행성으로 순간이동 되는 거냐’ 같은 재미있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장애인주차구역 앞에 설치된 기계의 정체를 알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이 기계가 설치돼있다는 서울 양천구청의 청사 주차장을 직접 가서 취재했다.

사진 속 이 기계는 양천구청이 도입한 ‘스마트 지킴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경고 장치인데, 비장애인 운전자가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정차를 시도하면 이걸 감지해서 경고를 하고, 회차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우선 차량이 주차면에 진입하면 기계가 센서로 차량번호를 인식한 뒤에,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이용해 장애인 소유 차량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비장애인이란 게 확인되면 빨간 불빛을 반짝여서 경고를 한다.

고작 이런 정도로 얌체족들이 차를 뺄까. 의심스러워서 스마트 지킴이가 설치된 양천구청 주차장에 직접 가서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험을 해봤다. 우선 스마트 지킴이가 설치된 장애인주차구역을 찾아서 주차면에 조심스럽게 차를 진입시켰다.

경고 멘트는 적발 후 한번, 1분 후와 4분 후에 다시 한번, 총 세 번에 걸쳐 세 차례씩 반복됐는데, 생각보다 소리 자체가 크지 않았는데도, 주변 시선을 집중되는 효과가 확실했다.

영상을 찍으려고 그 상태로 몇 분간 대기했는데, 주변에서 힐끔대서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 장애인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얌체가 있어요’ 누가 옆에서 이렇게 외치는 기분.

차를 살펴보는 척, 버티다가 5분을 넘기면 10만원이 과태료로 자동부과된다고 해서, 직전에 차를 옮겼는데, 웬만큼 뻔뻔하지 않고서는 차를 뺄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했다.

양천구청에 물어보니 실제 이 작은 기계의 효과는 굉장했다. 2024년 장애인주차구역에 들어온 비장애인 차량 1만3149대 가운데 무려 99.2%인 1만3047대가 스마트 지킴이의 경고음을 듣고 차를 뺐다고 한다.

[양천구청 관계자]

"아무래도 이게 경고음이 나가니까, 불이 번쩍번쩍 하니까 모르고 들어갔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회차를 하는 거죠. 들어가셨다가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으신데, 엄연하게 불법이니까."

서울에서 이 기계를 처음 도입한 건 양천구청인데, 2020년 처음 설치해서 현재는 관내 22개 주차장 100개 장애인주차면에 기기를 운영하고 있다. 워낙 성과가 좋아서 이후 관악구, 강남구에서도 같은 기기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런 기기가 확산한다는 건 장애인주차구역을 침범하는 비장애인이 그만큼 많다는 뜻. 2024년 1~8월 전국에서 주차구역 침범 등 적발 건수는 총 31만1083건, 과태료는 362억원쯤 된다고 한다

이런 금융치료가 뒤따르는데도 왜 수십만명의 사람들은 장애인주차구역에 차를 대는 걸까.

[복지부 관계자]

"잠시 정차하시는 분들, 모르고 하시는 분들, 특히나 보행상 장애인이 탑승해야만 비장애인이 차량을 운전했을 때 그곳에 주차할 수가 있어요. 습관적으로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비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시잖아요.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실수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솔직히 헷갈리는 대목이 없지는 않다. 장애인 차량용 표지는 ①노란색 ②흰색 ③녹색의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표지가 있다고 모든 경우에 장애인주차구역에 차를 댈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먼저 노란색 이 표지(①)는 보행장애가 있는 중증 장애인 본인에게, 흰색 표지(②)는 중증 보행장애가 있는 장애인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는 비장애인 가족에게, 녹색의 네모난 표지(③)는 경증 장애인에게 제공되는데, ①번 표지를 받은 장애인이 직접 차량을 운전하거나, 혹은 ②번 표지를 소지한 비장애인이 장애인 가족을 태운 경우에만 장애인주차구역 주차가 가능하다. ③번 소지자는 장애인주차구역 주차가 불법이다.

일부 운전자는 인터넷에서 표지 이미지를 다운받아 차에 부착하는 꼼수를 쓰거나 지인 명의 표지를 빌려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 지킴이는 표지를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차량번호를 인식해 과태료를 매기는 방식이어서 이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이제 스마트 지킴이 덕에 얌체족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안타깝게도 양천구 사례를 보면 줄일 수는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을 거 같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애인주차구역에 잘못 들어온 비장애인 차량 99.2%는 경고를 듣고 차를 뺐는데 그 와중에도 차를 빼지 않고 버틴 0.8%(100여대)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런 얼굴 두꺼운 사람들에게는 과태료 따박따박 매겨서 금융치료라도 제대로 해주는 게 최선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