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의 부활, ‘건그레이브 고어’…더 다듬고 돌아왔음 얼마나 좋았을까

플레이스테이션 2 시절을 살아 온 유저라면 <건그레이브>라는 이름을 한 번 정도는 들어 본 적이있을 것이다. 2002년 첫 작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시리즈의 미래는 밝았다. 캐릭터 디자인에 만화 '트라이건'과 모형 회사 ‘카이요도’와의 협업 등으로 인기를 모은 ‘나이토 야스히로’가 참여했고, ‘오 나의 여신님’ 등으로 상한가를 달리던 만화가 ‘후지시마 코우스케’가 권총과 메카닉 디자인을 맡아 화제가 됐었기 때문.

게임 역시 특유의 호쾌한 손맛으로 인기를 누렸다. 생각 없이 버튼만 연타해도 시원하게 올라가는 비트 카운트(콤보), 그리고 화려한 연출을 자랑하는 필살기 '데몰리션 샷', 그리고 스테이지 클리어 때마다 나오는 미려한 CG 스토리 영상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가 너무 심플했던 점이 양날의 검이 된 걸까. 후속작은 2004년 발매된 <건그레이브 O.D.> 하나 뿐이었다. 그나마 2006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 당시 흔치 않은 느와르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이 관심조차 지금은 기억 저편 어딘가로 넘어갔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잊혀지나 싶었던 ‘건그레이브’ 시리즈는, 대한민국 개발사 ‘이기몹’이 판권자인 ‘레드 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을 알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8년 플레이스테이션 4로 발매된 <건그레이브VR>에 이어 2022년 11월 22일 정통 후속작인 <건그레이브 고어>를 발매한 것이다. 시리즈 첫 작품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 게임은 시리즈의 명성을 되살릴 수 있을까.

거칠지만, 시리즈 특색 그대로 계승한 첫인상

‘건그레이브’라는 IP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큰 총 든 멋있는 캐릭터가 말 한 마디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로 요약된다. <건그레이브 고어>도 게임을 틀자마자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해 버린다. 내 캐릭터는 크고, 총도 크다. 총은 한 번 쏘면 4발을 알아서 발사하고, 몰려오는 적들은 이 총알에 오체분시되며 나동그라진다. 필드에 배치된 오브젝트는 대부분 파괴되고, 비트 카운트까지 올려주기 때문에 이동하면서도 파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쌈마이’ 감성도 그때 그대로

전작의 계승도 충실하다 못해 집요한 부분이 있다. 화려한 동작을 이어가며 전방으로 총을 난사하는 ‘버스트 모드’의 동작은 아예 전작 그대로고, ‘스톰 배러지’와 같은 새로 추가된 기술도 원작의 과장된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이다. 꽤나 과장된 동작이기 때문에 최근의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도, 이를 우직하게 이어 간 것이다.

스토리 면에서는 1편과 2편 <건그레이브 O.D.>에서의 설정을 정리해 나가는 방향성이 보인다. 건그레이브 1편은 마피아와 느와르 스타일을 더한 복수극 일변도의 전개였지만, 2편은 마약 ‘시드’의 도입과 다수의 지역 추가 등 세계관 확장이 이어지며 모험 활극 같은 느낌이 강해졌다.

<건그레이브 고어>에서는 동일한 캐릭터와 세계관에서 두 갈래로 갈려나간 1편과 애니메이션의 설정을 통합하고, 여기에 2편에서 이어지는 스토리 전개를 통해 관련 미디어의 통합을 노리는 시도가 엿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죽은 '쿠가시라 분지’와 같은 캐릭터가 왜 몇 차례나 다시 등장하는가 같은 부분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그래도 추억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이 등장이 오히려 팬 서비스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단조롭다고 뭔가 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쾌하게 첫 발을 뗀 <건그레이브 고어>의 게임플레이는, 머지 않아 큰 의문에 직면한다.  바로 ‘그냥 시원하게 쓸어버리고 싶은데, 왜 이렇게 전투가 불합리하지?’였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시리즈 내내 이어진 게임 흐름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건그레이브’ 시리즈의 전투는 일견 보기에는 3인칭 건슈팅 액션 같지만,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 속칭 ‘무쌍’이라 부르는 장르 플레이와 유사하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졸개에게 두 자루의 권총을 난사한다. 무한탄창인데다가 ‘버스트 모드’ 같은 다단히트 기술이 구비돼 있기 때문에, 제자리에 서서 버튼만 눌러도 빠르게 히트 수를 올릴 수 있다. 이렇게 근처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 ‘데몰리션 게이지’가 모인다. 이 게이지로는 일종의 필살기인 ‘데몰리션 샷’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모인 적을 일격에 퇴치하며 체력과 실드를 회복한다.

