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선트 “성장 3%면 부채 해결”…성장에만 의존하기엔 구조적 장벽 너무 많아

이규화 2026. 9. 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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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국채금리까지 급등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베선트 장관이 강력한 경제성장을 미국의 심각한 부채 문제에서 벗어날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고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실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펜 와튼 예산 모델'(PWBM)을 적용하면 향후 10년간 미국 경제가 연평균 3.5~4% 성장할 경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안정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선트 장관이 바라보는 '3% 성장'과 미국 경제가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성장률'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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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트 “3% 성장 달성하면 부채 문제 해결”
美 20년간 3% 넘긴 해 고작 5번…회의적
생산가능인구 증가세 정체…성장엔진 약화
AI 생산성 혁명도 부채비율 상승 못 막을 것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의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국채금리까지 급등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긴축’보다 ‘성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세수가 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그 기준을 연평균 3% 성장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실제로 3%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구구조 변화와 복지지출 증가라는 구조적 제약을 고려하면 ‘성장만으로 부채를 해결한다’는 구상 자체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베선트 장관이 강력한 경제성장을 미국의 심각한 부채 문제에서 벗어날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고성장을 달성하고 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8일 텍사스주 댈러스의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SMU) 연설에서 “3% 성장을 달성하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 경제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이란 분쟁 사태를 지나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기초 경제는 매우 강력하고 다시 성장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의 주장이 경제학적으로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과 가계의 소득 및 이익이 늘어나 세수가 증가하고, GDP가 커지면서 기존 국가부채의 상대적인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실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펜 와튼 예산 모델’(PWBM)을 적용하면 향후 10년간 미국 경제가 연평균 3.5~4% 성장할 경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안정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그 성장률을 현실에서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미국 경제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성장률 둔화를 경험해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 경제의 연율 환산 평균 성장률은 1.9% 수준이다. 연간 성장률이 3%를 넘어선 마지막 해는 2023년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성장률이 3%를 웃돈 것도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장기간 3%대 성장을 이어간 적은 없다. 베선트 장관이 바라보는 ‘3% 성장’과 미국 경제가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성장률’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향후 10년간 미국의 2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전체적으로 3%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연평균 증가율로 환산하면 약 0.3%다.

1990년대 생산가능인구가 연평균 1.1%씩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크게 떨어진다.

이는 노동자 숫자가 줄어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력 증가가 둔화하면 경제가 특별한 생산성 혁신 없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 및 의료 지출 확대까지 겹치면서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전직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투자회사 파이퍼 샌들러에서 일하는 돈 슈나이더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려면 지출을 줄이는 입법 조치와 높은 경제성장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현재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선트 장관의 성장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변수로는 AI가 꼽힌다. 인공지능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면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면서 미국의 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다.

그러나 AI 역시 재정 문제의 만능열쇠가 되기는 어렵다. 예일대 예산연구소가 AI의 빠른 확산을 전제로 실시한 시뮬레이션에서는 경제성장률이 2%를 웃돌고 재정적자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2035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계속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연구를 담당한 버지니아대 바실 할퍼린 교수는 생산성이 높아지면 투자 기대수익률이 상승하고 차입자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할 경우에는 정부 지출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사회안전망을 통한 정부 지원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CBO 소장을 지낸 하버드대 더글러스 엘멘도르프 교수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를수록 정부 개입이 필요한 경제적·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정 문제의 핵심은 결국 성장률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스탠퍼드대 조슈아 라우 금융학 교수는 향후 10년뿐 아니라 30년을 내다봐도 미국 재정적자를 실제로 주도하는 핵심 예산 항목은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라고 지적했다.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구조개혁 없이는 성장만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은 감세와 무역정책,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WSJ이 인용한 많은 경제학자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를 둘러싼 무역분쟁과 이란과의 갈등, 정책 결정의 예측 불가능성이 경제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미국 재정정책의 딜레마는 명확하다.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높은 성장률이 필요하지만, 높은 성장률만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경제가 1990년대와 같은 인구·생산성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다. 생산가능인구 증가세는 크게 둔화했고, 고령화로 복지지출 압력은 높아지고 있다. AI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금리 상승이나 노동시장 충격이라는 새로운 재정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베선트 장관의 ‘3% 성장론’은 따라서 부채 문제의 해법이라기보다 해법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낙관적인 전제에 가깝다.

미국이 진정으로 부채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급증하는 사회보장·의료 지출을 어떻게 손볼 것인지, 그리고 재정적자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뒤따라야 한다. 성장 하나에 미국 재정의 미래를 걸기에는 넘어야 할 구조적 장벽이 너무 많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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