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업의 절반 가량이 정보기술(IT) 예산의 상당량을 인공지능(AI)에 투자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일부 한국 기업들은 AI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는 글로벌 IT 기업 시스코가 최근 시행한 '2024 AI 준비도 지수(Cisco 2024 AI Readiness Index)' 설문조사 결과다. 회사는 아시아태평양(APJC) 지역 14개 국가의 직원 수 500명 이상 기업의 비즈니스 리더 3660명을 대상으로 이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에서는 200여개 기업 리더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리더들은 조직 내 AI 통합 및 배포를 담당하고 있다. AI 준비 지수는 △전략 △인프라 △데이터 △거버넌스 △인재 △문화 등 6가지 요소에 따라 측정됐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국 기업 중 43%는 IT 예산의 10~30%를 AI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AI 투자는 △사이버 보안(23%) △데이터 관리(22%) △데이터 분석(20%) 등의 영역에 집중됐다. 하지만 AI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은 업무 프로세스 또는 서비스 운영을 강화·지원·자동화하는 데 있어 얻은 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국 기업들은 투자를 이어갔지만 AI 도입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인프라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한국 기업 중 14%만이 현재와 미래의 AI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모델의 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서비스 전 영역에 걸친 암호화 △보안 감사 △지속적인 모니터링 △즉각적인 위협 대응 등을 하고 있다고 답한 비중은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한국 기업들은 AI에 대한 투자에 대해 아직 만족하지 못했고 준비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투자를 이어갈 것이란 뜻을 보인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 기업 리더 중 22%는 향후 4~5년 내 IT 예산의 40% 이상을 AI에 투자할 계획이란 뜻을 나타냈다. 당장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AI 경쟁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스코의 2024 AI 준비도 지수에 따르면 한국 기업 중 AI 비즈니스를 위한 준비가 갖춰졌다고 분석된 선두주자 그룹에 속한 곳의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지난해(5%)에 비해 2%p 줄었다. 아시아태평양(APJC) 지역 기업 중 선두주자 그룹에 속한 기업의 비율은 15%다. AI 비즈니스를 위해 준비가 잘 된 것으로 분석된 기업의 비중이 한국은 APJC 지역에 비해 크게 뒤진 셈이다.
AI 준비지수는 전략·인프라·데이터·거버넌스·인재·문화 등 6가지 영역별 점수에 따라 △86점 이상:선두주자(Pacesetter, 완전한 준비) △61-85점:추격자(Chaser, 보통 수준의 준비) △31-60점:팔로워(Follower, 부분적 준비) △30점 이하:후발주자(Lagger, 미준비) 등으로 구분된다.
시스코는 기업들이 인프라와 인재 확보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데이브 웨스트(Dave West) 시스코 APJC 사장은 12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례 콘퍼런스 '시스코 라이브 2024 멜버른'에서 "기업이 AI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증가하는 AI 수요로 인해 진화하는 전력 및 네트워크 대기 시간에 대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최신 디지털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이는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가시성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AI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AI를 주도할 고급 인재들이 부족한 가운데 그들마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게 빼앗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스코는 기업들이 △인프라 △데이터 △거버넌스 등의 분야에서 숙련된 전문가를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누팜 트레한(Anupam Trehan) 시스코 APJC 인사 및 커뮤니티 부문 부사장은"AI 도입 경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인재는 기업의 핵심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라며 "정부·민간기업·교육 기관 등이 협력해 지역 인재를 개발하고 AI 전체 생태계가 이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멜버른(호주)=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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