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5천억 매출, 재계 28위 기업의 몰락...이래서 망해버렸죠

거평그룹은 1979년 나승렬 회장이 설립한 금성주택을 시작으로 한국 재계를 놀라게 한 기업이다. 불과 18년 만에 재계 28위까지 오른 거평그룹의 성장과 몰락은 한국 경제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

평범한 시작에서 대기업으로의 도약

나승렬 회장은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력으로 1967년 서울에 상경해 낮에는 공사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경리학원을 다녔다. 1970년대 아이스크림 업체인 삼강산업에 취업한 그는 1979년 퇴사 후 금성주택을 설립했다.

1980년대 부동산 시장 호황기를 맞아 금성주택은 큰 수익을 올렸다. 특히 1988년 서울 서초구 센츄리 오피스텔 분양이 성공을 거두면서 거평건설은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공격적인 M&A 전략으로 급성장

거평그룹의 성장 전략은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방식의 공격적인 M&A였다. 나승렬 회장은 우량기업을 인수한 후, 그 기업의 자산을 활용해 또 다른 우량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1991년 거평식품과 대동화학을 인수하면서 그룹 확장에 나선 거평은 이후 5년 동안 지속적인 기업 인수·합병으로 계열사를 22개로 늘렸다. 주요 인수 기업으로는 대한중석, 한국시그네틱스,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 강남상호신용금고, 새한종합금융, 태평양패션 등이 있다.

거평프레야: 패션 타운의 신화

1992년 거평그룹은 동대문 인근 덕수중학교와 덕수고등학교 부지를 인수해 국내 최대 패션타운인 거평프레야(현 두타)를 개장했다. 이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거평그룹의 이미지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IMF 외환위기와 거평그룹의 몰락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거평그룹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견고한 재무구조를 갖추지 못한 거평그룹은 고금리와 금융기관의 신규대출 축소, 자금회수 등으로 큰 압박을 받게 되었다.

1996년 1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이익은 200억 원에 그쳤고, 1997년에는 매출 2조 원에 이익은 200억 원 이하로 떨어졌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함께 거평그룹의 주력 사업인 건설 부문도 큰 타격을 입었다.

자발적 구조조정과 그룹 해체

1998년 5월 12일, 거평그룹은 기자회견을 열고 산하 19개 계열사 중 4개사만 남기고 나머지 15개 계열사를 부도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그룹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거평그룹 몰락이 남긴 교훈

거평그룹의 몰락은 한국 경제에 여러 교훈을 남겼다. 첫째, 무리한 사업 확장의 위험성이다. 거평그룹은 내실을 다질 시간도 없이 확장에만 몰두하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다.

둘째, 부동산 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취약성이다. 1997년 부동산 시장 침체는 거평그룹의 주 수입원을 차단했고, 이는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셋째, 재무구조의 중요성이다. 거평그룹의 높은 부채비율은 외환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한국 경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평그룹

거평그룹의 흥망성쇠는 한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과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나승렬 회장의 대담한 경영 전략은 한때 찬사를 받았지만, 결국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그룹의 몰락을 초래했다.

거평그룹의 사례는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내실 있는 경영과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현재 한국 기업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으로 남아있다.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