바로 이런 난사가 시리즈의 참맛이다

이렇듯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맛이 어필해서일까. ‘건그레이브’ 시리즈는 완성도에는 물음표가 달렸음에도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른바 핵심 경험은 확실한 게임인데, 이번 <건그레이브 고어>에서는 새롭게 추가된 부분들이 이 경험을 가리는 면이 있다.

<건그레이브 고어>의 개발진은 그간 ‘서서 난사’로만 귀결되던 시리즈의 리듬에 변주를 주고 싶어서인지, 게임에 중간중간 움직이는 플랫폼 위에서 싸우거나 점프로 넘어가는 퍼즐 구간을 추가했다. 열차 위를 달리며 장애물을 피해 목표 지점까지 가거나, 공중을 움직이는 컨테이너를 타고 여러 개의 박스 사이를 점프로 옮겨가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런 구간에는 플레이어 캐릭터를 밀어내는 류의 적이나 트랩이 많고, 작정하고 섞어서 늘어 놓은 구간마저 있다. 열차 위를 뛰어가며 싸우는 스테이지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도달해야 하기에, 무시하고 달려가다가 눈먼 폭탄의 충격파에 밀려나 낙사하는 일도 잦다. 특히 폭탄은 작동하기 위해 떠오르기 전까진 록온도 안 되기 떄문에, 미리 조준해 제거하는 것조차 수월치 않다.

으아아…으아아…으아아

적의 공격 양상도 다양해졌다. 전작에서도 있었던 방어를 하는 적에 더해, 어떤 적은 지속 피해를 주는 화염 지역을 바닥에 깐다. 어떤 적은 연막을 깔아 수동으로 조준하도록 강요한다. 뒤로 가면 한 자리에 머물지 말고 계속 회피를 하도록 유도하는 저격병이 나오는가 하면, 내 움직임을 끝까지 추적해 넘어뜨리는 유도 로켓까지 등장한다.

일견 보기엔 다양해진 만큼 공략의 재미가 추가됐을 것 같지만, 꼭 그렇게 볼 부분만은 아니다. 이 게임은 원하는 적만을 집중해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준을 도와주는 기능인 ‘자동 록온’이다.

한 상황을 예시로 들어 보자. 화염병을 든 적들이 두세 명 동시에 등장하고, 그 뒤에는 플레이어 캐릭터를 넘어뜨리는 로켓을 쏘는 병사가 배치된다. 앞에는 수많은 졸개들이 등장해 이 쪽으로 뛰어 온다.

자동 록온은 중앙 크로스헤어에 가장 가까운 적을 대상으로 잡아 주는데, 보통은 앞으로 달려오는 졸개들을 먼저 공격하게 된다. 록온을 수동으로 걸어 목표물을 임의 지정할 수 있지만, <다크 소울> 처럼 좌우로 적을 한 마리씩 옮겨가며 원하는 적을 고르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조준은 그만큼 지연되고 적은 쌓여만 간다.

사방에서 공격해 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쌓인 적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팔리다 보면, 시야 밖에서 등장한 적은 존재를 아예 모를 때마저 생긴다. 다른 액션 게임에서는 위험한 적은 우선권을 정해 무조건 해당 적부터 자동 록온되도록 하거나, 아예 크기나 효과음을 차별화해 플레이어의 주의를 끌도록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격 역시 미사일을 발사하는 소리나 조준하는 레이저를 보고 직접 판단해야 하며, 상황을 추가 안내하는 UX나 시스템은 없다. 비슷하게 뒤가 보이지 않는 숄더뷰 시점을 채택한 <갓 오브 워> 같은 게임과는 다른 접근이다. ‘갓 오브 워’에는 시야 밖에서 오는 공격을 캐릭터 주변에 화살표로 띄워 주고 ‘아트레우스’의 경고 대사로 공격의 위치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도록 안내하지만, <건그레이브 고어>에는 비슷한 안내가 없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주인공이 무한탄창 쌍권총에서 뿜는 화력으로 적을 빠르게 처치해 나간다 해도, 화염병을 던지는 적만 골라 처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화염병이 땅에 떨어지고, 나는 이 화염에 지속 피해를 받게 되고, 적의 공격을 임시로 막아주는 ‘실드’의 재생도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적의 공격은 계속된다. 아차 해서 날아온 미사일을 쳐내지 못한다면 넘어진다. 적의 공격은 계속된다…

여기에 판정이 우수한 적까지 있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유도로켓 사수와 저격수가 대표적이다.

