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 열전]③ 세계 패러글라이더 월드컵 1위 만든 ‘진글라이더’…매출도 5년 새 2배 ‘껑충’

채민석 기자 2023. 3.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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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점유율 3위 안에 드는 韓 패러글라이더 제조업체 ‘진글라이더’
국내보다 해외서 유명....월드컵 우승자가 사용
선수 생활하다 창업... “패러글라이더 불모지의 기적”

마산에서 정미소를 설립한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점원으로 일했던 쌀가게를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시판 중인 껌을 모조리 씹어보고 개발해 일본 시장을 공략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이들은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 창업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에도 꿋꿋하게 사업의 본질을 파고들어 당당히 한국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소개한다.[편집자주]

2021년 9월, 튀르키예 악사라이에서 열린 세계 패러글라이더 월드컵에서 마케도니아의 마틴 조버노브스키 선수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우승했다. 패러글라이딩은 기체(機體, 비행체의 몸체)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만큼 이 선수가 사용한 패러글라이더의 브랜드와 제작업체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 기체는 ‘패러글라이더 변방’인 한국의 중소기업 ㈜진글라이더(이하 진글라이더)가 제작했다.

‘패러글라이더 불모지의 기적’. 세계 각지의 패러글라이더 팀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진글라이더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98년에 설립된 진글라이더는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레저 스포츠인 패러글라이딩 관련 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다. 해외에서 패러글라이딩은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릴 정도로 인기 스포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이다.

◇ 패러글라이딩 선수 출신 송진석 대표, IMF 외환위기 딛고 창업

진글라이더를 창립한 송진석(66) 대표는 패러글라이딩 선수 출신이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1991년 세계 패러글라이딩 선수권 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하고 1993~1997년에는 세계 랭킹 20위 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선수 말년에 국내 패러글라이더 제조업체에서 일을 했는데 그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면서 그의 인생이 일변(一變)했다.

송진석(66) 진글라이더 대표. /채민석 기자

당시 알고 지내던 일본 바이어가 ‘장비 좀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돈도 기계도 없이 남의 공장을 빌려 만든 장비 3개가 진글라이더의 시작이었다. 그해 세계선수권에서 로고도 없는 ‘부메랑’을 탄 일본 선수 3명이 1, 2, 3위를 싹쓸이하면서 업계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패러글라이더는 크게 가장 기본이 되는 본체인 ‘캐노피’와 캐노피에 공기를 채우는 ‘리딩에지’, 조종사가 매달릴 수 있는 ‘매달림 줄’, 캐노피 측면에 붙어 안정화에 사용되는 ‘스태빌라이저’ 등으로 구성된다. 이 구성 요소들의 위치나 모양, 소재 등에 따라 패러글라이더의 성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한 업체가 기술력에서 치고 나가거나 특허를 등록하면 향후 높은 점유율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설립 초기 3대의 패러글라이더를 겨우 만들었던 진글라이더는 지난 2017년과 2018년, 2021년에 잇따라 세계 패러글라이더 월드컵에서 우승자를 배출하는 등 현재는 세계 시장점유율 3위 안에 든다. 회사 매출은 지난 2018년 85억원에서 2021년 146억원으로 약 70%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7억7000만원에서 29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 중 직접 수출액이 80%(1000만 달러, 약 138억원)에 달한다.

지난 16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있는 진글라이더 본사에서 송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그래픽=손민균

◇ “자본·기계 없이 남의 공장서 만든 패러글라이더 3개, 세계대회 1~3위 휩쓸어”

-행글라이더·패러글라이더 국가대표 출신이다. 처음 글라이더를 접한 것은 언제인가.

“대학생 시절에는 평범한 조선공학도였다. 1997년쯤 학교 동기를 따라 우연히 경북 문경에서 행글라이더를 처음 타면서 포근한 느낌과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됐다. 1983년도에 행글라이더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선수권, 월드컵 등에 출전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는 패러글라이더도 병행하기 시작했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패러글라이더 세계 랭킹 20위 안에 오르고, 패러글라이딩 월드컵에서 디자이너상 1위를 차지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진글라이더를 창업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교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설계는 할 줄 알았다. 선수 생활 말년에 국내 유일의 패러글라이더 제조 업체에서 이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1997년 12월, IMF의 여파로 회사가 문을 닫았다. 당시 친분이 있던 일본 바이어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일본 선수들이 사용할 패러글라이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자본도, 공장도, 기계도 없어 부탁을 거절하려 했지만, 1998년 8월 용인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최형로 주식회사 톰보이(당시 성도어패럴) 회장이 공장의 일부 공간을 내어줘 첫 모델 ‘부메랑’ 3대를 제작할 수 있었다.”

-매출의 80%가 수출에서 발생한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첫 글라이더를 선보인 그해 세계선수권에서 로고도 없는 ‘부메랑’을 탄 일본 선수 3명이 1, 2, 3위를 싹쓸이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후 월드 챔피언이었던 스위스의 한스 볼링거 선수가 진글라이더에 패러글라이더 제작을 의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세계 각국의 패러글라이더 팀과 전문 파일럿, 동호인을 막론하고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패러글라이더 제조는 어디서 하고 있나.

“첫 제조 공장이었던 용인 공장은 많은 물량의 패러글라이더를 제작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2001년 중국 청도(칭다오)에 제조공장을 이전했다. 2007년에는 개성공단에 입주하며 물량을 집중시키고, 청도 공장의 규모를 줄였지만,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다량의 물량 손실이 발생해 경쟁 업체에 점유율을 많이 빼앗겼다. 이후 청도 공장의 규모를 다시 늘리고, 중국 광주(광저우) 공장에 OEM을 맡기며 규모를 다시 키웠다.”

진글라이더 제품 '에보라' 기체의 비행 장면. /진글라이더 제공

-글라이더 제작 철학은 무엇인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있는 만큼, 하늘에서 땅보다 편한 느낌을 받도록 글라이더를 만드는 것이 제작 철학이다. 현재 초보자형부터 경기용 등급까지 다양한 기체를 만들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사용이 쉽고 최대치의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실제 비행이 아닌 시뮬레이션으로는 난기류 영향까지 계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 각기 다른 기상에서 비행을 하며 튜닝하고 재설계한다. 막말로 땅을 밟고 있는 시간보다 하늘에 떠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경쟁사와 진글라이더의 차별점은.

“진글라이더는 비행자 안전을 위한 보조낙하산, 2인용 패러글라이더, 자가적용 변형돌기를 구비한 패러글라이더 캐노피(낙하산 등에 이용되는 덮개) 등 다양한 원천기술 특허증(국내 12건, 해외 2건)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대한항공 무인기 사업 협력업체로 지정됐다. 지난해에 개발해 해외 특허 출원에 성공한 ‘웨일 리딩 엣지’는 혹등고래의 가슴·꼬리 지느러미에서 영감을 받은 뾰족한 모양의 리딩 에지를 장착해 패러글라이더에 민첩한 반응 속도를 입힌 기술이다.”

-회사 운영뿐만 아니라 후진 양성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대한민국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선발전인 ‘코리안 리그’를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문경에 유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선수가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고 있다. 진글라이더의 제품을 탄 한국 선수가 우승을 해 시상대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함께 제창하고 싶다.”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

“15억원 이상을 투자해 개발한 ‘혹등고래’ 신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경쟁사를 제치고 당분간 세계 1위 자리를 독보적으로 지킬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해외에 공장을 새로 만들어 점유율도 늘리고 매출액 3000만달러(385억원)를 달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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