무적의 사인병사 : 사…사렬주세요

이 적들은 한 마리만 방치해도 빈사 상태에 몰릴 정도로 전투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유도로켓은 회피 1~2회 정도로는 회피가 어려울 정도의 유도성능을 보여주며, 맞으면 넘어지기까지 한다. 저격수는 한 방으로 실드 절반 가까이를 깎는데다, 레이저처럼 지나간 궤적 전체에 판정이 있어 반드시 조준 궤도를 완전히 피하는 방향으로 회피해야 한다.

이런 상대가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 동시에 등장하게 되면, 아무리 잘 하고 있어도 순식간에 흐름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사실상 데몰리션 샷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셈이다.이 데몰리션 샷조차 전작들과 달리 실드는 회복하지 않도록 바뀌었다. 통쾌한 한방이자 상황을 완전히 뒤집는 위기 탈출기가 슈팅 게임의 폭탄 정도로 위상이 추락한 것이다.

개발진은 이렇게 회복 수단이 줄어들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새 시스템으로 해결하려 했다. 예를 들어 적을 끌어 와 방패로 쓰거나, 빈사상태에 들어간 적을 처형해 실드를 회복하는 '처형'을 유도하는 식이다.

하지만 처형 역시 자동 록온처럼 ‘정확하게 원하는 상대를 지정할 수 없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이 게임에서는 적을 처형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는 대상을 끌어당겨 인간방패로 삼거나, 적을 끌고 와서 처형해야 하는데 반대로 끌어올 수 없는 적을 지정하며 적 무리 한 가운데에 놓여 버리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 실수로 적을 끌고 왔을 때는 그나마 잠시 방패 역할을 해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기 연사 속도가 절반이 되기 때문에 적이 몰렸을 땐 오히려 위험해지기도 한다.

처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에도 아쉬운 면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적에게 피해를 어느 정도 줬을 때 처형이 뜨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선 비슷하게 적을 공격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그냥 죽어 버리고 어떤 때는 처형 가능 마커가 뜨니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비슷하게 처형을 통해 자원을 회복하는 <둠 이터널>에서는 ‘어떤 적은 어떤 무기로 몇 발을 사격하면 확실하게 처형 가능 상태가 된다’라는 규칙이 있어, 이 규칙만 따르면 처형으로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한 것과 차이가 있다.

배울 생각은 많으니, 기회를 주세요

물론 상기한 모든 난관은 적의 등장 패턴을 암기해서 정확하게 대응하면 해결된다. 여러 차례 도전을 반복하며 어떤 적이 나오는지를 안 다음, 전략적으로 자원을 관리해 필요한 때 적절히 사용하는 것 역시 액션 게임의 큰 미덕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죽고 이어할 때 데몰리션 샷이 0발이 돼 버린다. 보통 이렇게 적 등장 패턴이정해져 있는 게임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망하곤 하는데., 돌파하는데 가장 필요한 자원이 고갈된 상태로 다시 전투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졸개들이 많이 등장하는 곳이라면 게이지를 쌓을 여지라도 생기지만, 어떤 체크포인트는 바로 어려운 구간이 재개돼 다시금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아무리 패턴을 파악하고 싶어도 점점 더 좋지 않은 상황에 다다르다 포기하게 되는 이유다.

가끔 새로운 적이나 퍼즐이 등장할 때에 기본적인 공략법을 알려주지 않을 때도 있어, 답답함을키운다. 위에서 언급했던 열차 구간도 사실 파해법이 있다. 바로 슈퍼아머 판정이 생기는 ‘퓨리 모드’를 켜고 전진하는 것이다.

‘데몰리션 샷’에도 ‘전방위를 공격하는 샷’, ‘직선상의 적을 관통하는 샷’, ‘시간을 느리게 하는 특수 버프’ 등이 있어 상황에 맞는 것만 골라 써도 난이도가 급락하곤 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이런 부분은 알려주지 않고, 새 데몰리션 샷은 ‘연구소’에서 비용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 따라서 뭐가 맞는지를 반복 플레이로 업그레이드 비용을 벌어 가며 시행착오를 통해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

왜 여기서만 알려 주는 거에요! 왜!

원작의 ‘시원하게 싹 쓸어버리는 맛’을 다크 소울 식의 ‘적의 패턴을 파악하고 그에 대응하는’ 게임플레이가 대체하는 순간이지만, 전작의 팬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불친절함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개발진의 의도가 ‘차근차근 시행착오를 거치며 게임을 배워 나가, 결국엔 클리어하기를 바란다’였다면, 직전에 튜토리얼을 주거나 사망 후 로딩 도움말에서만 알려줬어도 됐을 부분인데 말이다. (실제로 보스전에서는 재도전 시에 매우 자세한 패턴별 도움말을 볼 수 있다) 아니면 낮은 난이도에서는 죽었을 때 여분의 데몰리션 샷을 몇 발이라도 주는 것은 어떨까.

흥미롭지만 덜 다듬어진, 그래서 아쉬운 부분들

건그레이브 고어의 전투에 온전히 나쁜 점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게임의 사천왕격 간부인 ‘레이븐 클랜’의 보스전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네 명의 보스마다 각기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각기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는 의도가 확실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사천왕 중 첫 보스인 ‘옌센 더 부스트 마스터’는 순간이동 후에 플레이어를 향해 돌진 공격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흔한 패턴이다. 공격을 할 때 특유의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에 맞춰 타이밍을 잡고 회피하면 되지만, 순간이동 위치는 무작위로 정해진다. 극단적으로는 카메라 밖에서 등장해 기습을 시도할 때도 있다.

이렇게 적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회피하면 방향이 틀려 얻어맞는 경우가 생기니, 주의를 늦출 수가 없다.

정신을 놓으면 순식간에 당한다

마커가 플레이어를 추적하다 공중에서 연속으로 레이저를 떨어뜨리는 패턴도 있는데,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 때까지 연속으로 맞기 때문에 패턴 시작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회피만 해야 한다.

보통은 이렇게 ‘빡센’ 타이밍과 방향 설정을 강요하는 첫 보스전을 경험했으니, 다음 보스는 당연히 더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할 법하다. 그렇지만 두 번째 보스 ‘빅 우셴’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약한 모습을 보인다. 플레이어 캐릭터를 느리게 하는 트랩을 깔고, 부하 몬스터를 반복해 소환하는 것이 고작이다. 원거리 공격을 하지만 회피만 계속 해도 간단히 모두 피할 수 있다.

가끔 플레이어를 스테이지 밖으로 밀어내 낙사를 유도하는 벽을 소환하지만, 회피샷만 반복해도 부서질 정도로 내구도가 낮아 별 소용이 없다. 즉사할 정도로 위협적인 패턴이 없다 보니 외려 체감 난이도는 옌센보다 낮아진 셈이다. 계속 회피를 반복하며 무빙샷을 날리다 보면 어느 틈에 클리어가 돼 있을 정도다.

개성 있는 패턴이지만, 게임의 재미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세 번째 보스인 ‘투론티’는 전투하는 공간 대부분을 뒤덮는 탄막을 깔고, 그 사이로 자잘한 발사형 공격을 섞어 공격하는 패턴을 보인다. 독특한 공격 패턴이지만 피해를 안 입을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고, 그런 것 치고는 공격이 위협적이지 않다. 결국 적당히 맞아 가며 진행하게 되는데, 후반전도 이런 진행에 ‘빅 우셴’의 이동 속도 감소 트랩에 피해가 추가되는 패턴과, 바닥에 깔리는 레이저를 점프로 피해야 하는 패턴이 추가되는 정도로 끝난다. 이렇듯 난이도가 일정하지 않으니, 게임이 완전히 다듬어지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줬다.

시리즈 인기 캐릭터인 ‘쿠가시라 분지(이하 분지)’와 신 캐릭터 ‘쿼츠’ 플레이 구간도 아쉬운 구석이 남는다.

그래도 얘는 재밌는데

분지는 주인공 ’그레이브’의 변형이지만, 버스트 모드 중에 회피를 할 수 있는 점 하나만으로 전혀 다른 플레이 감각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이 캐릭터는 플레이 중 특정 구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업그레이드 역시 없기 때문에 한창 익숙해지고 재밌을 때쯤 끝나 버린다. 게임 최고 인기 캐릭터 플레이가 결국에는 일종의 기믹 시연에 그치게 된 것이다.

‘쿼츠’ 역시 ‘회피 후 반격’과 ‘근접 공격이 메인인 캐릭터’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빠르게 잊혀진다. 더군다나 스테이지 중간에 퇴치해야 할 적이 갇혀 강제로 끌어내야 한다던가, 캐릭터가 회피 동작을 하며 뒤로 빠지다 낙사하는 등의 레벨 디자인 문제도 겹쳐 크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얘는 이런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스토리 진행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들이 오곤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 전통의 조력자 ‘미카’는 어째서인지 대사가 거의 없다. 대신 오퍼레이터 역할을 맡은 ‘쿼츠’는 배경 설명이 거의 없고, 주 역할인 상황설명 외 본인의 개성을 내보이는 순간이 많지 않다. 대사 역시 “적들이 몰려오고 있어!” 라던가 “조심해!” 같은 상투적인 대사의 반복이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별로 없다. 오히려 2편에도 등장했던 용병대장 ‘젤’의 대사가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다.

4명의 ‘레이븐 클랜’ 보스 캐릭터들 역시 ‘그레이브’와의 갈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채 공격해 오기 때문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물리쳐야 할 적’ 정도 이상의 이입이 쉽지 않다. 그나마 갈등이 있는 ‘미카’가 스토리상에서 ‘쿼츠’에 밀려 비중이 줄어든 데다가, 또 ‘그레이브’는 대사나 감정 표현이 거의 없기 떄문에 생기는 문제다.

미카의 빈 자리를 채우기엔 다른 등장 인물의 개성이 너무나 부족하다

1편의 ‘빅 대디 패밀리’가 비록 게임에서는 설명이 부족했지만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레이브’와의 사연을 더하고, 2편의 ‘코르시오네 패밀리’는 중반부 ‘미카’의 이탈에 이어 동료 ‘스파이크 휴비’에 얽힌 반전을 선보였던 것보다도 깊이가 얕다.

결국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쿼츠와 박사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긴 대화로 상황과 대안을 설명하는데, 진행을 위한 설명이라는 인상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가 시각적으로 멋진 주인공과 보스 캐릭터 사이 대결을 메인으로 삼긴 했지만, 기왕 스토리와 설정을 정리하는 김에 이런 부분까지 전작 이상으로 보강했으면 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의미로도, 안 좋은 의미로도 IP의 정통 후속작

12시간 정도에 걸쳐 보통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며 느낀 게임의 전체적인 인상은 '큰 장점을 더 큰 단점이 가리는 게임' 이었다.

우선 핵심적인 부분에서 건그레이브 IP의 특징을 잘 잡아 계승한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런 ‘쓸어버리는’ 게임이 드물어진 시대기 때문에 더욱 더 특별하다. 하지만 부족한 편의성이나 가끔 진행 의지를 꺾는 가혹한 상황들이 올 때마다 좋았던 인상은 빠르게 희석되어 갔다.

20년 전 ‘건그레이브’가 첫 등장한 시절에는 아직 3D 액션 게임에 대한 편의성이나 배려가 부족한 시절이었다. 적들은 예고도 없이 카메라 밖에서 공격하는 일이 예사였고, 조작 편의성 같은 것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다들 단점을 파악하고 고쳐 나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핵심 재미만 확실했다면 용인되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그 사이 현대 액션 게임들은 이미 그 시절 있던 문제를 해결한지 오래다. <건그레이브 고어> 역시 전투 시스템 같은 부분엔 최근 트렌드도 많이 반영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이 더욱 크게 와 닿는다. 흥미롭지만 패턴 정리가 안 된 듯한 보스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럼에도 특유의 시원한 감각은 여전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클 뿐이다.

다행히도 개발진은 유저들의 피드백에 일일히 답변해 주는 모습을 보이며, 패치로 게임을 차차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 중에는 리뷰에서 지적했던 부분 중 일부도 포함된다. 20년만에 부활한 반가운 IP라는 점은 변치 않는 만큼, 차후에는 이번 게임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글/ wintermute